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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02. 2017

기계적인 삶에 대하여

나는 로봇인가?

나는 때로 내가 로봇이 된 것 같은 혼란스러움에 빠진다. 아침마다 기계적으로 일어나서 익숙한 옷으로 갈아입고, 또 들썩거리는 지하철에서 흔들거리며 눅눅한 몸으로 직장을 향하고, 다시 정해진 시간이 되면 집으로 귀가하는 반복적인 생활, 이것이 기계적인 삶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나는 그렇게 누가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기계와 닮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은 이미 특정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었고 머지않은 미래에는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언젠가는 특별한 결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매트릭스의 가상 시뮬레이션 세상처럼 실제를 포기해야 하는 게으른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미래에 대한 예측은 현재의 내가 인간으로 남을 것인지 기계로 살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두 가지가 뒤섞인 하이브리드 삶을 살 것인지 복잡한 판단을 요구한다.

다만, 그런 삶을 거부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강요당하거나 그런 부자유 속에서도 미세하게나마 시스템의 체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자유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모순된 생각에 빠져 아침마다 이런저런 착각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어쩌면 과거의 자유를 잃어버린 채, 약간의 희망에 의지하여 순간을 살아가는 그런 낡은 로봇은 아닐까.

내가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나를 봐야 한다? 거울을 보면 알 수 있을까? 외형적인 모습은 거울로 당장 확인할 수 있겠지만, 마음은 어디에 비출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면, 심해처럼 깊은 마음속으로 푹 빠질 수 있을까? 하지만 생각이란 것은 금방 사라져버린다. 생각은 바람 같은 것이다. 모자란 인간의 기억력은 지금 떠올린 감성과 생각을 흘려버리도록 내버려 둔다. 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 그것은 생각에서 출발하는데, 글은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물과 순간을 저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어쩌면 글이란 저장강박증에 빠져있는 나와 같은 인간 부류에게 가장 적합한 수단이 아닐까.

나는 서두에 언급했듯이, 누군가 내 심장에 입력한 대로 특정한 명령에 순응하도록 프로그램된 생명체이다. 나는 정해진 패턴과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규칙적으로 행동한다. 그곳에는 예외란 없다. 아침이 되면 눈이 떠지지 않아도 일어나야 하고 직장에서는 수많은 적들과 전쟁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매일 심야가 찾아올 때마다,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신체적인 여건이라면 펜을 들고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은 습관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습관이라는 것은 몸이 완전히 익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다. 3년째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명시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며 마음에게 분명한 명령을 전달해야 할 만큼 나는 완벽하지 못하다. 아직도 글을 쓰기 위한 근육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것이다.

글쓰기의 끝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신만이 느낄 수 있는 천상의 맛일까.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의 맛일까. 내가 볼 때 그저 달콤한 맛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지금 극도의 쓴맛을 맛보고 있는데, 왜 이곳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을까? 이곳이 천상의 세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옥도 아닐진대, 보이지 않는 어떤 경계를 넘기 위하여 이토록 잔인한 세상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걸까. 아마도 남들은 이해할 수는 없는, 반면 개인적으로만 지극히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선을 넘보려는 간악한 의지도 아니고 누군가를 뛰어넘으려는 지적 허영심도 아닐 것이다. 나는 그저 매일 나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것이다. 그것이 내 머릿속의 뉴런 시스템이 발산한 화학 작용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원할만큼 고도로 정밀하지 못하다. 지금도 다수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에 지속적으로 배우고 또 익히며 지식이라는 것을 먹고 자랄 수 있다. 심각한 에러를 차츰 줄여나갈 수 있는 높은 확률을 남보다 더 가지고 있다고 할까? 글은 바닥나버린 내 마음을 채워주고 부족한 확률도 메워준다. 글을 쓰고 있으면 괴롭던 일상도 기계에 찌든 내 일상도 파도에 쓸려 사라진다. 글은 고장 나 버린 내면을 치유하는 신비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나는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기회를 지금처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주워 담을 것이다. 기회란 것은 때로 모래처럼 내 손위에서 부서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다만, 모래 한 줌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누군가 내 머릿속에 강제로 입력한 의무란 것들을 지울 수 있겠지. 내가 거쳐간 길들이 언젠가 아름답게 비칠 날이 오겠지.

자유를 내면에 무장하고 
원하는 의지를 가슴에 품고
나를 제한하는 모든 압박에서 풀려나서
힘차게 걸어가 보는 것이다.
물론 그 옆에는 글이 함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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