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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04. 2017

쉴 수 있는 빈틈을 선물한 누군가의 배려

어수선한 마음을 날려버리고 파란 하늘과 바람을 맞으며…….

이사를 마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세상 밖으로 뛰쳐나간다. 
동풍 때문이었을까?
얼마 전까지 공기 속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미세먼지들이 
모두 중국으로 돌아간 덕분인지 깨끗한 하늘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모두 마음의 짐일 뿐
서둘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고집한들 
원하는 그림이 반드시 나온다고 담보할 수는 없다.


아내와 나는 어지러운 살림살이를
잠시 마음에서 날려버리고 파란 하늘과 바람을 맞기 위해 나선다.


공허한 거리,
누군가를 기다리는 빈 의자,
빨갛게 피어나 내 얼굴을 붉게 물들게 한 장미꽃
그리고 지치고 메마른 내 마음을 
보드랍게 안아주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던 작은 숲.


집 앞에 숲이 있었다.
누군가는 찾았으나
누군가는 외면하는
죽은 듯 살아가는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숲
자연의 일부로서 오래 각인된 기억을 잃고 사는 인간에게 
호흡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숲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나는 걷는다.
아주 느리게…… 
발바닥에 닿는 흙의 까칠한 감촉을
좌우로 둘러싸인 울창한 산록의 내음을
그 모든 여유를 잠시나마 온전하게 받아들이려 조급한 마음을 달랜다.



길은 꾸불꾸불 휘어지며 헤어지다가 다시 만나기를 거듭한다.
도시에 갇혀있는 숲이라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드려내려 높은 곳으로 외각으로 영역을 과시한다.
숲은 빛을 때로 가두기도 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잠시나마 
세상의 정체로부터 벗어나 정지된 시간을 즐기고
숲을 즐기는 여행객으로 머무르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버려진 폐목이 복원된 나무를 잠시 바라본다.
쉴 수 있는 빈틈을 선물한 누군가의 배려를,
쓸모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작은 진리를 다시 배운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파란 하늘과 몇 개의 흘러가는 구름
그리고 그것을 떠받치는 초록의 물결들
내 마음은 굉장히 평화로워져서 이 시간이 그대로 멈춰졌으면 한다.



숲은 작았지만, 내가 머무른 시간은 충분하도록 길었다.
망각의 숲에서 벗어나면 다시 차가운 일상이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잊고 사는 인간은
때로 자신이 얼마나 평화로운 곳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산다는 것도 잊는다. 



너덜너덜하게 해어진 내 감정이 차츰 되살아나는 것이 느껴진다.
너저분한 내 마음을 다시 가다듬게 해준
숲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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