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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an 25. 2017

호주 시드니 : 하버 브리지, 달링 하버

나는 시드니 앞 바다에 홀로 섰다

한참을 달려 시드니 시내로 진입했다. 3시간 이상을 버스 안에 갇혀 있었더니 온몸의 근육이 굳은 것처럼 뻑적지근하다. 날씨는 나의 기대와 달리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더위에 눌려 땅바닥에 드러누울 것만 같다. 시드니 중심부는 예상과 달리 습도가 높다. 높은 기온과 만난 습도는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끈적한 물기를 뺨과 내 목덜미에 스민다.



일행을 따라 이동하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이국적인 광경 투성이다. 축축한 물기는 내 몸을 흐느적거리게 하지만, 눈을 가만둘 수 없다. 목에 잠시 걸어두었던 카메라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이동 경로를 따라 세워진 건물에 초점을 맞춰본다. 움직이지 않는 건물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나는 갈 길 바쁜 여행 중에도 글감을 생각한다. 나의 눈을 스치는 조각 같은 그림에 시선을 분사하고 시간이 미래로 흘렀을 때 감격스러움을 어떻게 떠올릴 것인가 공상을 한다. 잠시 스쳐가는 공간에서 내가 경험한 찰나의 사실을 어떻게 극적인 이야기로 포장할 것인가 고민한다. 집, 벽, 창문은 제각각 다른 목소리로 나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여행자로서 마땅히 품어야 할 극적인 품격을 몸으로 받아들이도록 원한다.



가이드는 우리를 시드니 천문대(Sydney Observatory)로 안내했다. 도시에 위치한 작은 천문대라고 하는데, 하버 브리지와 시드니 하버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작은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땀줄기가 등에서 줄줄 새어 나온다. 자연스럽게 욕이 가슴 밑구석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온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힘들게 겨우겨우 전진하는데, 고개를 슬며시 돌리니 미소가 자연스럽게 번진다. 잠시의 고난을 보상이라도 하는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600년 묵은 고목이 먼저 환영의 메시지를 전한다. 나의 감정은 다시 환희로 거듭난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살아서 숨 쉴 수 있음에, 가슴 터질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서성이는 사람들을 하나씩 그림 속에서 지운다. 비운 공간에 내 기억을 담는다. 오래된 나무와 빈 의자가 서로를 마주 보며 호흡하고 있다. 무표정한 사물에게 자리 하나를 부탁한다. 오직 나에게만 보장된 자리, 넉넉한 쉼은 나에게 어떤 위로를 안길까? 깊이를 알 수 없는 안식과 평안함이 땅끝에서부터 솟아난다.



하버 브리지를 걸어서 통과하기로 했다. 이왕 이렇게 걷게 된 이상, 다리 하나 정도는 직접 걸어보는 것도 시드니를 기억에 남기기 위한 방법으로 좋겠다. 교각 구조물에 위태롭게 서있는 작업자가 나를 쳐다본다. 나도 그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버 브리지 중간에 서서 잠시 바다에 시선을 보낸다.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뜨거운 수증기가 머리를 축축하게 적신다. 눅눅하게 배인 땀을 식히기 위해 난간에 팔꿈치를 기댄다. 멀리 오페라하우스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붕의 Arc 구조물이 마치 범선의 돛을 형상화시킨 것처럼 보인다. 돛을 활짝 펴고 먼 바다로 항해를 나서는 선장이 어딘가에 서서 배를 지휘하고 있을 것 같다.



하늘이 잿빛 구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빛은 자신의 존재를 감췄고 어둠이 시드니 하버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옅은 빗방울이 이마에 느껴진다. 빗방울은 땀이 되고 땀은 다시 공기 중에 분해되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디게 반응하는 내 몸이 야속하다.

다리를 가로지르는 사람이 보였다. 하버 브리지 위에서 다국적의 사람들은 순연히 여행자로 통일이 된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교감을 나눈다. 다리 위에 서있는 우리는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다리 한 바퀴를 돌아 하버 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경계에 섰다. 어둠은 더욱 낮은 자세로 바닥 아래로 짙어졌고 바다는 검푸른 빛깔을 드러낸다. 조금은 시원해진 걸까? 바다 가까이 다가서니 마음이 너그럽게 뚫리는 것 같다.



오페라하우스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환한 불이 하나둘씩 켜지며 바다와 오페라하우스의 경계는 더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사람들 구경에 넋을 놓고 있는데, 일행이 맥주 한 잔을 나에게 건넨다. 상쾌한 바람 같은 맥주 거품이 목 부근에 머물렀다 일순간에 사라진다. 이보다 더 시원한 순간이 다시 내 인생에 있을 수 있을까? 아껴두었던 갈증이 단숨에 쓸려 지나간다.



일행들은 여기저기 흩어졌다. 나는 홀로 시드니 앞 바다에 선다. 그리고 순간을 붙들기 위해 지나가는 생각에 집중한다. 어둠이 내 행복을 부디 앗아가지 않기를... 나 혼자 걷던 이 길에 순수한 감정 하나를 기록한다. 어지럽게 일렁이던 방황을 잠시 억누른다.



어둠이 깊게 잠긴 시드니 하버. 사랑하는 연인들의 미소가 환하게 번진 물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나는 혼자다. 연인들의 미소는 나의 얼굴을 질투로 일그러지게 한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달링 하버로 이동한다. 달링 하버는 세계 3대 미항이라고 한다. 오늘은 운 좋게도 이곳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나는 페어몬트 브리지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은 어느새 멀리 달아나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이 내 주위를 감싼다. 사람들의 시선은 오롯이 한 방향을 향한다. 더운 기운은 어느새 흔적을 지웠고 이제 선선한 바람이 가득하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발하는 불꽃의 마지막 생을 감격스럽게 바라보는 나는 누구인가. 불꽃의 폭발을 대수롭지 않게 한 귀에서 다른 쪽으로 흡수해버리는 나는 누구인가.



시드니에서의 또 다른 밤이 저물어 간다. 피곤함은 멀리 달아났고, 정신은 혼미함에서 깨어나 다시 기지개를 켠다. 시드니의 밤은 나에게 익숙한 경험으로 다시 태어나려 한다. 시간은 이곳에서 나에게 무심한 자유를 허락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dfriIggRc

직접 촬영한 불꽃 놀이


* 모든 사진의 전재와 이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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