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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12. 2017

WRITER'S BLOCK

지금의 위기도 곧 지나가지 않을까?

쓰는 것이 즐거운가?


  글쓰기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을 아는 것이 쉬울까? 누구나 마음이 건네는 이야기를 받아 적을 수 있을까? 마음과 대화를 나누어 보지 못한 사람은 쓰는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처럼 거울 반대편에 머무는 신비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고 가정해보자. 이전에는 몰랐던 세상이 열리고,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모험이 실현된다. 글쓰기는 감춰진 내 마음속의 세상을 발견하는 일이다. 마음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찾는 여정인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이렇듯 건조함에서 벗어나고 잃어버린 희망조차 되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정체다.



WRITER'S BLOCK


  멋진 글쓰기가 때로는 마음의 짐이 되었다. 좋아서 쓰는 글쓰기도 가끔은 침체에 빠지게 했다.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어도 여백이 채워지지 않았다. 넘치는 상상력을 주체할 수 없어서 의자에 앉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뇌의 활동이 갑자기 위축됐다. 어떤 이야기도 전개할 수 없었다. 마음에게 차분한 대화를 시도했다. 가볍게 한 마디를 건네봤지만, 무거운 침묵이 다가왔다. 한 글자라도 쓰게 해달라 필사적으로 발악도 했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고, 나는 빈 종이를 받아들고 절망했다. 


난 매일 아침 경건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는다네. 그렇게 매일 8시간을 앉아 있지. 그리고 그게 다라네. 그 8시간 동안 고작 세 문장을 쓰고는 이내 절망에 가득 차 책상을 떠나고 말지. 어떤 때는 머리를 벽에 찧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마음을 다스리고 자제하는 데 온 힘을 쓴다네. 입에 거품을 물고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아이가 깰까 두려워, 아내가 놀랄까 두려워 감히 그렇게 하지도 못해. 절망으로 가득 찬 위기가 지나고 나면 몇 시간 동안 꾸벅꾸벅 존다네. 하지만 그럴 때도 쓰지 못한 얘기가 있다는 걸 항상 의식하고 있지. 잠에서 깨면 다시 글을 쓰려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기진맥진해 침대로 돌아온다네. 날짜는 가는데 아무것도 쓴 게 없어. 밤엔 잠을 자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 또 헛된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무력감에 겁이 난다네...

아마도 나는 문체에 대한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듯해. 그리고 이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고 있지. 쓰지 못한 이야기는 내가 보는 것, 내가 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읽는 책 한 줄 한 줄마다 스며들어 있어. 난 뇌를 느낄 수 있네. 내 머리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내 이야기는 마치 유체와 같아 자꾸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네. 그걸 잡을 수가 없어. 바로 내 머리에 있고 곧 폭발할 것 같지만 한 줌의 물을 쥐듯이 그렇게 낚아챌 수가 없군......

그렇다고 느린 것은 아니라네. 내용물은 속도를 내어 쏟아지지. 나는 언제나 이를 받아 적을 준비가 되어 있네. 하지만 문제는, 너무 자주, 너무 슬픈 일이지만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라네. 문장을, 단어를...... 가장 큰 문제는 전혀 글을 쓰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내 상상력만큼은 아주 활발하다는 걸세. 한 단락, 한 페이지, 하나의 장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네. 모든 게 거기 있지. 묘사, 대화, 생각, 모든 것이. 단 한 가지 없는 것이라면 바로 확신과 믿음이야. 종이에 내 펜을 가져가게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확신과 믿음이...... 마음과 심장이 아파올 때까지 책에 대해 생각하네. 그리곤 힘이 다 빠져 침대로 돌아오지. 한 줄도 쓰지 못한 채로 말이야. 지금까지 내가 쏟아부은 노력이라면 응당 산처럼 거대한 명작이 탄생돼야 하지만 그 결과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네.

