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에메랄드 색깔로 나를 반겼다
나는 낯선 시간이 흐르는 길가에 서있다. 한국과 호주에서 보낸 나날은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어느덧 이곳 시간대에 익숙해졌다. 나는 어느새 낯선 여행자에서 익숙한 도시 거주자로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살아있는 것들과 며칠째 호흡을 주고받고 있지만 지루하지 않다. 새로운 감동을 위하여 내 마음은 깨끗하게 비워지고 정화된다. 낯섦은 일상에 지쳐 있는 나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이곳이 진정 천국은 아니런가...
여행은 나 같은 일상 회의론자에게 말초적 자극을 가한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서 고국의 멋진 일몰에도 압도당하지 않지만, 이곳은 일상 자체가 충격적이고 감동적이다. 내 감정은 도처에서 긴장한 채 웅크리고 있다가 만나는 모든 것과 충돌한다. 한 곳에 정체되어 있던 안정된 정서는 이곳에서 무참히 박살 나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아침은 어김없이 나에게 찾아왔다. 태양은 대지를 지글지글 달구고 있고, 하늘의 파란 기운은 넓기만 하다. 아직까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다. 오늘은 어떤 풍경이 내 눈을 즐겁게 해줄까? 기대가 먼저 앞선다. 오랫동안 몸에 익숙했던 규칙에서 벗어나 잠시 찾아온 일탈의 시간, 자유를 꿈꾼다.
아침 일찍부터 와인 농장을 찾았다. 포트스테판에 위치한 와이너리 농장이다. 자그마한 와인 잔을 일렬로 세워놓고 와인을 따른다. 주인이 따라주는 몇 가지 와인을 시음해본다. 와인도 어쨌든 약하지만 술은 술이다. 적은 양의 시음만으로도 나를 취해버리게 하는 아주 고약한 놈…… 그래도 공짜라고 하니, 주는 대로 홀짝홀짝 마셔본다. 마시다 보니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붉은 얼굴을 식히기 위해 농장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농장 외곽, 작은 숲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가 더 취하게 한다. 붉은 얼굴로 포장한 나는 잠시 길가에서 한숨을 쉰다.
다시 버스에 오른 나는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붉은 얼굴로 잠에 빠졌다. 얼마를 달렸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버스는 포트스테판에 위치한 '넬슨 베이' 부근에 도착했다. 호주 사람들은 1년에 한 달 정도의 긴 휴가를 갖는다고 한다. 휴가 기간 동안 포트스테판의 해안 도로를 따라 여행하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데, 그들의 여유 있는 삶이 부럽다.
포트스테판 일대의 황금 해변을 따라 넬슨 베이, 살라만더 베이, 아나 베이 등이 이어진다. 가이드는 뜬금없이 영국의 넬슨 제독을 언급한다. 넬슨 제독이 존경했던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설명한다. 넬슨 베이와 넬슨 제독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호주가 영국 식민지였던 역사적인 사실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시간이 좀 지체되었나 보다. 가이드는 우리를 바삐 재촉한다. 돌고래를 맞이하기 위해 우린 발걸음을 서두른다.
걷는 도중,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요트의 행렬이 눈에 뜨인다. 일정하고 체계적인 선으로 나열한 요트가 아름답다. 가까운 바다와 먼 바다는 동일한 빛깔을 자랑한다. 때묻지 않은, 한없이 깨끗한 바다의 내음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콧속을 간지럽힌다. 눈은 황홀함 속에 빠진다. 파도는 차분한 물결을 유지한 채, 태양을 벗 삼아 먼 대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바다는 에메랄드 색깔로 환하게 빛난다. 거칠고 사나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내린 자비일까? 이렇게 낭만적이고 평화로울 수 있을까? 북적거리던 마음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뱃머리 위에 앉아 바람이 전하는 흐름에 몸을 맡긴다. 맞서지 않는다. 자연에 부름에 순응한다. 크루즈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속도에 내 몸을 맞춘다. 바다에 넋을 잃고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식사시간이다. 몽롱하게 취한 기분에 빠진 채, 한쪽 구석에 앉아 식사를 한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돌고래의 출현을 기다린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멀리서 돌고래 한 마리가 윙크를 한다. 수줍게 몸을 보여줬다가 다시 물속에 숨는다. 인간의 애간장을 태운다. 인간은 과연 돌고래에게 반가운 존재일까? 우린 돌고래의 사생활을 침범한 단순한 침입자는 아닐까? 그래도 나는 돌고래에게 자연스러운 포즈를 청해본다. 물론 그것이 전달될리 없지만, 다만 마음을 띄워 보낼 뿐...
낯선 여행지의 풍경은 나에게 행복을 준다. 내 눈에 새로 각인되고 있는 모든 장면은 편견을 깨고 형식적 사고에서 벗어나라는 사명을 요구한다. 이곳에 억지로 적응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으련다. 더럽혀지고 억눌린 감정이 깨끗하게 씻겨 나가는 과정이라 믿으련다. 이곳이 더 이국적이라 여겨지고 더 오래 머물고 싶노라 바란다 하여도 내가 살고 있던 대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리라…… 비릿한 일상을 잠시 잊고 몸과 마음을 이곳에 순연히 맡기려는 것이다. 여행자로 더 이곳에 녹아들려는 것이다. 어느 장소, 풍경에서든 오롯이 그 순간 자체에 몰입하는 것이다. 나를 잠시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여행자가 능히 감당해야 할 숙명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