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읽고
<고리오 영감>을 선택하기까지……
내가 <고리오 영감>, 아니 '오노레 드 발자크'를 처음 접한 것은 후배가 보내준 그의 책상에 관한 인상 깊은 일화였다. 빚 때문에 미치도록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그의 생존 스토리를 들여다본 것으로 그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소미아님이 12월에 추천해주신 목록에는 뜻밖에도 그의 책이 담겨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글을 쓰면서 그의 삶에 잠깐이나마 관심을 가졌을 뿐인데, 그는 우연히 또 내게 다가왔다.
그 목록 중의 하나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었다. 사실 내가 생각했던 다섯 권의 목록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카프카의 <변신>, 조지 오웰의 <1984>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책이 아닌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더 구미가 당겼다.
책을 빌려오다!
도서관에서 가서 당장 책을 빌려왔다. 그리고 호기롭게 첫 장을 넘겼다. 아…… 쉽지 않았다. 어려웠다. 지독히 읽히지 않았다. 내가 처음 접해보는 이야기 구조였다. 마치 예전에 읽기 어려웠던 난해한 철학서가 떠올랐다. 책은 초반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뇌브 생트 주느비에브’ 거리에 위치한 하숙집과 그 하숙집에 기거하는 하숙생들의 배경 묘사에 많은 시간을 나열했다. 몇십 페이지에 걸친 작가의 지나친 설명은 나를 지루하게 했다. 하품이 났다. 읽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버티었다.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에 힘이 붙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작가는 처음에 하숙집을 고급 하숙집이라고 표현했다. 파리의 뒷골목이나 다름없던 허름한 마을에 고급 하숙집이라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는 하숙집의 묘사를 아래와 같이 하고 있다.
P. 14: 그곳에는 시적인 데라곤 전혀 없는 가난이 있다. 더 이를 데 없이 궁핍하고 넝마 같은 가난이 도사리고 있다. 그 가난은 진흙이 묻지 않았다 해도 얼룩이 지고, 구멍이나 누더기가 없더라도 곧 썩어 넘어질 지경이다.
P. 15: 헐렁헐렁하고 무늬 없는 그녀의 단색 코르셋은 불행이 스며들고 이해타산이 웅크리고 있는 이 식당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시적인 데라곤 전혀 없는 가난, 시인조차 노래를 거부하는 밑바닥 인생들의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고리오 영감은 바로 이 고급 하숙집에 거주했다. 젊었을 때, 제분 업자로서 한몫 단단히 차지했던 고리오 영감은, 부자였으나 두 딸로 인하여 거지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줄거리와 이야기의 흐름
자식 잘못 키우면 어떻게 되는지 발자크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고리오 영감은 평민이었다. 그는 밀가루를 이용해서 큰 돈을 벌었으며, 귀족들이 부러워할 만큼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출세했다. 그는 두 딸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다. 그는 두 딸을 공주로 키웠다. 두 딸을 귀족에 시집보내며, 지참금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물려주었다. 고리오 영감은 자신의 노후를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두 딸이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자신의 삶이 파괴되어 죽음이 영혼을 갉아먹고 있음에도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두 딸은 그런 아버지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을 헌신짝 대하듯 배신했다. 이미 엄청난 거액의 재산을 물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재물을 계속적으로 요구했다. 자신들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위하여 아버지의 살을 깎아 먹었다. 두 딸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며 내쫓았다. 재산을 딸들에게 빼앗긴 고리오 영감은 존경은커녕, 도리어 버림을 받았다. 그렇게 고리오 영감이 쫓겨난 곳이 보케르라고 하는 허름한 하숙집이었다.
P. 18: 이 하숙인들을 보면 마치 다 끝나버렸거나 지금 상연하려는 연극이 연상됐다. 염색된 무대 막 사이에서 난간의 조명 아래 상연되는 드라마가 아니라 침묵하지만 살아 있는 드라마, 마음이 뜨겁게 움직이는 얼어붙는 연극이자 계속되는 드라마였다.
