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자연의 압도적인 경관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받는다.
인생이란 깊고 울창한 숲의 영속적인 것과 같아서, 인간의 출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신성한 길'이나 우회하여 돌아갈 수 있는 '평탄한 길'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대자연을 관통하는 길은 분명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신비로운 인생과 닮아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영겁의 시간을 살아갈 것처럼 미래를 바라보며, 지쳐 쓰러질듯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세대를 이끌어왔던 늙은 질곡의 길은 마치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분명 올곧은 길을 따라, 밤하늘에 빛나는 영롱한 별의 가르침에 따라 무사히 걷고 있었다며 미래를 확신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길이 아닌 낭떠러지로 추락하거나 질벅질벅한 길에서 허우적거리다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육신이 영원히 묻히는 경우도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어떤 신령한 기운에 갇혀버려, 옴짝달싹 못 하게 되기도 한다. 삶이란 이렇듯, 매 순간마다 주어지는 여러 갈래 길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나 자신과 승부를 다투어야 하는 혈투의 과정이다.
만약 내가 살아왔던 인생이 모두 거짓이라면, 더 이상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게 된다면, 살아가야 할 목적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작은 용기로부터 출발하지만, 그 용기를 줄 수 있는 가족마저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경험하고 나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길을 잃어도, 선택에 실패하여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묵묵히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 있는 간단한 비결은 길을 무작정 걷는 것이다. 평범한 길이어서는 곤란하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엄숙한 길이어야 한다. 인간의 발걸음이 허락하지 않는, 나약한 인간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길이면 더 좋다.
인간은 대자연이 빚어낸 장엄한 위력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인간이 대자연과 맞서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자연이 허락한 여러 갈래의 길에서 인간의 선택은 왜소해진다. 자연의 살아 숨 쉬는 규칙적인 법칙 앞에서 인간은 공정함을 느낀다. 가장 높은 곳에서 만물을 통찰했을 거라고 자만했던 인간의 시야에, 한없이 초라한 자신의 육신이 남는다.
4000킬로 미터라는 감히 잴 수 없는 고뇌의 길을 선택한 여자가 보인다. 과거에 받은 상실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기 위하여 마지막 선택을 결행한 기운찬 여자가 보인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와일드>의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가 그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장 사랑하고 의지했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내팽개쳤던 그녀, 마약에 찌든 거리의 여자와 같은 망가진 삶을 살았던 그녀,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잃어버리고 결국 그녀는 남편에게 이혼까지 당한다.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에겐 가족도, 돈도, 살아가야 할 미래의 희망조차 단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구원하려 했다. 밑바닥으로 꺼져가듯 사라지는 인생의 불씨를 다시 지펴야 한다는, 내면의 메시지를 찾은 것이다. 그녀는 PCT를 선택한다. PCT(Pacific Crest Trail)는 미국의 서부 해안을 따라 황량한 사막과 험준한 산맥, 빙하가 녹은 지대를 트래킹 하는 코스다. 영화 <와일드>에서 리즈 위더스푼이 연기한 '셰릴 스트레이드'는 혈혈단신, 여자의 몸으로 1,700KM의 거리를 도보로 여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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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PCT를 걷기로 결심하고 그녀의 몸집보다 더 규모가 큰 배낭 하나에 의지한 채 여행을 나선다. 아무런 경험도, 정보도 갖지 못한 채, 그녀만의 첫걸음을 뗀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때로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며, 따뜻한 사람들과 만나며, 포기하고 싶은 고난이 그녀의 길을 수없이 가로막았지만, 그녀는 주저앉지 않고 약 100일 동안의 여정을 떠난다. PCT를 향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자연이 허락하는 사람은 1년에 채 100명이 넘지 않는다. 도전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시작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불굴의 의지로 난관을 극복하여 마지막에 끝을 보는 사람은 오직 자연이 허락할 뿐이다.
PCT는 악마의 코스로 유명하다. 험난한 등산로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야생의 한가운데 홀로 선 나약한 인간이 버틸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견디며, 나 자신과의 외로운 승부가 존재할 뿐이다. 이미 시작한 여행을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다. 그것은 자신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할 뿐이다. 그녀는 극한의 외로움과 맞서 싸운다.
그녀를 늘 도와주던 어머니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위기가 닥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베인 상처도 스스로 봉합해야 한다. 그녀는 대자연의 압도적인 경관 앞에서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힘을 얻는다. 발톱이 빠지고 허리에 상처가 깊이 패어도 극복할 힘이 내면에서부터 일어났다.
그녀에게 혼자 떠나는 여행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견디기 힘든 극악의 체험을 통해서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었음 이었을까? 굴곡의 길을 경험하며 자신을 가장 처절하게 밑바닥으로 내몰게 되면, 자신의 추악함을 완벽하게 벗어버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녀는 불편한 여행을 결심했다. 집이 제공하는 안락함을 포기했다. 단순히 대자연과 하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길을 걷다 어느 순간 야생과 하나가 되었을 때, 그녀에게 형언할 수 없는 평안함이 그녀의 내면에 찾아왔다. 그 순간에 찾아온 근원적인 고독함은 인간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 되었다. PCT는 디지털 세상과 멀리 동떨어져있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편안한 안방에서 그녀의 사투를 구경한다. 그리고 그녀가 경험했던 세계를 꿈꾼다. 안락함 속에서 바라보는 원시의 불편스러움을 동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PCT, 아팔라치안 트래일, 스페인의 산티아고, 한국의 둘레길과 같은 대자연이 전하는 고독한 길을 인간이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발톱이 빠지고 물집이 터지는 고난의 길에서 사투하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곳을 찾는 한국 방랑자들의 모습은 오늘도 길게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걷게 되면 삶의 핵심적인 포인트를 찾게 되는 모양이다.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모른 채, 무작정 떠난 사람들도, 돌아올 때는 가슴에 한 아름씩 무언가를 안고 돌아온다. 내가 찾을 것이 명확하진 않았지만, 길을 걸으며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며, 외로움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고독함이 전하는 전환점을 발견한다고 한다. 자연이 품고 있는 숨겨진 에너지의 근원이 궁금해졌다. 그 에너지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것이라 기대를 해본다.
소설가 서영은 씨는 인간이 고행의 길을 걷는 이유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다.
길 자체가 우리 몸을 극한대까지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 불고 몸이 아파도 하루에 20~30km씩 계속 걸었다. 걷는다는 것은 움직이는 세상을, 움직이며 느끼는 것이다. 한걸음 한 걸음이 수고이면서 기쁨이 되는 체험이다."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으려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얻은 이후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추락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다시 미래로 비상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썩은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리고, 새로운 기운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가 길을 걷는 목적이다.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인간은 그것을 견디어 낼 힘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것이 인간이다. 우리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하지 말자.
우리는 생각할 여유마저 박탈당하고 살고 있다. 냉혹한 삶의 현실은 치열한 전쟁터로 우리를 안내한다. 시간이 없어 쩔쩔매며 보이지 않는 말뚝에 허리를 묶인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 스스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현실조차 차단당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세대를 떠나서, 사는 것이 고달픈 모두에게 마음의 위로를 안기는 치유의 영화다. 나도 언젠가 길에 의지하며 시간을 잊어버린 채, 하염없이 걷게 될 그 날을 꿈꾼다.
* 위의 이미지들의 출처는 다음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