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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an 21. 2017

호주 시드니 : 블루 마운틴

돈으로 계산되는 유일한 공기를 마시다.

파란 빛깔의 하늘이 찰랑찰랑 구름 사이를 누빈다. 나는 하늘과 숲에 둘러싸여 차분한 숨을 쉴 수 있는 파란 언덕에 서있다. 깊은 숨을 가슴 가득히 불어넣는다. 상쾌한 공기는 콧속에 스며들어 기도를 확장시키고 폐 속까지 청량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나는 파란색이 숨 쉬는 세상에서 안정을 찾는다. 외딴 세상, 높은 곳에서 평안의 시간을 갖는다.



버스는 몇 시간을 달린 끝에 블루 마운틴 정상에 다다랐다. 해발 1,000미터 부근인 '에코 포인트'에 일행을 던져 놓고는 홀연히 버스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압도적인 규모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다. 푸른 숲의 바다가 하늘로 오르다 질서 정연한 구름 사이에서 잠시 노닌다. 하늘은 아래 세상 인간들에게 파란 빛깔을 선물한다.


이곳의 공기는 특별하다. 블루 마운틴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유칼립투스 나무는 피톤치드와 비슷한 물질인 '유칼립톨'을 발산한다. 이곳 블루 마운틴의 공기는 특별한 용기에 포장되어 중국에 수출된다고 하는데, 한 통에 17,000원 정도의 금액으로 판매된다. 나는 특별히 돈으로 계산되는 공기를 공짜로 얻는 셈이다. 블루 마운틴에서 한 번 숨 쉰다는 것은 110원의 값어치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나는 숨 쉬면서 돈 벌고 있다.



잠시 시간이 정지된 채, 지금 느낀 감격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한다. 넋을 놓고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꺼낸다. 그리고 셔터를 지긋이 누른다. 블루 마운틴의 정기를 사각형 하나에 모두 담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느낀 감동은 얼마나 잃어버리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호주에서는 메아리를 들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곳 에코 포인트에서만 허락된다고 한다. 영원히 바위로 변한 세 자매 봉의 슬픈 운명이 인간에게 메아리로 변하여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가이드의 지나가는 이야기에 잠시 젖어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다시 바라본다.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얼싸안고 천천히 사이좋게 흘러간다.

"흘러가는 구름아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줄 수 있겠니?"

"파란 하늘아 우리 함께 숨 쉬었던 오늘을 기억해 다오!"



한 장소에서만 사진을 이렇게 오래 찍어본 적이 있을까? 셔터에 불이 날 정도로 눌러댄다. 다시 이곳을 찾아볼 기회가 생길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주 짧다. 짧은 순간에 블루 마운틴의 모든 영역을 끌어모으고 싶다. 조급한 마음을 따라 장면을 포착하다 보니 배가 고프다.

일행이 식사 시간이 되었다고 외친다. 특별히 오래 숙성시켰다는 소고기가 나온다. 말없이 칼질을 한다.



식사를 마친 후, 잠시 쉬다가 한적한 집 한 채가 보여 카메라에 담는다. 평화롭다. 가파른 협곡을 따라 케이블카를 타고 숲속으로 이동한다. 약 52도 경사의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세계에서 가장 경사가 가파른 코스를 타고 정상에서 아래쪽으로 이동한다. 출발 후, 터널 같은 어둠 속으로 진입하자 속도를 체감할 수 없어, 여기저기 비명이 튀어나온다. 사실 기대보다는 속도가 낮아 시시하다.



블루 마운틴 중턱에서 멀리 세자매 봉을 바라본다.



등산로를 따라 걸으며 산림욕을 체험한다. 몇 걸음을 떼자, 옛 폐광이 나타난다. 아직 입구가 열려있어 내부를 잠시 들여다볼 수 있다. 이곳은 세상에서 음기가 가장 심하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을 듣고 있으니 어디선가 유령이 나타날 것 같은 한기가 밀려온다.



블루 마운틴 아래쪽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유칼립투스 나무는 자신의 몸에서 기름이 섞인 액체를 내뿜는다고 한다. 그 빛이 하늘에 반사되어 멀리서 산을 바라볼 때 파란빛이 나타난다고 하여 블루 마운틴이라고 불린다. 유칼립투스의 유액이 번개를 맞게 되면 발화가 되어 산불이 나기도 한다. 한 번 불이 붙으면 어마어마한 산불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태양의 빛이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유칼립투스를 거의 볼 수 없다.



이곳에서 목숨을 건진 유칼립투스를 만났다. 여기저기 찢긴 것 같은 상처가 보인다. 세월의 탓일까? 다른 나무와 경쟁한 끝에 겨우 살아남은 외로운 싸움이 느껴진다.



산책로는 계속 이어진다.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정상은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햇살이 따가웠지만, 나무가 우거진 숲 한가운데에서는 시원한 그늘이 자리 잡고 있어서 비교적 상쾌하다. 조금 더 느긋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만, 정해진 일정의 압박이 여유를 앗아간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사라졌던 버스가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 내가 가야 할 장소는 어디인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채비를 나서야 한다. 나는 바쁜 관광객이다. 언제 다시 시간을 내고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는 조금 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느긋하게 블루 마운틴에서의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 그때 나를 다시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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