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팔라치안 트레일에 뛰어들다.
왜 사람들은 걸으려고 할까? 요란하지 않은 낮고 평탄한 길을 산책하듯, 이야기하듯 누군가와 함께 걷기도 하지만, 오를 수 없는 가파른 산줄기를 향해 다짜고짜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깊은 산맥으로 그들을 이끄는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20킬로그램의 하중을 어깨에 짊어지고 고통스럽게 끝도 없는 길에서 외로움마저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고독한 마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트레일을 종주하는 동안 견디어내야 할 생존의 도구들 탓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했었던 가족들, 가까스로 버틴 직장의 위치, 모든 기득권들 버리고 싶지만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짐들을 배낭 안에 잔뜩 움켜쥔 채 '하이커'를 꿈꾼다. 하이커는 다만 걷는다. 왜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의 대답은 그곳을 직접 걷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
나는 걷는 것을 사랑한다. 도시든 시골이든 정처 없이 두발을 잔뜩 긴장시키고 어딘가를 향해 걷는다. 큰길이든 작은 길이든 길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의 냄새가 있고, 도시와 시골이 공존하는 오래된 자취가 있다. 길을 걷는 하이커의 깊은 마음을 건드리는 상념이 존재한다. 길을 걷는 것은 내가 닿아야 할 '향하는 곳', 잠시 길을 잃어도 옆길로 새어도 이내 정신 차리고 잃은 고쳐 매어 그 '향하는 곳'을 지속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감정이 높은 산을 활강하는 행글라이더처럼 고무(鼓舞)되었다. 새로운 여행이 시작됨에 들뜨며 심장이 쿵쾅거리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A walk in the woods>는 미국의 작가 '빌 브라이슨'이 2008년도에 출간한 '나를 부르는 숲'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팔라치안 트레일을 향해 겁 없는 도전장을 내민 유쾌한 작가, '빌 브라이슨'과 그의 뚱보 친구 '캐츠'와의 무모한 아팔라치안 트레일 등정을 둘러싼 모험의 이야기다.
브라이슨은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린 중년을 넘어선 늙은이다. 늙었다는 것은 젊은 사람들을 향한 작은 열등감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브라이슨은 자신이 늙었지만 아팔라치안 트레일 따위가 남아있을 그의 남은 인생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넘어서고 정복하는 것으로 마지막 불씨와 같은 용기를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팔라치안 트레일은 미국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3,500킬로미터 이상의 길이를 자랑하는 오랜 역사를 가진 트레일 코스다. 전체 코스를 종주하려면 최소한 5개월 이상이 필요하다고 하니 이곳을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버릴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트레일에 도전하는 사람들 중 1/4 정도만 성공을 한다고 하니 단순히 용기만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코스는 절대 아니다.
브라이슨과 그의 친구 캐츠, 무엇이 그들을 '아팔라치안 트레일'로 안내한 것일까? 내가 느끼기에 영화 초반 TV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한 마디 말이 기폭제가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Now, in your books, you've written about Europe, Australia, the British Isles.
You've never wrtten about your home country.
...
Not thinking of retiring on us, are your?
나는 브라이슨과 캐츠를 통해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를 떠올렸다. 정숙하고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브라이슨'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고, 자유분방하고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사랑하는 '캐츠'는 남들이 보기에 망가진 인생일지 모르나, 자신의 의지가 이끄는 대로 솔직한 삶을 살아온 '조르바'였다. 캐츠의 인생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아팔라치안을 향한 끝없는 정복의 자유와 쓰러지지 않는 강한 삶의 의욕을 느꼈다.
나는 로드 무비를 좋아한다. 인간은 한 장소에 머무는 것보다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인생을 사는 이유를 되찾는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를 탄다. 그리고 버리고 걷는다. 걸으면서 자신이 찾을 새로운 배고픔의 대상을 탐구한다. 평범한 일상이 여행으로 탈출할 때, 길에서 예측 못할 사건들이 벌어질 때, 새로운 만남과 이야기가 펼쳐질 때 나의 '길'이 놓인 삶 속에 아직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브라이슨과 캐츠는 그들만의 여정을 통하여 자신들의 건재함을, 소소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로 진한 우정을 느끼고 서로를 이해한다. 길에서 서로의 색깔을 찾고, 색깔을 찾아 입는다.
아팔라치안의 퇴적함, 화강함 등을 보고 지질학에 관한
그의 지식을 떠들고 있는 브라이슨을 보고 캐츠는 말한다.
Well, I think it's all fucking rock
(글쎄, 내가 보기엔 이것들은 모두 빌어먹을 짱돌일 뿐)
I don't get bogged down in the minutiae.
(나는 그런 사소한 수렁에 빠지지 않는다고..)
I'm above the details
(나는 그걸 넘어섰다고..)
I'm big picture, Bryson
(난 전체를 본다고..)
캐츠가 '전체'를 본 것처럼, 나도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작은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큰 본질에 집중했으면 한다. 최대한 느리게 조급하지 않으며, 버리고 떠날 수 있는 가벼운 몸과 진중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삶을 살기 원한다.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배울 수 있는 삶, 모자라더라도 언젠가 채울 수 있는 여유의 삶을 살고 싶다. 세상은 나의 마음에 따라서 부족하거나 남는 것으로 보인다. 생각의 자유에 따라 펼쳐지는 세상에 철없이 의지하고 살고 싶다.
쓸쓸한 나에게 말을 건네 본다. 그리고 발걸음을 바깥으로 향하고 자세를 고쳐본다. 걷는 것은 까마득히 높은 산과 같이 넓은 곳으로 나를 외롭게 던져놓는 것이다. 산이 가지고 있는 푸름 속으로 광활함이 숨기고 있는 작은 평온함 속에서 나를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