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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18. 2018

주말의 산책

걷는다는 것의 의미

#긴 잠


아주 긴 잠을 잤다. 잠에 한이라도 맺힌 사람처럼 오랫동안 잠만 잤다. 토요일 오전, 아니 정오가 약간 모자랄 무렵쯤에 눈을 뜬 걸 보고 주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잠에 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전날 새벽 2시경에 잠이 들었으니 오래 잘 만도 했다. 무엇보다 묵혔던 스트레스와 피로가 한꺼번에 이마 정중앙으로 몰리는 기분이 들어 침대 근처를 벗어날 수 없었다.


피곤한 상태에서 잠에 빠져들 무렵 한 가지 공상을 했다. 잠에 들어 이대로 영원한 무의 세계, 즉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 생명이 처음 생기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뒤숭숭한 생각을 하다 보니 잠들지 못하고 오래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맑은 공기


자리에서 일어나자 습관처럼 공기를 확인했다. 모처럼 맑은 날을 되찾았다. 잃어버린 무엇을 다시 손에 받아 든 느낌이었다. 사과 반 쪽과 커피 한 잔,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세계를 풍미風味하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니 뜬금없는 글자들이 공기 중에서 부유하는 듯했다. 어떤 글자는 확연하기도 했고 어떤 글자는 희미하여서 활자로 생명을 부여하기에는 모자란 구석이 있었다.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을 해야 했다. 마음속에서 발광하는 움직임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은 반응하지 않았고, 마음은 어두운 곳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 떠올려 건져낼 수도 없는 미래만이 불투명하게 떠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그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다만 무엇으로 증거 할 수 있을지 문제였지만. 


바깥세상에 가득 차 있었던 먼지는 사라진 듯했다. 그것들은 느릿느릿 어디론가 흘러갔을 것이다. 어디로 갔을까. 또 누군가에게 해악을 입히고 있겠지. 내 눈가에 덮인 먼지들부터 먼저 걷어내야 했다. 그리고 깨끗한 세상과 마주해보리라 생각했다. 오늘은 글자보다 바깥에서 살 아다니는 생생한 것을 뒤집어쓰자고 다짐했다.



#산책


걷는다는 것은 목적지를 생각하게 하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걸어가면서도 꿈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그것을 소중하게 손에 꼭 거머쥐거나, 급하게 달리다 바닥에 흘리지 않도록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발견해야 한다. 적당한 속도가 의미하는 것은 심장의 규칙적인 운동성과 살짝 땀이날 정도의 긴장감은 아닐까. 


인생을 디오니소스처럼 포도주와 방랑에 취해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얽히고설켜서 도저히 풀 수 없는 숙제들과 섞여서 나란히 가는 것. 어제 범한 실수에 대해서도 담대하게 용서하는 것. 모든 미움의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 내가 사슬에 묶여있더라도 그 무게와 팽팽함 속에서도 본질을 절대 잊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닐까. 우리는 알면서도 끌려다니며 산다.


가까운 공원을 찾았다. 오늘은 틀을 벗고 자유롭게 걸어보기로 했다. 속도를 늦추고 주변에 펼쳐진 세상과 호흡을 나눠보기로 한 것이다. 세상은 아직 태어나기 이전이었다. 보이지 않는 생명이 땅속에서 움직임을 시작하듯 우리에게도 봄은 언제나 그랬듯 어김없이 찾아오지 않을까.



걷고 또 걸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버리고 싶은 생각을 쌓인 낙엽 밑으로 슬쩍 밀어 두고 싶었다. 인간은 질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 주장하는 사실을 무조건 믿는 것보다는 회의주의자가 되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길은 긍정주의자가 아닌 회의론자가 먼저 개척한 것은 아닐까. 무조건 긍정한다는 것은 낡은 권위주의에 의식을 침탈당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이 정답일까, 오답일까?" 질문을 던졌다.


칼 세이건은 그의 강연에서 회의주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 귀가 가볍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음을 열면, 그리고 회의적인 감각을 터럭만큼도 갖추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가치 있는 생각과 가치 없는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생각들이 똑같이 타당하다면 여러분은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결국 어떤 생각도 타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겠기에 말입니다."


좁은 산 길
낙엽 더미, 초록 기둥, 아파트 숲 사이를 헤엄치는 바람
몰려들어 산을 이루다 저무는 빛줄기
머물다 떠나는 꽃 같은 사람
이 모든 것을 보고 사랑하다 떠나야 하는 나



걷다 보니 내가 어디에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어떤 이정표와 이정표 사이에 서 있었다. 꿈꾸던 사실이 분명해지면 방향도 선명해질 것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걸으며 까마득한 삶을 헤쳐보듯 우리는 여전히 숨 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사랑을 연주하고 있지 않은가.



https://www.youtube.com/watch?v=6UZxnxBVS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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