슬로우 무비 전문 배우
아줌마 전문 배우 고바야시 사토미
<고바야시 사토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친숙한 아줌마라 할 수 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영화 <카모메 식당>의 약간은 귀엽고 친근하게 생긴 아줌마가 바로 <고바야시 사토미>다. <고바야시 사토미>는 아줌마 역할 전문 배우다. 내가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영화 <카모메 식당>이었다. 그 작품에서 주인공인 "사치에"는 일본을 떠나 낯선 핀란드에 홀로 작은 식당을 차리고, 그녀만의 새 터전으로 독립하게 된다.자신이 누구인지 하필이면 먼 핀란드에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지, 외로운 인생들과 상처받고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느리게 산다는 의미를 찾는다.
그녀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의연하고 따뜻하게, 정직하고 훈훈하게 삶을 살간다. 인생을 왜 사는지, 사는 것은 혼자가 아니며 누구나 불완전한 사람이므로 주위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녀의 필모그래피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줌마다. 그녀가 가진 이미지는 차분함, 엄격함, 엄숙함, 의연함, 치밀함, 따뜻함, 냉철함이라고 할 수 있다. 외유내강의 단어가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이미지인 것 같다.
최근에 개봉했던 <종이달>에서는 차분하면서도 냉철한 베테랑 은행원을 연기했다. <종이달>에서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이미지와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료 직원의 횡령을 가장 먼저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후, 그녀의 뒤를 밟아가며 치밀하고 면밀하게 주인공인 동료 직원 “리카”를 파괴시킬 작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에서는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의 풋풋한 젊은 아줌마의 이미지를 잠시 벗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게를 이어받기 위한 운명을 떠안은 주인공은 샌드위치와 수프의 단순한 메뉴를 취급하는 식당을 열게 된다. 식당을 운영하며 주인공은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어머니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과 일상의 따뜻한 호흡을 나눈다. 닮은 듯 안 닮은듯한 4편의 에피소드뿐인 드라마는 영화 <카모메 식당>을 베껴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찾아보니 원작은 <무레 요코>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은 <카모메 식당>과 함께 <무레 요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무레 요코>는 주로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한 풍경과 따뜻한 위안과 배려를 통해 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소망한 꿈을 담담하게 이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쉽게도 위의 필모그래피는 모두 접하지 못했다. <도쿄 오아시스>는 평점이 너무 낮아서 지나쳤던 것 같고, 아무리 그녀의 팬이지만 <마더 워터>는 지루해도 너무 지루해서 그만 중간에 시청을 포기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녀의 영화 중 내가 판단하는 유일한 흑역사일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필모그래피 그룹에는 나의 인생 영화와 드라마가 있다. 영화 <안경>에서 그녀는 외딴섬에서 진정한 자신의 본질을 찾는다. 그 섬에 왜 갔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이해가 필요 없다. 영화에서 감독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배경 이야기는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쁜 시간이 흘러가는 도시의 생활보다는 아주 가끔 일지는 모르겠지만, 요론 섬에서와 같이 사람들과 독립된 공간에서 사색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고, 나는 누구이고 무슨 의미로 살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지 시간을 돌아보게 한 힐링 영화였다.
<수박>은 2003년도에 방영된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 역시 일상생활의 평범한 이야기들을 지루하지 않게 다루고 있다. 하숙집에 모여 살게 된, 여러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현실 속에서 가능할지 모를법한 따뜻한 사람들이 풀어가는 가족 같은 훈훈하고 시원한 수박 같은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고바야시 사토미>는 재미있게도 신용금고에 근무하다 동료 직원의 횡령 사건을 계기로 삶의 회의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그후, 해피니스 산차(ハピネス三茶)라는 이름부터 행복한 하숙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10년이 훨씬 지난 후에 <종이달>이라는 작품에서 은행원으로 동료의 횡령사건을 추적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우연이 나타나게 된다. 어쩌면 <수박>에서 그녀의 역할이 인연이 되어 <종이달>의 조연 역할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일본에는 유달리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을 그린 드라마나 영화가 많다. 물론 만화에나 있을법한 기상천외하고도 상상을 초월한 기괴한 작품을 비롯하여, 범죄, 심리, 추리물 등 장르가 우리나라보다 다양성 측면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기도 하다. 일본 드라마, 영화 등의 콘텐츠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이후, 내가 개인적으로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순하면서도 훈훈하게 꾸미는 일본 사람들의 재주 때문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고바야시 사토미>는 잔잔한 일본 영화 및 드라마에 최적화된 배우라고 생각한다. 김난도는 2016년 대한민국의 소비 트렌드 중 한 가지를 “미래형 자급자족”으로 꼽았다. 자급자족한 삶의 핵심은 삶의 질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돈을 얼마나 벌고, 어느 정도 성공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위해 잘 늙고, 잘 죽기 위하여 속도보다는 “슬로우 라이프”와 같은 느림의 미학을 추구한다.
어쩌면 일본은 오랫동안 불황을 겪으면서 앞으로 우리가 넘어가야 할 산인, 침체된 저성장기의 아픔을 먼저 경험했다. 침체된 불황을 이겨내는 힘은 평범한 가족들의 눈물겹지만 감동스러운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고바야시 사토미>는 평범한 가족들이 잔잔하며 따뜻한 가운데 용기를 잃지 않고, 소망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나아가기 위한 도우미 역할에 최적화된 배우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그녀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게 되었다. 1965년생이라고 하니 50세다. 그녀도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풋풋했던 아줌마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녀의 오랜 친구인 “모타이 마사코”와 같이 곧 할머니가 되어가겠지.
고바야시 사토미에 대한 기대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드라마, 영화 장면 속에 오롯이 빠져든 시청자, 배우, 작가, 연출가는
독자로서 존재하지만 실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같은 목적으로, 생각으로, 공감으로 닮아간다.
한 장면을 뛰어넘는 이야기는
또 다른 주제에 생각과 공감을 그대로 전달한다.
<수박>은 <안경>으로
<카모메 식당>은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로
<수박>은 또다시 <종이달>로
한 명의 존재는 수 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장식하기 위한
유일한 희망과 독보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빛낸다.
고바야시 사토미라는 사람은 한 명만이 존재하지만,
그의 존재는 현재의 시간이 이어지는
각자의 방에서 기다려지고 해석이 된다.
그녀의 영화나 드라마에는 분노가 없다.
흔한 갈등이나, 미움도 없다.
단지 삶에 대한 애착과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사색과
담담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인생의 소중함과 가족의 따뜻함
이웃 간의 소박하며 평범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평범함이 아쉬울 때가 있다.
어찌 보면 평범함이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를 가치를 초월하려고 바삐 내일로
달려가려는 조급한 목적도 없는 나를 보며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평범함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얻기 힘든 소중함인지 지나치곤 한다.
그녀의 요리,
핀란드의 식당의 정결함
자신의 짐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했으나
결국 모든 걸 내어 놓고 버릴 수 있었던 <안경>
혼자를 위한 식탁이 아닌 여럿을 위한 식탁에서 담담히 샌드위치를 만들었던
경험 많은 성숙하지만 냉철한 이미지로 나를 놀래 켰던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그녀의 다음 연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