그 하숙집에는 다양한 인간들이 거주 중이었다. 특히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을 통해서 신분상승을 도모했다. 그는 가난한 귀족의 아들이었다. 프랑스 귀족 사회의 화려한 무대에 감탄한 그는 성공에의 욕망을 꿈꿨다. 그는 자신의 친척인 보세앙 부인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그의 책략은 보세앙 부인의 힘을 이용하여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에게 접근하여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녀라면 자신의 출세를 위한 마지막 구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 하숙집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이 하나 있었다. 그는 보트랭이다. 보트랭은 탈옥수였지만, 하숙집에 숨어 살았다. 그는 타락한 프랑스 사회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라스티냐크를 조롱하기도 하지만 그의 출세를 도우려 했다. 부패한 프랑스 귀족들의 약점을 이용한 출세를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그 출세 밑바닥에 선과 악의 두 가지 명암이 있음을 일깨우는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라스티냐크의 의도대로 이야기는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꿈꿨던 상류사회의 아름다움과 품위, 부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귀족들은 부유했지만 타락했고, 서로를 배신했고, 물질적으로 추악했다. 부패한 상류사회의 본질을 눈앞에서 확인하며 라스티냐크는 번민했다. 특히 고리오 영감의 몰락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두 딸들의 몰염치한 행위들에 분노하고 그 모습을 증오했다.
하지만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미 선택한 길, 중간에 모든 길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고리오 영감은 몰락했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재산마저 두 딸들에게 주었다. 고리오 영감은 거듭되는 딸 들의 악행과 아버지로서 살갑게 대해주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절망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딸들에게 내어줬지만, 그는 아버지로서 버림받았다. 결국 그는 중병을 얻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자신의 허름하고 누추한 방, 침대에 누워 절망하는 고리오. 그 옆에서 그를 간호하는 것은 두 딸들이 아닌 라스티냐크였다. 아버지가 죽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두 딸들은 아버지에게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결국 정신 줄을 놓았다. 그는 정신이 가출한 사경의 상태에서 딸들에게 저주를 퍼붓기도, 축복한다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P. 374: 그러면 나는 죽을 거야! 분해서, 분통이 터져서 죽을 거야! 너무 화가 나는군. 지금 흘러간 내 생애 전부를 보고 있네. 나는 속았어! 그 애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네. 결코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어. 틀림없는 사실이야. 예전에도 안 왔으니까 이번에도 그 애들은 안 올 거야.
그 애들을 위해서 내 오장 육부를 항상 열어 보인 습관 때문에 내가 해준 일의 모든 가치를 그 애들은 모르고 있다네.
그것들은 더럽고 악랄한 것들이야. 나는 그것들을 증오하고 저주하네. 밤마다 내 관에서 다시 일어나 내 딸년들을 저주하겠네.
결국 두 딸들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않았다. 고리오 영감은 비참하게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라스티냐크는 뉘싱겐 부인이 선물한 시계를 전당포에 맡겼다. 그 돈을 이용해서 고리오 영감의 장례를 딸 들 대신 치러주었다. 하지만 그는 고리오 영감의 무덤 앞에서 출세를 결심했다. 더럽고 추악하고 부패한 프랑스 귀족 사회에 자신도 일원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었다.
발자크의 인물 묘사와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수사적인 기법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 결투를 앞둔 라스티냐크와 보트랭의 대화는 발자크의 수사적인 기법이 드러났다. 나는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실감을 느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두 딸들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부와 명예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아버지의 죽음까지 외면하게 되었을까? 출세와 화려한 귀족 생활의 가치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무엇이었을까? 부패한 것들은 반드시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있고, 그것들은 반드시 몰락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타락한 대한민국 상류사회의 민낯이 보였다. 두 딸들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진 고리오 영감의 고뇌와 번민을 보면서 비통을 금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의 그것이 아닐까? 출세와 성공이 무엇이길래, 사랑하는 가족마저 외면하고 배신하게 되는 것일까? 고리오 영감은 비극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 버금가는 비극이다.
소설 마지막, 라스티냐크의 외침이 눈에 선하다.
“자, 이제 파리와의 한판 승부다”
라고 외치며 뉘싱겐 부인에게 향하는 그의 모습이 착잡했다.
