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을까.
급한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던 한 주를 넘기고
주말을 맞아 빈틈을 찾는다.
새벽에 기습작전하듯이 세상 밖으로 잠입하고
야반도주하듯이 회사에서 뛰쳐나가 집에서 기숙(寄宿) 하길 반복하다 보니
벌건 대낮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다.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고 보니
빛으로 가득 메워진 풍경 탓이었을까
어색한 듯 요란스러운 재채기가 튀어나온다.
시간의 경계가 무색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그만 일터로 향할 듯 발걸음이 빨라진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시 정돈하고
분주한 시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구석에 묵혀두었던 카메라를 둘러매고
오랜만에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니
익숙했던 광경이 낯선 색채로 펼쳐진다.
아무도 없는 벤치를 혼자 독차지하고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다 멀리 두었던 미소를 가져온다.
봄 햇살치고는 눈이 부시도록 따가웠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거칠 것 없이
한 방향으로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아내가 선글라스를 두고 왔다고 잠시만 기다리라 부탁한다.
나는 조급한 마음이 목 부근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마음에서부터 솟아오른 분주함을 가라앉히고
카메라를 꺼내어 이곳저곳을 담는다.
멀어지는 아내 발걸음에 장단이라도 맞추듯이
새소리가 자그맣게 귓가에 내려앉았다가 퍼져 나간다.
잠시 나는 고독한 존재가 되어
공기 중으로 아득히 떠올랐으나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물체로
이곳저곳을 퍼져나가다 미립자의 형태로 부서지곤
다시 흙 속에서 청춘의 꽃으로 태어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을까.
얼마나 많은 장면이 바뀌었을까.
고독과의 감격적인 상봉이 끝나갈 무렵
아내가 여름을 안고 내게 다가온다.
아…… 봄은 갔으나 찬연한 미소를 머금은 아내가 내게 뛰어온다.
다시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