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과 대화를......
몇 권의 책을 새 책장에 꽂았다.
이사 후 책장 하나를 새로 들였는데,
적당히 어울릴만한 책 몇 권을 집어넣으니 썩 보기에 좋다.
물론 아내의 한숨은
다시 늘어나는 책들의 부피만큼 쌓여가지만……
언제 다 해치울 수 있을지는 가늠할 수 없다.
직장의 일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써야 할 글도 만만치 않게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란 게 자로 반듯하게 잰 것처럼 일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디 마음먹은 대로 세상이 돌아가겠는가.
읽고 싶은 책들을 모두 들일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구경하고 이것들을 내버려 두고 올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시집 위주로 골라왔다.
마종기 시인과 황동규 시인은
이병률 작가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내가 닮고 싶어 하는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닮고 싶은데, 시간과 노력만으로 그 깊이까지
내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길도 말콤 글래드웰이 주장한 것처럼 '1만 시간의 법칙' 정도의
노력이 투입되어야 가능한 걸까?
재능 탓은 하지 말아야겠다.
시간이 없다는 변명도 하지 말아야겠다.
지금 내가 프로그래머라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사는 건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했기 때문일까.
내가 글에 투자한 시간은 아무리 헤아려보아도
3년이 채 안되었으니 1,000시간도 안되었네……
갈 길이 아직 멀었다.
김훈 작가의 <공터에서>는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그의 문체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더 컸다.
헤세의 <싯다르타>는 북살림에서 정한
6월의 책이어서 구매하긴 했지만
비교적 내가 반기는 철학적인 내용이라 구매하게 되었다.
그동안 비교적 게으르게 살았다.
책을 읽지도 못했고, 리뷰도 남기지 못했다.
꾸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간헐적으로라도 짧은 글이나마 남기고 싶다.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당당한 한 인간의 자아에 반했다고 할까?
그래서 몇 글자 읽어보고 바로 구매했다.
문재인의 <운명>은 말할 것도 없고……
'저녁이 있는 삶'이라 모호하게 의미를 찾기보다는
책과 글이 있는 구체적인 저녁의 풍경을 찾았으면 한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이 모두 내 자식들 같다.
그들과 만나 대화할 시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