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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09. 2018

낡은 것들과의 이별

부러진 안경테

  몇 달 전, 서랍 속 낡은 물건들을 정리하다 철 지난 안경테 하나를 발굴했다. 테를 이리저리 돌리고 만지작거리며 잊힐듯한 장면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 작은 뿔테는 지나쳐간 나의 청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새것에 밀려 그만 짐짝 신세에 놓인 테에는 기쁨, 슬픔, 기대, 사랑 등의 복합적인 감정도 함께 새겨 있었다.

  그 낡은 테를 버릴까 고민하다 집에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새로 맞춘 다른 테는 바깥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헌 테는 집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각자 역할을 나눈 셈이었다. 빛이 바래고 칠이 좀 벗겨졌지만, 헌 테는 그런대로 쓸만했다. 10년 이상을 사용했지만, 비교적 섬세하게 다루던 습관 탓에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별 탈 없이 잘 쓰던 안경의 코받침이 툭 부러졌다. 땜질을 했던 부분이 삭았던 탓이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단할 것이라 생각했던 부분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떨어져 나간 코받침과 튼튼하게 붙어있던 나머지 조각을 보며 균형을 잃으면 결국 불안정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순간의 기억도 함께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도.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날들, 이어지고 또 떨어져 나가는 무수한 기억의 편린들,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다시 깨달은 것이다. 안경테를 맞추기 위하여 찾았던 가게의 하얀색 간판, 찬란하고 느릴 것만 같았던 오후의 햇살과 낮은 공기들, 새로운 물건을 맞이하려는 심장의 두근 거림들, 가게 주인의 현란한 말솜씨, 굳게 닫혀있다 결국 열리고만 아내의 단단한 지갑.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온 작고 까만 안경.

  하지만, 그런 기억들조차 버려야 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영원한 물질은 절대 없다는 진리를 알기 때문에, 사물이던 사람이던 언젠가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은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원리이니깐. 과거에 머무르기만 한, 소중하던 그렇지 않던 기억이란 것은 결국 불완전한 기억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안녕
낡은 것들의 비통한 노래여
생을 함께 나누었던 형제들의 외침이여
별과 함께 무너지던 느닷없는 새벽들이여
우연한 만남과 우아한 이별들이여
이제 닿을 수 없는 꿈의 편지들이여
당신을 사랑해서 고이 품어야 했던 아름다운 날들이여
쓰러져도 웃던 나날들이여
너의 모든 사랑들이여
영원히 안녕




  떨어진 코받침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먹먹한 감정이 찾아왔다. 단순한 물건이지만 나는 이 사물에 여러 감정을 담아두었구나,라는 것을, 나라는 존재 자체를 대입시키고 있었다는 사실로 현재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요즘 들어 아내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다. 서랍 속에 꾹꾹 눌러놓았던 물건들을 꺼내어 품평회를 열다 처분을 내린다. 어떤 물건에는 감정이 담겨있지 않아 버리는 결정을 비교적 내리기 쉽다. 그런 물건들은 간단하게 우리에게 버림을 당한다. 아무런 감정 없이, 이견 없이 우리 곁을 떠난다. 때론 그 물건들이 우리에게 금전적인 혜택까지 주지만, 고마움은 잠시 일뿐…… 

  애착이 가는 물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물건은 세월의 때가 묻어 있어도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한다. 물건이 버려지는 사건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마치 우리의 기억 속에 보관된 추억마저 삭제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순간 주저한다. 변명을 꺼낸다. 굳이 꼭 필요한 물건이라는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를 대는 것으로…… 

  글루건이라는 특수 장비를 꺼냈다. 그리고 안경 테가 아직은 쓸모 있다고 코받침을 조심히 붙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다 그것은 안경테에 흡착되어 한 몸이 되었다. 마치 이전부터 하나의 몸체였다는 듯이…… 아직은 이별할 때가 아니라는 말로 항변하듯이. 내가 이렇듯 안경에 애착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내 눈이 되어 세상을 밝혀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모자라는 내 눈을 보완해준, 내 약점을 감쳐준 친구였기에 더 헤어짐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토이스토리 3> 마지막 장면이 번쩍 떠올랐다. 성인이 된 앤디가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우디와 번즈,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과 이별을 해야 하는 장면처럼, 우리도 정이 담겼다고 믿는 모든 대상과 이별할 수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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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TwlwBR1XF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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