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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18. 2019

난 한 놈만 패

결과를 볼 때까지 하나에 집중하자 

"난 한 놈만 패"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에서 유오성이 남긴 명언이다. 주유소에서 패싸움이 벌어진 것만 해도 기상천외한 사건인데, 떼거지로 뭉개지는 개 싸움판에서 한 사람만 집중 공격한다는 게 과연 효율적인 싸움 기술인가 싶었다. 내 머리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물론, 멋져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대사가 워낙 찰 져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의 독특한 싸움관 때문이었을까? 여러 놈을 골고루(?) 패는 것보다 한 놈에 치중하는 전략이 과연 현명하다고 볼 수 있었을까?


배운 게 도둑질 뿐이라고, 오늘도 키보드 자판을 연신 두들기면서도 '난 코딩에 여전히 소질이 없어'라고 한탄이나 부리는 나란 인간. 성장이 더딘 걸 보면 ‘뇌순남(뇌가 순한 남자)’이 아닌가? 1:1000을 주무르는 IT의 싸움꾼이 되겠다고 웅대한 첫발을 내디뎠지만, 매일 똑같은 공간에서 투정이나 늘어놓는 나는 과연 유오성의 “한 놈만 패”는 전략에 열중했는지, 그의 철학을 제대로 닮고 싶긴 했는지 자문하고 싶었다. 


나는 과거 전문가가 되고 싶으면서도, <프로그래밍 도사가 되는 법>처럼 책의 첫 장으로 되돌아가는 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왜 나는 한 가지조차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까?'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왜 늘 반도 못 가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까? 다른 걸 해볼까?'를 반복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끈기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곤란하다. 어쩌면 임계점을 넘기기 위한 전략이 잘못된 건 아니었을까? 아니, 한 놈을 제대로 패고 있기는 했을까?



한 가지조차 제대로 못하니, 보험으로 딴짓에 투자라도 펼쳐야 한다는 결론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하나에 충실하기보다 이것저것에 손대 보는 게, 하나 망하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이곳저곳에 기웃거리다 보면, 예상하지도 못한 분야에서 올백 성적표를 받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게다가 망하더라도 손 대볼 다른 도전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그런 깨달음을 얻은 순간부터 한 놈은 완수하지 못하더라도, 다수의 놈을 패는 전략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그래, 나는 ‘한 놈만 패는’ 전략을 펼치기에 끈기가 모자라다는 판단을 내린 나머지, 임계점 앞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른 분야를 찾아다니다 만만한 놈을 만나면 다시 그 놈을 패는 전략을 펄쳤다. 멀티 플레이어 전략은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며 말이다. 그래, 한 가지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길로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나로서는 프로그래밍에 소질이 모자라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일지도 모른다. 적성에 맞는 길을 선택했다고 저녁마다 축하의 와인 잔을 아내와 부딪혔지만, 와인은 줄어들지 않고 확신만 사라지는 이유는 뭐였을까? 


과연 만족의 끝을 볼 수 있을까? ‘소확행’ 시대라고 하니 작은 일에 감사하며 밤마다 일기장에 “오늘도 참 수고했다”라고 자기 위로나 안기며 살면 될까? 내 끈기의 문제일까? 한 놈만 패는 전략의 비효율 탓일까? 만약, 내가 패야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잘못된 선택을 되돌릴 수 있을까? 신중해야 한다. 상대를 제대로 골라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눈이 좋아야 한다.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싸워볼 만한 상대를 고르는 것이 첫 번째고, 한번 붙은 상대는 상대가 포기하기 전에 내 손을 먼저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두 번째다. 도전장을 내밀었다면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한다.


당신이 아직도 시간에 쫓겨 다니거나 일에 치인 삶을 산다며 투정만 부린다면 아직 당신은 한 놈을 이길만한 싸움의 기술이 모자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당신이 싸움에서 벗어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오직, 시간 싸움이 전부다. 결과를 볼 때까지 한 놈만 패야 하는, 등에 들러붙은 무수한 좀비 떼들의 공격을 견뎌내면서 펼쳐야 하는 싸움인 것이다.


무릎을 탁 친다. 유오성의 전략을 이제 이해하겠다. 한 놈 이외에 다른 놈이 시야에 들어온다는 건, 적어도 한 놈은 완벽하게 제압을 끝냈다는 걸 의미한다. 그때 비로소, 주변을 바라볼 시각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 놈을 완벽하게 패고 주변을 살피자, 아니 좀비 떼가 그득한 것이 아닌가. 이대로 종말이란 말인가. 물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 상대를 찾는다. 그리고 그놈과 다시 결전을 펼친다. 일단 한 놈부터 끝장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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