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것에 완벽해지려 하지 않겠다.
가끔은 필름이 끊기듯
어느 구간이 통째로 기억에서 사라지는 때가 있다.
똑같은 일이 번번이 반복되기 때문일까?
무의식적으로도 기억에서 비워버릴 만큼
특정 장면이 유난스럽지 않은 탓일까?
얼마 전부터 유달리 그러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입력이 폭주하면 그것을 처리할 뇌에 부담이 늘어가게 된다.
인간의 뇌는 CPU처럼 작업들을 미세하고 치밀한
클럭 단위로 나누어 동시에 처리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한다면 너무나 짧은 순간이라 인간에게는
동시에 처리하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것이지만……)
내 머리가 때로 그것을 따라 하려고 흉내는 내지만
모두 처리할 수 있다고 기대할 뿐, 사실은 많은 것을 빠뜨리고 있다.
한 번에 처리할 수 없는 내 용량 탓일까?
빨리 처리할 수 없는 내 속도 탓일까?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내 소극적인 자세 탓일까?
머릿속을 향하여 수없이 많은 말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분명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내 태도 때문인지
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내 머릿속의 상태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치열한 시간과의 싸움 때문인지
나는 갈팡질팡 생각과는 반대 방향으로 자꾸만 어긋나고 있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다.
끊겨 잊힌 내 필름 속에는
무심코 지나가 맺어지지 못한 인연도 있고
어떤 이와 나눈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도 있으며
새삼스러울 리 없는 일인 줄 알았건만 놓쳐버려 후회한 장면도 있다.
모자란 기억을 채우기 위하여
메말라버린 뇌세포에 단비를 내리기 위하여
흩어져버린 기억의 잔상을 모은다.
산만하게 전개하던 마음속의 진동을 타이르고
하나둘 차분하게 숫자를 세어가며 타이머를 다시 맞춘다.
마치 내가 슈퍼맨처럼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착각하여
모든 것에 완벽해지려 묘기를 부리고 다니지 않겠다.
자존심에 상처받을까 억지로 결과를 쥐어짜려고
밤과 낮 구별 없이 시간을 버려가며 스스로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겠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거부할 수 없는 책임 그 자체더라도
가끔은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찾겠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의미 없는 글이라도 남길 수 있는
눈을 감고 과거를 돌려볼 수 있는
한적한 시간 속으로 보기 좋게 익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