그가 결심한 것은 상류사회에 대한 통렬한 복수였을까? 그 역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목적이었을까? 결론은 독자에게 주어진다.
P. 396: 그는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는 청춘 시절에 흘려야 할 마지막 눈물을 그곳에 묻었다. 이 눈물은 순결한 마음의 성스러운 감동에서 흘러나왔다. 그가 떨어뜨렸던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튀어 오를 것 같은 눈물이었다.
인상 깊었던 구절들
P.18 : 이 하숙인들을 보면 마치 다 끝나버렸거나 지금 상연하려는 연극이 연상됐다. 염색된 무대 막 사이에서 난간의 조명 아래 상연되는 드라마가 아니라 침묵하지만 살아 있는 드라마, 마음이 뜨겁게 움직이는 얼어붙는 연극이자 계속되는 드라마였다.
P.25 : 그들 모두는 각자의 처지에서 비롯한 불신 섞인 무관심을 서로에게 품고 있었다.
그들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가장 끔찍한 고통 앞에서도 냉정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런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
P.26 : 인간들은 악덕을 용서하면서도 어떤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짓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
P.34 : 인간의 마음이 애정의 꼭대기에 오르면서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와 반대로 증오의 가파른 비탈길에서는 거의 발을 멈추지 않는 법이다.
P.35 : 속 좁은 인간들이 지닌 가장 밉살스러운 버릇 중의 하나는 자신이 쩨쩨하니까 남도 쩨쩨할 것이라고 억측하는 것이다.
P.66 : "당신들의 파리는 결국 진흙 구덩이로군요."
"더구나 괴상한 진흙 구덩이지. 마차를 타고 진흙에 더럽혀진 사람들은 신사이며, 걸어 다니며 더럽혀진 사람들은 사기꾼들이지. 불행하게도 아무것이라도 좋으니 하나 훔쳐보게. 그러면 자네는 법원 광장에서 구경거리가 될 걸세. 백만 프랑을 훔쳐보게. 그러면 자네는 덕망 있는 사람으로 살롱에서 대우받을 걸세. 자네가 경찰과 법원에 삼천만 프랑을 바치면 만사형통이지. 재미있지 않나?"
P.79 : 청년들의 눈을 모든 것을 볼 줄 안다. 청년들의 마음은, 마치 식물이 공기 속에서 적당한 양분을 섭취하듯이, 여성의 빛나는 광채에 빨려 들어갔다.
P.104 : "그 노인에겐 반미치광이처럼 사랑하는 딸이 두 명 있어요. 딸들은 아버지를 거의 모른다고 하지요."
P.107 : 진실한 감정에는 눈이 있고 지혜가 있다고 믿어요. 이구십삼 년대의 불쌍한 사람은 가슴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어요. 딸들이 자기를 창피해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P.109 : 불행이 우리에게 닥쳐오기만 하면, 언제나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친구가 나타나거든. 그러고는 단도 자루를 칭찬하게 해놓고서 그 단도로 우리 가슴을 파헤치는 거야. 벌써 풍자가 튀어나오고 곧 조롱을 퍼붓는 것이지. 아! 내 몸을 방어해야지!
P.113 : 그의 이성과 양심은 느슨해졌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부자들에게는 법이나 도덕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출세만이 <이 세상에서 최후 수단> 임을 발견했다.
P.115 : 인형극에 속지 않으려면 인형극이 펼쳐지는 안쪽까지 들어가야 하네. 벽지 구멍을 통하여
P.145 : 우리는 사자같이 뜨거운 피와 하루에도 여러 번 어리석은 짓을 할 만큼 욕망을 가지고 있네. 따라서 자네는 이 형벌 앞에 무릎 꿇어야 할 걸세. 신이 만든 이 지옥 속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무시무시한 이 괴로움 때문에 말이야.
P.148 : 이곳 파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출세하는가를 알고 있나? 천재성을 펼치든지 아니면 능수능란하게 타락해야 하네. 사회 집단 속으로 대포알처럼 뚫고 들어가거나 페스트균처럼 스며들어 가야 하네. 정직이란 아무 소용이 없네. 사람들은 천재의 위력에 굴복하고, 그것을 미워하고 비방하려고 들지. 왜냐하면 천재는 분배하지 않고 독점하니까 말일세.
