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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06. 2017

우리는 지금 스케일 업을 하고 있다.

인내도 쓰고 성공도 쓰다. 그 길을 위해 무엇이든 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가동한지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다음 주면 제품이 출시된다고 하니 그동안 고생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처음 아이디어를 내놓고 활발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던 적이 어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나가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사뭇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1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있었다. 외주 개발을 맡은 업체의 불성실한 개발과 기간 불이행, 그 업체가 완성하지 못한 제품의 기능적 한계, 한정된 내부 인력만으로 그 부실한 결과물을 단기간에 서비스 레벨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우리 팀에 남겨진 숙제, 제대로 된 기획 없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정체성에 혼란이 닥친 문제, 밑천이 드러나버리자 포기하고 중도에 달아난 인력……


  총체적인 난국이라고 하면 맞는 말일까? 우리는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팀이 겪는 모든 시행착오를 거쳤다. 웬만하면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도록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으면 좋았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처음부터 너무 큰 희망을 그렸던 것 같다. 단순하게 비용을 투자하여 외주업체에 일을 맡기면 원하는 대로 서비스와 기술력까지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쉬운 생각으로 세상을 단숨에 정복하겠다는 야욕을 부린 것이 아니었을까.

  제품의 출시를 확정 지은 지난달,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축적의 시간>이라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방송에서 이정동 교수는 '개념설계'라는 말을 강조했다. 


  7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간과해온 것이 있다. 제품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전에 가장 필요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밑그림이란 ‘개념설계’를 말한다. 쉽게 설명해 과제를 수행하기 전에 과제의 속성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선진국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 ‘개념 설계’ 능력을 축적해왔다.


   나는 늘 창의롭고 진취적인 아이디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빼어난 것은 아무나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남이 주도하는 트렌드의 뒤만 쫓아가서는 절대 가치로운 서비스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나는 현직 프로그래머이지만, 남들보다 비상한 재주가 한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아이디어를 직접 생산하고 다른 아이디어를 조합하여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이정동 교수의 강연을 들으며 내 생각이 헛된 믿음이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말았다. 그의 말에 따른다면 아이디어는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며, 세상에 있는 그 누구라도 당장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이디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스케일 업(Scale-Up)' 해야 하는데, - 스케일 업이란 어떤 제품의 사업화를 염두에 두고 아이디어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 아이디어는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고객에게 서비스할 수 있는 제품 수준으로 만든다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것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위험이 뒤따른다. 반복 실험, 현명한 인재 확보와 관리, 내적/외적 갈등의 조절, 비용, 버티기, 기술력 보완, 경험 축적, 전문가 활용 등의 모든 난관을 뛰어넘게 될 때 실패 위험이 줄어든다.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는 것, 사람들에게 유용한 가치를 심어준다는 것, 지속적으로 이용하도록 유도한다는 것, 그리고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는 몸소 체험하고 있다. 내가 겪고 있는 과정이 스케일 업이었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그토록 고통스럽고 때로 도망치고 싶었던 심정을 이해하게 되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험난하다고 하여도 견뎌낼 수 있는 자신감도 생긴다. 오래된 나의 스승은 이런 말을 했다.


개발자가 나태해질수록 그리고 느슨한 마음에 영혼을 빼앗길수록 고객은 우리에게서 멀어진다고……
마지막 하나의 미세한 부분에까지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고……
그것이 기술자가 해야할 마땅한 일이라며 어느 한 가지라도 대충 떼우려는 안일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다음 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지난 금요일도 팀원들과 밤을 지새웠다. 한 가지 결함을 두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팀원들이 모두 책상에 모여 앉았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서로 내놓았다. 그리고 한 가지씩 내놓은 방안을 구현했다. 그러나 해도 해도 문제는 해결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눈꺼풀은 계속 아래로 쳐졌고 다크서클은 시커먼 윤곽을 드러냈다. 시간이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기자 포기하고 싶은 열망이 더 증폭됐다. 그저 시간만 투자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내면에서 아우성을 쳤다. 그래도 집요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 스승의 말이 갑자기 도끼처럼 내 머리를 찍었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밍 역시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승리하는 것일까? 그것 역시 이 세계의 진리란 말인가. 결국 우리는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집요하게 매달린 끝에 난제 하나를 해결했고 또 다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함께 힘을 쏟았다.


내 개발 환경(집)


 프로젝트의 총괄을 맡으면서 제품의 생과 사에 대한 책임도 있지만, 프로젝트라는 것이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기에 그것의 완벽한 성장을 위하여 우린 모든 것을 바쳐야만 한다. 만약, 한시라도 흐름을 놓치게 되면 물살이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기에 나는 흘려보내지 않기위해 모든 과정을 날카롭게 주시해야 한다. 

  회사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하여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나는 대표에게 실망을 끼치는 것이 두려워 지금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우리 조직의 역량으로 시장에서 먹힐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실패한 쓴 맛이 아닌 고된 스케일 업 과정을 통해서 원하는 목표를 실현한 꿀맛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해묵은 그 노력이라는 것을 모두 들이붓고 있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연구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 팀에게 달려있다. 가용한 노력, 그리고 시간을 투자한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는 항상 내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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