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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13. 2018

월요병에서 벗어나는 방법

넌 나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월요일이 오면 다른 날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것은 바로 월요병이다. 월요일 아침마다 스트레스 샤워를 한다고 할까? 문제의 심각성은 그것에서 벗어날 특별한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회피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전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지만, 글쎄 회사는 들어가기보다 나오기가 더 힘들지 않나? 차라리 휴가를 내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 싶다. 그래 일단 휴가를 쓰면 당장의 고비는 넘어갈 수 있겠지, 문제는 그것의 유효기간이 비교적 짧다는 것이다. 어차피 쉬어도 월요일 같은 다른 날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월요일은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코뚜레' 같은 것이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는 거다. 내 몸을 희생한 하루를 행복의 담보로 삼거나 아니면 먼 미래의 보상을 그리며 참는 거다. 참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달픈 일이다. 보기 싫은 또 얼굴을 봐야 하고 하기 싫은 업무를 억지로 해야 하는 것, 모두에게 비극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참는다. 고통을 견딘다. 다만 고통을 참는 방법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안으로 삭히는데, 그거 잘못하면 병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어떤 사람은 의식적으로 자신과 스트레스의 요인을 격리시킨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영혼 없이 일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 몸은 회사에 있지만, 정신은 다른 데 가있는 것이다. 요컨대, 계획해놓은 해외여행을 떠올린다던지, 퇴근 후에 자기계발을 설계한다던지, 꿈을 그리는 것이다. 막연한 것이 아닌 구체적인 것을.

똑같은 스트레스도 사람마다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짜증과 푸념을 섞은 비빔밥이나 찌개 류의 음식만 즐긴다. 그런 걸 먹다 자주 체하는데, 그것은 잦은 퇴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인데", "나는 원래 똑똑한 사람인데, 내 능력을 아무도 몰라줘." 이런 말만 늘어놓고 도망치는 삶을 선택한다. 그런 사람은 늘 문제에서 멀어지려고만 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도 한다. "내가 다른 쪽에 재능은 꽤 있는데, 이 회사는 나하고 잘 안 맞아.", "우리 회사에는 꼰대들 밖에 없어" 회사가 나를 왕따 시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회사를 왕따 시켜 버린다. 회사에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언제나 자신은 소외당하고 있으며 회사는 꿈을 키울 수 없는 공간이니 반드시 탈출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도 쭉 그런 생각을 했었고 그럴 때마다 도망치는 선택을 했다. 내 능력을 알아주는 멋진 회사가 있을 거라 꿈을 꿨지만 막상 그런 곳은 없었다. 나와 맞는 회사는 없었고, 회사를 옮길 때마다 그곳은 더 지옥이었다. 고통은 더 커졌고 내가 견디어야 하는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 것이다. 회피 스킬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으며 더 이상 갈 곳도 없는 무서운 현실만 내 앞에 있었다. 

어떤 계기를 맞으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그러한 계기란 위기였다. 내가 이대로 죽음을 맞는다면 내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라고 질문을 하니 생각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되는대로 남들이 가는 대로 따라다니기만 했던 인생. 이제는 관찰자와 방관자의 삶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고 미래의 삶을 개척하기 위한 방법은 책이었고 글쓰기였다. 내가 자주적으로 선택한 최초의 결정이었다고 할까?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을 한 셈이었다. 이제는 내 삶이 원하는 것을 묵살하지 말고, 나를 막아서는 모든 장애물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말이다. 생각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설계만 하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실천하지 못하고 끝난다. 약간은 무모한 짓일 수도 있지만, 덮어놓고 실행부터 하는 것이다. 그리고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을 수습한다. 일단 행동부터 하면 자연스럽게 생각도 따라가는 것 같다. 습관은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부터 우선한다는 아내의 말도 크게 도움이 됐다. 무엇이든 하기로 했다. 그것이 글쓰기든 밖에서 산책하는 것이든, 죽도록 일해서 회사에서 인정받는 길이든, 그 무엇이든 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말이다. 변명부터 하거나 핑계를 대는 삶에서 벗어나 행동부터 하는 삶을 살기로 하는 것이다.


'월요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딱히 그럴싸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나 역시 이런 글이나 쓰면서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이지, 별다른 대안은 없다. 직장을 다니는 한 월요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병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마음도 필요하다. 스트레스가 아무리 나를 누를지라도, '넌 나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라고 선언하는 의지 말이다. 단순하게는 월요병과 함께 가는 것이다. 병이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에 영향받는 나의 존재도 동시에 인식하는 방법으로 적당하게 거리를 조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함으로써 스트레스와 나를 조금이라도 분리할 수 있지 않을까? 알고 있다는 것은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삶은 고달프다. 먹고살려면 일은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월요일은 지나갔다.


https://steemit.com/stress/@futurewave/785y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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