P.149 : 인생이란 지금까지 얘기한 그대로야.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P.156 : 사회가 설치한 사다리 난간에 이르기 위해서 여성을 꼬드기고, 자녀들 사이에 불화의 씨를 던지며, 각자의 쾌락과 이해를 목적으로 남모르는 장소에서 저지르는 모든 파렴치한 행위들이 자네는 신념과 희망과 박애에서 비롯한 행위라고 생각하는가?
P.158 : 국민들은 자유를 열렬히 숭배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자유스러운 국민이 있는가? 내 청춘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푸르다. 위대해지고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은, 거짓말처럼 굴복하고 굽실거리고, 다시 일어나서는 아첨하고 속이겠다고 결심하는 게 아닌가? 이미 거짓말했고, 굴복했고, 슬슬 기었던 자들의 하인이 되겠다고 동의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들과 손잡기 전에 그들의 심부름을 해야 할 테지.
P.160 : 도덕군자들이 인간 심성의 심연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생각들을 속인다든가 개인적 이해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충동 받는 것들이다. 감동적 사건이나 수사적 허식이나 돌발적 마음의 변화는 쾌락을 위해서 계산된 것이다.
P.161 : 사람들은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감정은 모든 것에 각인되고 공간을 꿰뚫는다. 한 장의 편지는 하나의 영혼이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대한 충실한 메아리이다. 그 때문에 섬세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은 편지를 가장 풍요로운 보물로 생각한다.
P.163 : 알록달록한 색깔을 띤 날개를 가진 이 사탄은 루비를 뿌리고, 궁정 전면에 황금으로 만든 화살을 쏘며, 여자들을 붉게 물들이고, 근본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왕좌를 어리석은 광채로 치장하고 있었다.
P.165 : 기만당하지 않기 위해서 남을 기만해야 한다. 양심과 진실은 창살 밖으로 던져버리고 가면을 써야 한다. 인정 없는 사람처럼 행세하고 스파르타에서처럼 영예를 차지하기 위해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행운을 붙잡아야 한다.
P.179 : 다락방에 사는 가장 가난한 하인도 고리오 영감보다 더 나쁜 가구를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방의 모습에는 냉기가 돌았고, 사람의 가슴을 죄었으며, 가장 비참한 감방과 비슷했다.
P.182 : 가장 우둔한 사람도 정열의 효과로 말미암아 언어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의 웅변의 최고 경지에까지도 이르게 되고, 빛나는 영역에서 움직이는 듯해 보인다. 그때 이 영감 목소리와 태도에는 유명한 매우에게서 볼 수 있는 전달력 강한 힘이 있었다. 우리의 아름다운 감정이란 의지의 시정이 아니겠는가?
P.187 : 우리의 행복이란 우리 발바닥에서부터 후두부까지 사이에 있는 거야.
P.205 : 그가 욕망의 대상으로 삼았던 파리의 가장 아름답고 보다 우아한 여성 중의 하나가 결국은 분명히 자기 소유가 될 것이라는 연예 사건에서 우러나는 행복감이었고 또한 한밑천 장만해 보자는 속셈이 뒤집어짐을 알고서 느낀 불만감이었다.
P.251 : 모자를 쓰고 꽃나무가 있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백작 부인 때문에 산 스카프를 둘러요. 내가 몸소 마차를 잡으러 갔다 올 테니까요.
P.253 : 여성의 모든 감정이 흘러나오면서도 자기 가슴 위에서 고동치는 청년의 심장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느끼게 해주는 이 자비로운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빅토린은 행복감을 느꼈다.
