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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16. 2017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렷하게 알고 있다.

신제품 출시 일정이 늦어짐에 따라 마음에 주어지는 압박감은 늘어진 시간에 비례하여 상승하고 있다. 오늘도 시간이 성큼 달아났으나 생각은 그것의 이동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분명 시간에 쫓기고 있다. 부족한 시간을 메우기 위하여 개인적인 영역마저 일에 양보하고 있다. 단지 나는 주어진 역할을 문제없이 수행해야 할 시스템의 일부분이고, 대뇌의 프로세스가 전달하는 명령에 즉각 반응해야 할 시스템의 주요 부품인 것이다.

의자에 누인 허리는 활처럼 휘어지고 모니터 속에 처박은 고개는 '코드'란 것에 집착한다. 두 눈은 모니터 속으로 광선을 맹렬히 쏘아붙이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기계가 알아들을 수 없는 신호로 나에게 파동을 치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을 가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를 써봤자 머릿속엔 '우리로부터 38만 킬로미터 떨어진 달의 내부가 비어있다는 미스터리 한 이야기' 만큼이나 텅 빈 울림만이 가득할 뿐이다. 내가 싸우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일까? 미래일까? 아니면 일일까? 분명한 건, 이 시간 내가 마주하고 있는 대상은 단지 일이다. 전부이면서도 때로 삶의 일 부분으로 소외시켰으면 하는 일,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는 책임, 즉 일 말이다.


"이소장. 책상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야. "
"그럴 때는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한번 쐬고 오도록 해봐."
"가끔은 일을 향한 집착에서 멀리 떨어지도록 해봐. 그럼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야."

오래전 나의 스승이 줄곧 이야기 했던 화두였다. 부족한 실력을 만회하기 위하여 늘 시간과 결투를 벌이곤 했는데, 무거운 엉덩이는 빠질 수 없는 큰 무기였다. 책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일에서 멀어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집중이라는 것은 의자에 철썩 달라붙어 있는 집착에서 나온다는 것에 의심을 두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무실을 뛰쳐나와 복도를 향한다. 통로를 밝혔던 모든 조명이 꺼져 있었는데, 그것은 늦은 시간을 증명하고 있는 전달자이자 흘러버린 시간의 잔상이었다. 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오르자 밤 하늘엔 달빛이 떠있다가 어두운 마음 한자리에 걸터앉는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갔는지 밤공기는 눅눅한 상태로 손등 위에 주저앉는다. 무심히 흘려보냈던 스승의 말이 다시 손등에서 가슴으로 차오른다. 잠시 생각을 놓고 기존의 질서에서 슬쩍 떨어져 본다.

고인 생각을 과연 바꿀 수 있을까.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나를 뜯어고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나에게 굳어진 습관과 그것에서 파생된 생각하는 방식은 '나'라는 인간을 규정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나를 바꾼다는 것은 불안한 미래, 현실에 대한 괴로움이 반영된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말하다>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인 것이다. 내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한 가지 문제에 침잠된 나머지 그것에 내면이 강하게 붙들려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문제만에 매달린 나머지 다른 중요한 것들을 모두 흘려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할 때다. 이 모든 것은 나로부터 잠시 떨어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생각을 전환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텅 빈 공간에서는 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는데, 고독은 인간에게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이 분명하다.



사무실에는 몇 사람이 남아, 나와 함께 운명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어느 시점의 동료다. 단지 서로가 맡은 책임의 무게가 다를 뿐, 다가오는 미래가 좀 가벼웠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어느 곳에서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실천으로 결과를 보여주고 말겠다는 열정이 우리를 밤 깊은 시간까지 책상 앞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일까. 마지막 스퍼트라며 힘을 내라고 말하는 내 입에 거짓이 담겨있는 건 아닐까. 그들에게 내민 긍정적인 언어와 비관적인 생각이 내 머릿속을 잠시 스쳐 지나간다.

건너편에 앉은 동료의 시선이 보인다. 흐릿한 눈동자와 처진 어깨가 그의 상태를 짐작하게 한다. 몇 시간만에 겨우 기지개를 펴는 나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한 가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집착하다 보니 몇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다. 수없이 많은 과거가 지나갔는데 내 손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책임하게 시간을 소비해버린 것은 아닌지 불안함이 앞선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잠시나마 또렷한 미래를 봤다. 이 텁텁한 삶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쉴 수 있으며, 무엇이든지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있음에 나에게 위로를 내밀 수 있다. 생각이 앞서서 걸어가자 지친 몸은 뒤를 따른다. 둘 다 돌아갈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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