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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06. 2018

시간은 과연 내 것일까?

조금은 느리게 흘러갔으면

  회사에서 탄력근무제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엉켜있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자유를 얻었다고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다. 유난히 피곤한 날들이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산더미 같은 일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생각 때문일까. 잠만 잘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 같은 날들이 꽤 길게 이어졌다. 어떤 날은 잠을 충분히 자고 일어나도 이물감이 그치질 않아 나른한 시간이 되면 정신이 몽롱해지는 일이 잦았고 기다리던 주말이 찾아와도 하는 일이라곤 잠을 자는 일뿐, 나는 별 볼일이 없는 사람처럼 침대 근처에서 종일 살았다.

  어쩌면 피곤한 상태라는 건,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또 급하게 소모했다는 뜻일 것 같다. 그런 고달픈 소리는 "나 이제 모른척할 테니 그만 내버려 둬"라고 몸이 엄살을 부리는 일종의 경고 알람일 테지. 내가 사는 세계에는 알람의 모양이 워낙 다양하고 이곳저곳에 널려 있어서, 어떤 것은 무시당하고 또 어떤 것은 예민하게 굴 테지만 서도. 그런 온갖 소리에 반응해야만 하는 내 충실한 감정에 대하여 나도 때로 이해 못 하는 편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늘어놓은 어떤 소리, 마치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딱한 하소연 같은 사정 따위에도 너무 둔감하게 반응하는 남편 같다거나, 부러 귀찮다고 모른 척한다거나, 더 생산적인 일들에 정작 중요한 일이 순위가 밀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 서글퍼지기도 한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내 표정에게 탄력근무제는 팽팽한 삶을 과연 느슨하게 풀어 줄 수 있을까. 딱딱하게 굳어가는 감수성을 돌보지 않아도 될 만큼, 내 마음에도 물기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마음에 뭉친 것들이 조금은 해이해지고 누그러질까. 내 마음도 스펀지처럼 탄력적일 수 있을까.

  그래, 한 시간이라도 늦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이참에 멀리 양보해둔 '여유'란 것을 만끽해보기로 한다. 잠을 능률적인 자기 계발에 양보하는 법칙이 인생에 유익하다는 생각에서 잠시 떨어져 있기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따분하다는 생각도 멀리 보내기로. 

  아침 한 시간의 여유를 갖는 것이 내 몸에 느린 시계 하나를 장착하는 거라고. 남들보다 느리게 출발해도 삶은 달아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같은 자리에 늘 서있었다고 당신이 말을 건네는 듯한 아침. 멀고 높은 곳에서 이미 한참인 햇살의 정교함, 다소 느긋해진 내 발 걸음, 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버스 기사님의 느린 시간. 느린 시간이 이렇듯 고마운 것인지 새삼 깨닫는 아침.

  무수한 시간이 쓸려오다 쌓이고 다시 허물어지면 오늘도 다시 저물어가겠지. 오늘 밤에는 긴 잠에 빠져서, 야심한 시각에 홀로 깨어나 잠 못 드는 일은 없었으면. 떠오르는 생각들일랑 서랍 속에 넣어두거나 단정하게 접고 접어서 침대 끝에 올려두거나 혹은 잠깐 기억을 잃어도 되고. 다만 당신에 대한 생각은 늘 파란 새싹 같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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