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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05. 2017

호주 시드니 : 디너 크루즈

가슴속 어딘가 간직한 지금의 시간들을 미래에 온전히 떠올릴 수 있을까..

나는 이곳 호주에서 한 장소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은 먼 타지에서도 차별 없이 공정하게 흘러간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으면 하는 것이 여행자의 바람이지만, 내 작은 소원은 거품처럼 솟아올랐다 연기처럼 사라진다. 여유를 찾아 이곳을 찾았지만, 시간은 마치 쾌속 열차처럼 달려가버려서 얼마 남지 않은 하루의 빈틈마저 순식간에 갉아먹는다. 내 마음은 바쁘다. 짧은 여정 동안 정해진 숙제를 완수해야 한다는, 이곳저곳에서 욕망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옥죄어 온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일정에 바쁜 여행자에게도 가끔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 가이드는 얼마 없는 시간을 재촉하지만, 나는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이 아니다. 남들과 똑같은 장소에 끌려다니며 비슷한 감동을 요구당하거나, 자로 잰듯한 사각형의 시선으로 매몰당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약간은 다른 시각으로 시드니를 바라보고 싶다. 남들과 유사한 획일적인 행동 패턴에서 벗어나, 주어진 제약에서 살짝 비틀어지고 싶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도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일지도 모른다. 나의 하루를 온전히 맡기고 지불해버린 여행에 대한 값비싼 대가, 이끌리는 대로 몸을 맡겨야 하는 짧은 시간 동안의 운명인 것이다.



호주는 현재 서머타임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 시간과 한 시간의 차이가 나지만, 서머타임 관계로 1시간이 추가되어 총 2간의 시차가 난다. 이곳을 찾은 지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2시간이 주는 의미는 아침 시간에 뚜렷해지고 저녁 시간에는 점차 흐릿해진다. 며칠이 지나면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을까? 시간차보다 날씨에 먼저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어제는 온도가 40도까지 치솟았다. 현재는 오후 5시, 태양은 아직 높은 곳에서 강렬한 빛을 발산하고 있지만 어제와 같은 숨 막히는 햇살이 쏟아지는 더위는 아니다.


버스에 내린 후, 일행들은 몸을 잠시 푼다. 3시간을 열심히 달려 시드니 중심부로 다시 찾아왔다. 이곳에서 우리는 선셋 쿠르즈에 승선하게 된다. 아마도 시드니를 찾는 모든 관광객이 거쳐가야 할 중요한 코스인 것 같다. 아직 햇살이 높은 곳에 한창인데, 과연 일몰을 볼 수 있을까? 바람은 산들산들 고요하게 태양 반대쪽으로부터 우리를 반기고 있지만, 태양의 기세를 잠재울 정도는 아니다. 우리는 크루즈에 신속히 승선한 후,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엔 간단한 요리가 미리 준비되어 있다. 그리 입맛을 당길 정도의 수준은 아닌 연어와 생선 요리가 나온다. 긴 이동시간에 지친 탓일까? 그냥 빵 한 조각에 버터를 발라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



정신없는 식사를 마친 후, 사람들은 갑판으로 이동하여 뷰가 좋은 자리 하나씩을 잡았다. 사람들은 바닷바람을 쐬고 있었다. 나는 식곤증이 몰려와 식사를 마친 이후에도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서 바깥사람들의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면, 이곳에 다녀갔다는 것을 어찌 증명할 것이며 훗날 다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으리...



갑판 위에서 바라보는 먼 바다와 시드니 항 주변의 풍경은 내가 투자하는 시간의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카메라 셔터를 정신없이 누른다. 크루즈는 서서히 움직이며 뷰파인더 속의 세상을 변화시킨다. 나는 크루즈의 갑판 위에 꼼짝없이 움직이지 않고 서 있지만, 속도와 각에 따라서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멀리서 오페라하우스가 모습을 나타낸다.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찾고 싶은 곳은 오페라하우스였다. 멀리서나마 오페라하우스가 자랑하는 곡선의 미를 느낄 수 있다. 차분한 파란 빛깔의 바다,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하는 인공적인 건축물, 그 옆을 통과하는 요트의 움직임이 마음에 평안을 안긴다.



달리다 보니 정면으로 하버브리지 아래를 지나쳐 간다. 다리 위를 직접 도보로 건너갈 때의 느낌과 배를 타고 유유히 흘러가는 느낌은 다른 자극을 안긴다. 마음을 조금 더 한가롭고 느긋하게 넓혀주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온전히 맡겨버린 채 가끔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버리고 싶은데, 지금 나는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내가 흘러가는 것은 나로부터 멀어지는 사물의 상대적인 위치에서 체감한다. 나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도 이렇게 어디론가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옆쪽 갑판에서 정면으로 이동한다. 한국에서 여행 온듯한 대학생 한 무리가 군데군데 서 있다. 청춘의 생생한 에너지의 진동이 귓가에 꽂힌다. 청춘이란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어디로든 떠나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밝힌다. 청춘은 떠날 수 있고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행복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저들의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진동이 궁금하다.


잠시 그들 옆에서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숨죽여 황혼의 시간을 맞는다. 아직 나에게도 때는 아닌 듯하다. 조금 더 기다려야 시간은 찾아온다.



하버브리지를 지나친 후, 이번에는 뒤쪽 갑판으로 이동한다. 하버브리지와 멀리 보이는 오페라하우스를 동시에 담고 싶었다.



먼 곳을 바라본다. 높은 빌딩들, 작은 항구, 하버브리지로부터 길게 연결된 철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아래부터는 별다른 말이 필요없을 듯 하다. 약 한 시간동안 크루즈는 시드니 항 주변을 돌아 같은 위치에 다시 돌아온다. 작은 여행을 나서는 셈이다. 여행 속에 찾아온 또다른 작은 여행. 시간은 잘게 쪼개지고, 나의 기억도 여러 곳으로 분산된다.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카메라에 완벽히 담을 수는 없다. 사진과 글은 나의 모자란 기억력을 보조하고 잃어버린 장면을 되살리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무수한 사진을 남겼지만, 그래도 볼만한 몇 장의 사진들을 추린다.



크루즈는 한 바퀴의 큰 원을 그리고 제자리에 돌아왔다. 카메라는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뜨거운 태양에 녹을뻔한 건인지, 너무 많은 사진을 기억하느라 한계를 넘어선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받은 감동이 억지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안다. 짧게 주어진 여행의 시간 동안 내 영혼은 잠들어 있지 않았다. 나는 생생하게 살아서 가슴에 찾아온 것들에 경의를 표시했다. 나는 살아있기에 뜨거운 심장의 박동을 느낄 수 있고, 사유할 수 있기에 아름다움은 자연과 인간이 생산한 창조물에 대하여 찬미를 던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남길 수 있다.

여행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잠시 동안 경험한 여정이 훗날의 나에게 어떤 행복을 줄 수 있을까? 어떤 긍정적인 선택을 나에게 안길까? 다만 내가 떠났고 순간을 즐겼음을... 가슴속 어딘가 간직했던 그때의 시간 다시 떠올릴 수 있으리라...



행복을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새로운 낙원을 향하여 떠나는 자는 사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 그 공포를 지불하는 순간에 가슴을 진동시키는 놀라움을 향하여 떠나는 것이다. - "행복의 충격"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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