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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04. 2018

좋은 생각을 맞이하는 방법

집 앞 작은 공원과 서촌 산책

#장면



  아침이 되면 생각은 생명을 얻고 어딘가에서 살아가다 사멸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는 길이다. 생각은 각오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문득 나에게 찾아왔다 날아가는 바람 같은 존재인 것이다. 생각은 우리에게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이기에 곁에 찾아온 사실조차 직시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억지로 붙들려고 한다고 좋은 생각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니 어떻게 생각이 찾아오도록 기다려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맑은 자세를 취하고 살아야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가거나, 원하지 않은 삶을 억지로 살아가거나, 자기비판적인 생각에 갇혀있는 것은 생각을 기다리는 사람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가까운 미래에 찾아올지도 모를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니 말이다.

  낯선 생각을 찾기 위해 바람을 맞고 싶었다. 봄바람에 물든 사람이라도 구경하자며 말이다. 그동안 추위 때문에 통 외출을 하지 못했다. 주말이면 책상에 앉아서 상상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했는데, 더 이상 마음 안에서는 자극을 찾을 수 없었다. 바깥세상에서 얻어지는 낯선 경험이 필요했다. 봄바람은 생각보다 따스했다. 장롱 속에 감춰두었던, 아니 사실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잊어버렸던 카메라의 먼지도 닦으며 산책을 시작했다. 



  집 앞 작은 공원부터 시작하여 멀리 떨어진 서촌까지 찾았다. 아내와 손잡고 나서는데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동일한 장소, 비슷한 각도에서 찍어내는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내가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 다른 비슷한 사진과의 차별점이 아닐까, 라는 생각. 다른 사람이 현상해 놓은 사진을 보는 것과 직접 적당한 자리를 찾고 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담아내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지 않을까. 타인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 세상을 분해하는 것이다. 나만의 감성으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인생에서 감독이듯이, 나는 어떤 순간에 인생을 연출하는 감독이 되어 보는 것이다.

  산뜻한 봄바람이 불었다. 마침 미세먼지도 가시고 산책하기 적당한 날이었다. 구체적으로 생각을 찾기보다는 떠오르는 순간에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염되는 상념 같은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기로 했다.





#생각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늪에 빠지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많은 글을 쓰긴 했는데, 글이 모두 엇비슷한 것이 마치 한 명의 작곡자가 만들어낸 유사한 음표의 배열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어디선가 언뜻 들어본 듯한 그런 느낌이 내 글에도 담겨 있다. 매일 똑같은 경험만 반복하는데, 새로운 가능성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무엇이든 내가 구하려고 한다면 길은 열린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머릿속으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다짐만 할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바람이라도 쐬거나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라도 한번 찾아보는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별처럼 빛나는 존재인가. 아니면 이제 사멸하는 운명을 맞이할 죽은 별 인가,라고 말이다. 



  물론 서울 하늘에서는 예전처럼 별을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당신이 하늘에 별이 없다고 결론짓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에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떠 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 아닌가. 하지만 빛나고 있는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두 가지 사실만 우리에게 주어져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빛을 낼 수 있을까. 미세먼지를 뚫고 어둠을 넘고 덩치가 큰 다른 별을 헤치고 나만의 빛을 찾을 길은 무엇일까. 끝없이 갉고 닦아야 할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래 그 시간은 가늠할 수 없다. 계산할 수 없으니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여기서 이렇게 빛나고 있으니 제발 내 존재를 알아봐 달라고 세상에 절규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 외로울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는 이 넓고 푸른 바다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스스로 빛을 만들어야 하고 또 비추어야 하니. 



  살아가는 동안 완벽히 빛을 낼 수 있을까. 한껏 폭발하고 어디론가 빨려갈지도 모른다. 짧은 인생,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의 삶을 살면서 그래도 언젠가는 환하게 빛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그래도 덜 외로운 것은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빛을 선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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