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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18. 2017

천원의 행복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조금 더 일찍 서두른 출근길
끈적해진 거리를 서성이다, 발길이 먼저 향하는 곳은 
큼지막한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야 겨우 눈에 뜨이는 작은 커피집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참 많이도 생겨났다.
여기저기 비슷한 간판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단 돈 천 원에 진입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들에게 커피와 돈까지 덤으로 되돌려 받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원리일까?
이 가격은 서로에게 과연 합당한 것일까?
그들에게도 손에 쥘 것이 남아 있을까?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나와 같은 직장인에겐 단비지만,
어떤 사람의 치열한 생존이 나에겐 행복이 되는 거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어쨌든, 고단한 아침이지만 그들의 배려 덕분에
적은 가격으로 나는 사치스러운 하루를 맛본다.
우리의 삶이 가까이 보면 처절한 사투로 보이겠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 보면 평화로운 풍경으로 비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것은 커피와 함께 하는 것으로 방점을 찍는다. 

생각을 벗고 빼곡한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빠져나온다. 
무거운 발걸음을 커피집으로 천천히 옮긴다. 
원두의 진한 내음를 따라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젊은 친구가 밝은 미소를 건넨다.
천 원을 내밀고 빈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살핀다. 
10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다. 

읽고 있었던 책을 열고 몇 페이지를 넘겨본다.
며칠 전부터 지하철에서 틈틈이 읽고 있었던 <싯다르타>다.
나 역시 주인공처럼 적지 않은 방황을 거듭하고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세속의 모든 욕망의 찌꺼기를 씻어내기 위하여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원리를 깨닫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 그처럼 고행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의 내 삶 역시 윤회의 사슬에서 쳇바퀴를 돌고 있는 건 아닌지.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켠다.
차가운 것이 목을 타고 가슴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맛은 어떠한가 고급스러운 스타벅스에 못지않는다.
손바닥까지 싸늘한 한기에 얼어붙게 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다른 손에는 둥글둥글한 베이글을 드는 것으로
직장인의 그럴듯한 출근 룩이 완성이 된다. 

이것은 누구나 맛볼 수 있는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며 시간에 쫓겨 다니는 
나와 같은 직장인에겐 천 원짜리가 안겨주는 평범한 순간조차 행복이 된다.

누군가에게 천 원을 건네고 그에게 잔잔한 미소를 받아든 나는
이 순간의 행복을 다시 누구에게 전해줄 것인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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