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an 11. 2018

화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

화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둑이 터졌다.


물이 줄줄 샜다. 여기저기 막을 겨를도 없이 한 손가락으로 틀어막으면 또 다른 쪽이 터졌다. 쓸 수 있는 열 손가락을 모두 써봤자 막을 수 있는 구멍은 열 개가 전부였다. 미봉책에 불과했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손가락으로 때워봤자 구멍은 부피를 키웠다. 손쓸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하지 않나? 와르르 허물어지는 사고 앞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라고 탄식을 토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한 번 터진 구멍은 기세를 더욱 높여갔고, 마치 전염병처럼 위용을 자랑했다. 왜 새는 걸까? 이미 사고는 터졌고 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어졌고 차라리 원인 파악이라도 해보자며 나섰다. 경황이 없어지니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잔머리와 꼼수가 난무했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다는 아우성만 쳐댔다.




수내역을 찾다.


연구소 팀원들을 데리고 수내역을 찾았다. 수내역 부근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테스트할 수 있는 센터가 있다. 일반적인 기업에서는 테스트 시료를 갖추기 쉽지 않다. 예상치 못한 앱의 비정상 작동을 방지하고 숨겨진 결함을 찾아 보자며 먼 센터를 찾게 되었는데, 오늘 아침은 왜 이렇게 추운지 발걸음부터 썩 내키질 않았다.

이번 달 말 아마존에서 현지 버전의 앱과 하드웨어 상품을 출시한다. 미국 현지 출시를 앞두고 전 직원의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있었다. 작은 결함이라도 우리는 용납할 수 없었다. 완벽하게 작동하는 앱을 위하여 테스트 센터를 찾았던 것이다. 우리는 앱에서 일어날 수 있는 티끌만 한 버그라도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겠다며 사기가 하늘을 뚫고 있었다.




다량의 버그 발생


스무 가지가 넘는 폰에 앱을 설치하고 테스트를 시작하자마자 이전 버전에서 발생하지 않던 버그가 발생했다. 웃어넘겼다. 과거에 수정된 버그인데 왜 에러가 났을까, 라는 심각한 판단보다 쉽게 수정할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증폭했다. 문제는 한가지 버그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면밀하게 점검하지 않은 탓이었을까. 신경 쓰지 않아도 잘 해낼 것이라는 섣부른 믿음 때문이었을까. 테스트를 할 수 없을 정도의 크리티컬한 버그가 연속적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내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고 간혹 던지던 농담마저 사그라들고 있었다.

실무를 담당하던 개발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커피를 마셔서 쇼크가 온 것 같다고 말하던 개발자의 얼굴에서 패자의 어두움이 보였다. 나는 그래도 걱정하는 내색은 하지 않기로 했다. 발생한 에러 목록을 정리하여 담당 개발자에게 넘겼고 차근차근 소스 코드를 들여다보라 했다. 




몰입


속절없이 시간은 지나갔고 해결할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옆에서 두고 보다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긴급 판단을 해야 했다. 개발자 노트북을 열어 놓고 에러가 발생한 부분을 조목조목 분석하기 시작했다. 개발자의 능력에 따라 생산성은 수십 배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내가 개발한 소스 코드가 아니지만 몇 블록의 코드만 분석해봐도 대충 어디쯤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개발한 지 십수 년 되었다고 이런 것도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신기 있는 무당이 대충 넘겨집어도 점괘가 맞는 것처럼 나도 그런 행위예술을 하고 있었다.

집중하기 위하여 역량을 총동원했다. 페어 프로그래밍을 하며 문제를 어떻게 찾아가는지 이를테면 콜스텍을 찾는 방법 그것으로부터 코드를 역추적하는 방법을 개발자에게 설명했다.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벌레 먹은 곳은 이미 썩어서 도려내야 했다.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잘라냈다. 살려야 할 부분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발려냈다.



팀원들이 많이 긴장했을 것이다. 선임 개발자 앞에서 자신이 개발한 누더기와 같은 소스 코드를 보여주는 상황이 마치 광장에서 옷이 발가벗겨지는 치욕스러운 경험과 비슷했을 터. 나도 한때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비를 넘어가려면 그 정도 자존심 상하는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존심 따위야 마음대로 찌끄러져버리든지. 직장에서 20년 넘게 버텼는데 그깟 자존심 하나가 문제는 아니다.



화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팀원들에게 잘못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내지 않았다. 화를 낸다고 하여 상황이 달라지면 실컷 스트레스라도 풀어버렸을 것이다. 나는 화의 비능률성을 잘 안다. 화를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긴장과 스트레스 때문에 근육이 수축되고 머리가 경직되어 두뇌가 회전을 못하니 상황이 악화되기만 한다. 

화를 내는 것은 내가 도움이 안 되는 꼰대라는 것만 증명하는 것이다. 분노하거나 스트레스를 부하직원에게 표출한다고 상황은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팀원의 문제라고 그것을 전가시키는 것도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손을 걷어붙이고 직접 소스 코드를 두드려 봄이 맞다. 


나는 농담거리를 던지며 문제 해결을 같이 해보자고 했다. 잠시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다. 생각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할 때 해결점도 보인다. 나는 시답지 않은 농담 같은 것, 아재 개그 같은 것을 던지며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머리를 같이 맞대면 언젠가 해결된다. 이 세상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 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