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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21. 2018

평창에서

이벤트 참여

관광이 아닌 출장의 성격으로 평창에 도착했다. 1988년도 올림픽을 현장에서 경험한 후, 거의 30년 만에 국제적인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감회가 다르다. 과거에는 올림픽 경기를 구경하는 관람자의 신분으로, 지금은 회사를 대표하는 직장인의 신분으로 참여하게 된 차이도 있지만, 나이를 먹게 되면서 설렘에 둔감해져 가는 탓도 있기 때문이다. 직접 와서 경험한 평창의 추위는 두려웠던 것만큼 매섭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몇 시간이라도 참을만하다.


제품을 홍보한다고 이리저리 배치하는데, 혼란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장 휴가계라도 내고 나도 관광객의 틈바구니 속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 말이다. 바라고자 하는 이상과 현실은 역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둘은 같이 상생할 수 없는 관계 혹은 양립이 불가능한 관계이다. 두 가지 세계의 간극이 벌어질 때마다, 마음은 다급해진다. 그렇다고 거리가 좁혀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웃프다고 할 수밖에......  


바쁜 업무는 망각 속에 모든 걸 버려두게 했다. 심지어는 내 신분도, 시간도, 만남들도. 동양과 서양의 기운이 공존하는 평창에서도 내 시간은 자리를 지켰다. 이따금 바빴지만, 빈틈도 있었다. 챙겨갔던 릴케의 시집을 읽기도 했고,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기도 했다. 뭐 사무실보다는 다소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AK 분당점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주 토요일 특강에 대한 안내였다. 모객이 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눈치를 보니 그다지 흥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 보였다. 그래, 한 명이 참여하건, 두 명이 참여하건 인원수가 중요할까. 단 한 명이라도 내가 해야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 그래서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 아니겠는가. 더 큰 만족을 찾겠다는 건 욕망이거나 또 다른 형태의 소유욕이다. 


숙소로 복귀했다. 낮에 벌어졌던 일들을 기록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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