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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15. 2018

역대급 DTD 실현 예정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여기 'DTD'라는 이상하게 생겨먹은 단어가 하나 있다. 궁금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아도 물론, 할 수 없다. 필자가 꺼낸 이야기니 관심을 좀 가져주면 하는 바람이다. 검색 사이트에서 'DTD'라는 단어를 입력해보자. 제일 처음 등장하는 사이트에서 'DTD'의 뜻이 바로 감지된다.

과연 무슨 뜻을 가지고 있을까? 
누가 만든 신조어일까?
어떤 문장의 약자일까?


 야구팬이라면 이 단어의 뜻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신비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비밀을 들켜버린 느낌이다. 그래도 모르실 분들을 위하여 뜻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음 아래 사진을 한번 보자.


출처 : 나무 위키


 사진에서 처웃고 있는 김재박 감독에 따르면 DTD의 뜻은 "Down Team is Down",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줄여서 내팀내, DTD이다. 김재박 감독이 현대 유니콘스를 이끌던 시절, 스포츠 인터뷰에서 언급한 말이 화제가 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력이 약한 팀이 반짝 상승하여 단기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만, 패넌 트레이스는 장기간에 펼쳐야 하는 레이스이기에 결국 그 팀은 하위권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수차례 현대 유니콘스를 우승시켰던 '우승 청부사' 김재박 감독은 향후 엘지를 이끌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이 된다. 엘지를 암흑기에서 탈출시킬 적임자의 역할을 맡은 것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의 'DTD' 예언은 엘지의 미래가 되고 말았다. 엘지가 하위권에서 바닥을 치며 토너먼트 순위권에서 내려갈 때마다 팬들은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DTD가 또 실현됐어", "DTD는 과학이야 과학", "DTD는 거부할 수 없는 진리"와 같은 말들이 야구 게시판에 폭주했다.

 올해 여름은 사상 최고의 더위를 매일 갱신하고 있다. 94년을 넘어서는 111년 만의 폭염이라고…… 그 시절 엘지는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다. 너무나 무더웠던 그해 여름, 나는 야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군 제대 후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알바 후 언제나 야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구장에 있으면 그깟 더위는 드라마보다 더 짜릿한 9회 말 역전 카타르시스 덕분에 한순간에 날아가곤 했다. 그런 엘지가 이제 DTD라는 놀림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으니, 김재박 감독의 저주는 대체 언제 풀릴까?

 오늘도 내가 응원하는 엘지는 또 패배했다. 2011년에 이은 역대급 DTD라는 말이 모모귀신처럼 튀어나왔다. 지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어느덧 연패도 적응이 되었고 지는 것 자체가 기성사실로 인정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선수들끼리 저지른 실수를 놓고 서로를 나무라는 광경을 보았다. 그런 몹쓸 지경을 보고서도 팬들은 두꺼운 유광점퍼를 입고 연패가 끝나길 기도했다. 하지만,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문화는 연패와 함께 완벽히 실종되었다. 정말 DTD는 과학인 걸까? 이제는 엘지 팬인 나도 이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다. 대체 죄 없는 팬들은 언제까지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걸까?

 얼마 전 재미있는 뉴스를 접했다. 야구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만성질환 위험이 증가한다는 보고였다. 천조국 UC 어바인에 따르면 8일 연속으로 패배할 경우 스트레스가 급증하여 10년 후에는 암, 고혈압, 폐 질환 등의 성인병의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였다. 하필이면 이 기사가 나올 즈음 엘지가 8연패 중이었다. 엘지 팬을 위로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과장일까. 이 기사가 사실인지 조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는 건 사실이니깐. 나는 아버지를 처음으로 원망했다. 왜 프로야구가 개막했을 때, MBC 청룡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켜줬으며, 야구장에는 왜 데리고 가서 평생 엘지 팬이라는 멍에를 쓰게 했으며, 매일 좌절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야구가 이렇게 몸에 해롭습니다." 정말 그렇다. 야구는 몸에 해롭다. 특히 엘지 야구는 더 몸에 해롭다.

 스포츠가 아무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야구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팀이 이긴 날, 특히 9회 말에 역전승이라도 한 날은 기뻐서 하늘로 날아갈 듯하다. 하지만 구원 투수들의 난조 또는 수비진들의 어이없는 에러로 패배한 날은 열패감이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 꽉 차서 일상을 어지럽게 만든다.



 얼마 전, SK와이번스는 홈 2연전에서 대패하자 팬들에게 사죄의 아이스크림을 돌렸다고 한다. 엘지 트윈스는 20년이 넘도록 팬을 실망시키면서도 아무런 사죄를 하지 않는다. 이 정도 실망시켰으면 광화문 4거리에서 머리라도 풀고 석고대죄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프런트는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외국인 선수는 매일 아파다고 병원에 누워서 인스타그램이나 하면서 노닥거리고, 유망주는 헐값에 다른 팀으로 팔아버리고, 비시즌 동안 준비를 어떻게 한 것인지 새로 부임한 감독은 매일 선수가 없다는 소리나 하고 있다. 그 감독은 얼마 전 쓸만한 선수가 없다고 하더라. 매일 '쓸놀쓸(나는 쓰는 놈만 쓴다' 놀이나 하고 있으면서……


 그 감독은 김지용의 팔꿈치를 갈았고, 정찬헌의 허리를 갈았고, 차우찬의 고관절과 팔을 갈았고, 이제 고졸 유망주인 고우석과 배재준의 팔을 갈아버릴 태세다. 누가 좀 류중일 감독을 말리던지, 아니면 잘라 버리던지 대책이 필요하다.

 

 결국 엘지는 올해도 DTD는 과학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것 같다. 이 상태라면 5위는커녕 8위를 유지하기도 힘든 지경이 되었다. 이제 엘지에게 지는 팀은 바보라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아 야구 때문에 암 걸릴 것만 같다. 야구에서 손을 떼든지 해야 하는데, 20년 넘게 중독된 마약이라 그렇게 하기도 다른 팀으로 넘어가기도 힘들다. 참으로 불쌍한 엘지 팬이 아닌가. 


 매일 실망하는 나는 내일도 야구 중계를 켜겠지. 그것은 마약이니깐…… 나는 또 내년 시즌을 기다린다. 20년 넘게 속았듯이 이제는 좀 달라지겠지,라는 기대를 하며, 스스로를 달래본다. 근데 진짜 달라질까? 내년에도 DTD는 과학이라는 이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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