                                                           <조셉 콘라드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시기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



글감의 부족, 아이디어의 부족


  저명한 작가도 위기를 겪는다. 그들도 사람이었다. 작가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나 역시 비슷한 고초를 겪었다. 한번 리듬을 탔을 때는, 흥겨움에 도취되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글감이라도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의 약발은 짧았다. 일상은 여전히 작가의 길을 가로막았고, 찬연했던 마음에는 먹구름이 끼었다. 현실은 무섭게 나를 휘어감았고, 떨어뜨린 희망은 때로 산산이 조각나기도 했다.


  내가 글을 쓸 수 없었던 첫 번째 원인은 '직장의 일'이었다. 정신이란 것이 한 가지 -  - 에 집중할 때, 다른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처리할 수 있다며 자랑하고 다녔으나, 업무와 내가 쓰고 싶은 '감성 글쓰기'는 공존할 수 없었다. 업무에 몰입할수록 글은 소외되었다. 소외시킬수록 글은 더 멀리 사라졌다. 다시 글을 찾겠다고 책상에 앉았지만, 커다란 벽에 둘러싸인 것 같았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외적인 요인보다 내적인 요인이 더 컸다. 부족한 시간은 쪼개어서 쓰면 됐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일에 집중을 하게 될 때면 다른 생각은 자동으로 접혔다. 직장에서도 일, 집에 와서도 일, 장소에 상관없이 해결되지 않은 일을 생각했다. 나는 급여를 받고 일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다른 사람이 해결해줄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내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내 자리에 대한 책임이다. 마음과의 투쟁은 다른 사람과 벌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승부였다.


지금 우울하지는 않은가? : 가정의 문제, 상처, 불화


  이렇듯, 직장의 일에 몰입할수록 글쓰기에 필요한 감각은 멀리 달아났다. 마음은 촉촉한 감성을 잃어갔다. 책상 앞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어도 머릿속은 텅 빈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다며 일부러 걷기도 했다. 달빛이 쏟아지는 밤거리를 걸을 때, 그럴듯한 글감이 떠오르기도 했다. 상상력을 발산하는 기관은 큰 문제가 없었다. 병든 내 마음이 문제였다.


 

 우울한 마음은 글쓰기를 정체시키는 원인 중의 하나였다. 가정의 불화,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사회적 불안 등의 문제가 자존감을 추락시켰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추락한 자존감을 회복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의무적으로 글을 쓰려고 했을 때, 마음은 절대 반응하지 않았다. 쥐어짜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마음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나를 내팽개쳤다.


글로 자신을 치유하라.(마음과 대화)


  상처받은 마음의 회복이 먼저다. 글쓰기가 아무리 좋아도, 내 마음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글은 기나긴 인생에 주어진 오래도록 풀어야 할 과제다. 급하게 몰아붙여서 단기간에 성과를 거둘 대상이 아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면 떠났던 글은 저절로 다시 찾아온다. 


  다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슬슬 마음의 엔진을 예열시켜야 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슬럼프 탈출의 순간을 준비해야 한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글감을 모아두자. 길을 걸어갈 때, 잠시의 여유가 찾아올 때 스쳐 지나가는 글감을 메모해두는 것이다. 단어 하나, 짧은 문장이라도 상관없다. 모아둔 글감이 더 많은 글을 생산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닐까?


  쓰고 싶지 않을 때나, 한 글자도 쓸 수 없을 때에는 과감히 그 순간을 포기한다. 무엇을 해도 집중이 안 될 때는 바깥세상으로 산책이라도 나가자. 마음의 벽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침묵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형서점, 나무와 벤치가 있는 공원, 고소한 커피를 볶고 있는 카페, 초록으로 덮인 들과 산으로 산책을 나가는 것도 좋다. 그렇게 처진 내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이 먼저다. 문득, 글이 쓰고 싶을 것이다. 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대화를 하고 싶어질 것이다. 글로 마음을 치유하게 될 경험을 할 것이다.



문제를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자. 안된다고 억지로 마음에게 강요하지 말자. 기다려야 한다. 글쓰기에서 잠시 떠나있어도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위기도 곧 지나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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