P.276 : "당신은 우리 같은 놈들보다 더 훌륭합니까? 타락한 사회에서 무기력한 부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치욕이 우리 어깨에는 덜 있어요. 당신들 중에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도 나의 이 얘기에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오"
P.276 : 도형장은 풍습과 언어, 익살에서 무시무시한 얘기로의 급격한 변동, 두려움을 자아내는 거대성, 추근추근한 태도, 비열함을 수반하고서는 이 사람과 이 사람이 소리쳐 얘기하는 속에 표현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미 한 사람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타락한 전체 국민과 야만적이고 논리적이며 흉포하고도 부드러운 한 종족의 전형적 존재였다. 한순간 콜랭은 단 하나 뉘우치는 감정만을 제외한 모든 인간 감정을 드러내는 지옥의 시인이 되었다.
P.304 : 파리라는 풍토에서 여자는 단지 정신과 관능만을 만족시키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인생을 구성하는 수많은 허영심을 충족시킬 큰 의무를 지닌 사실을 완벽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서 특히 이곳에서 연애는 본질적으로 허풍 떨고, 뻔뻔스러우며, 낭비적이고, 엉터리이며, 호사스러운 것이다.
P.330 : 아버지 노릇도 못하다니! 정말이야. 딸자식은 나를 필요로 하는데. 나는 돈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비참하게도 땡전 한 푼 없군. 아! 너는 종신 연금을 팔아먹은 늙은 악당이야. 너에게는 딸들이 있는데! 정말 너는 딸들을 사랑하지 않느냐? 죽어라. 개처럼 뒈져버려! 그래. 나는 개만도 못한 놈이다. 개라도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테지. 오! 머리가! 끊는구나!
P.349 : 그는 이 사회를 거창하게 나타내는 세 가지 표현을 보았다. <복종>과 <투쟁>과 <반항>, 즉 <가정>과 <세상>과 <보트랭>이다. 그런데 그는 결심할 수 없었다. <복종>은 귀찮고, <반항>은 불가능하며, <투쟁>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P.367 : 아! 여보게, 자네는 결혼하지 말게. 결코 자식을 낳지 말게! 자넨 자식들에게 생명을 주지만, 그 애들은 자네에게 죽음을 줄 거야.
P.370 : 내가 안 것은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잉여 인간이라는 사실이었어.
P.372 : 나는 벌 받아도 마땅하지. 바로 내가 딸들의 무질서한 행동의 원인이지. 그 애들의 버릇을 망쳐놓았어. 예전에 그 애들이 과자를 원했듯이, 지금 그 애들은 쾌락을 맛보고 싶어 하네.
P.374 : 그러면 나는 죽을 거야! 분해서, 분통이 터져서 죽을 거야! 너무 화가 나는군. 지금 흘러간 내 생애 전부를 보고 있네. 나는 속았어! 그 애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네. 결코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어.! 틀림없는 사실이야. 예전에도 안 왔으니까 이번에도 그 애들은 안 올 거야. 그 애들을 위해서 내 오장 육부를 항상 열어 보인 습관 때문에 내가 해준 일의 모든 가치를 그 애들은 모르고 있다네. 그것들은 더럽고 악랄한 것들이야. 나는 그것들을 증오하고 저주하네. 밤마다 내 관에서 다시 일어나 내 딸년들을 저주하겠네.
P.377 : 오! 그 애들을 보다니! 그 애들을 보고 목소리를 듣게 되다니! 나는 행복하게 죽겠군, 물론! 그렇지. 나는 더 이상 살기를 바라지 않겠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내 고통이 점점 커가는 걸. 그러나 내 딸들을 만나서 옷만 만져보았으면! 아! 단지 옷만.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나는 내 딸들의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애들의 머리카락을 만져보게 해주게... 머리칼...
P.389 : 아! 나는 누구를 위해서 날 사랑하던 유일한 사람을(그녀는 아버지를 가리켰다.) 배반했던고! 나는 아버지를 무시했지요. 아버지를 쫓아냈어요. 아버지에게 온갖 못된 짓을 다 했단 말이에요. 아, 나는 나쁜 년이에요!
P.396 : 그는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는 청춘 시절에 흘려야 할 마지막 눈물을 그곳에 묻었다. 이 눈물은 순결한 마음의 성스러운 감동에서 흘러나왔다. 그가 떨어뜨렸던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튀어 오를 것 같은 눈물이었다.
나에게 글쓰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