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pr 08. 2019

그깟 회사 때려치면 안 될까?

매일 밤마다 무인도로 도망치는 꿈을 꾸다

1부. 외롭게 살아보기로 작정하다

  - 1화 :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어디서 큰일이라도 벌어졌나?”

몇 시간 전부터 창 밖에서 깨고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싸이라는 가수가 시청 앞에서 무료 콘서트를 연다는 데, 1도 관심 없다. 오늘도 일하려면 영락없이 어둠과 결전을 펼쳐야 할 것 같은데, 집중은 커녕 눈도 잘 안 떠진다. 아, 집에 가서 쉬고 싶다. 담당자는 통합 테스트한다고 모듈 업로드하라고 난리도 아닌데, 아직까지 벌레 – 버그 – 가 어디 구석에 숨었는지 퇴치할 생각도 못하고 있다. 


젠장 우린 망했다. 일정 맞추기는 완전히 글렀다. 며칠을 집에 못 가 꼬락서니가 꾀죄죄한 것이 누가 보아도 노숙자의 ‘Look and feel’이 아닌가. “어디서 이상한 냄새나는 것 같지 않아?” 아, 이젠 환청까지 들리는구나. 그럼에도 일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대표는 눈이 반쯤 감긴 개발자 한 명씩 붙들고 회유를 펼치는 중이었다. “집에 가지 말고 밤 새라는 얘길 테지", 안 봐도 블루레이(DVD)다. 환갑 가까이 먹은 양반이 정력도 대단하다. 밥도 안 먹고 심지어는 몇 시간 동안 담배도 안 피고 물 한잔도 없이 버틴다. 어둠을 지배하는 죽음의 신 하데스의 화신이 아닌가. 저승으로 끌고 가려는 간계다. 당신의 애사심과 일에 대한 책임감에 경외심을 보내고 싶지만, 그 대열에 동참하라는 말은 사양하겠다. 


“썩을 놈의, 싸이…… 챔피언. 개나 줘버려! 아 시끄럽다고.”


2012년, 나는 개고생, 생고생 중이었다. 인간과 친근한 개에게 못된 말을 붙여줘서 미안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할만한 단어가 딱히 없다. 어쩔 수 없다. 미안하지만 딱 이번만 사용하는 걸로. 


예상했던 프로젝트 기간보다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황, 부드러웠던 발주처 담당자의 표정이 이젠 날카로운 비수로 변해가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리드하던 PM을 비롯한 개발팀 전원이 계속되는 야근과 철야작업으로 거의 이혼당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미치도록 일만 하는 감옥을 떠나, 차라리 창 밖의 싸이 공연에 뛰어들어 신나게 춤이라도 추어보고 싶었다. 현실은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노예 계약은 유효했고, 프로젝트 완료는 계속 연기되었으니까. 


매일 밤마다 아무도 없는 섬으로 도망치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지긋지긋한 사람들과 코딩 지옥’에서 해방되어 혼자만의 외로움을 씹고 있었는데, 하는 것이라곤 해변에 누워 멍하게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본다던가, 널려있는 과일을 따다 허기진 배를 무심하게 채운다던가, 해먹 위에서 낮잠이나 자는 따위를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느림의 미학’을 씹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운 외로움뿐인 세상.



어느 순간 나는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 먼 곳을 쳐다보아도 보이는 것은 바다와 섬뿐. 수영을 배운 적도 없는데, 배영과 접영을 자유자대로 구사하며 그야말로 시간을 낚고 있었다. “혼자서 하는 허송세월 놀이 참으로 반갑다.” 그러다 필름이 툭 끊긴 것처럼 장면이 검은색으로 바뀌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침대 위에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허우적거리는 남자를 발견하고 말았다. 외로움, 맘에 들었는데 역시 그런 세상은 꿈속에서나 존재하는구나, 라는 허무한 생각.


사람이 아무리 주변에 차고 넘치며 대화가 끊이지 않아도 도대체 ‘나’는 어디에 있는지, 그곳에서 내 역할은 무엇인지, 나는 동료와 잘 소통하고 있는지, 이런 회의감이 찾아오곤 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밤낮없이 함께 일하고 열띤 토론을 주고받아도, 공기 중에 내 목소리는 하나도 없는 느낌. 아무도 내 소리에 주목하지 않는 느낌.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쓰고 오직 일과 달성해야 할 성적표가 전부인 직장, 나라는 존재는 점점 가벼워지고 곧 지워질 것 같은 느낌.


왜 나는 바로 그만두지 못했을까? 리더로서의 책임감이 무엇이길래, 회사가 어떤 존재이길래 남들은 쉽게 쓴다던 사직서 한 장을 내던지지 못했을까? 대표에게 우리도 사람이라고 숨 좀 쉬며 살고 싶다고 큰 소리조차 못 쳤을까? 기껏 한다는 것이 고작 검은 창 밖으로 몸이나 던질 공상 따위였던 걸까? 내 인생이 왜 이리 쓰레기 같다고 몹쓸 생각만 했던 걸까?


당장 퇴사를 감행하여 고독에 파고들고 싶은 것이 직장인의 영원한 로망일까마는, 어디 쉽게 결정할 정도로 간단한 일인가? 당장 가족의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일인데, 당사자가 아니라면 함부로 지적질할 일이 아니다. “꼰대여 지적질은 이제 그만!” 이런 직장인의 흥망사를 예리하게 풀어낸 영화가 있으니, 그 영화가 바로 ‘기타가와 에미’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작품이다.


출처 다음 영화


주인공 다카시는 부장의 만행을 참고 견디다 결국 사직서를 내민다. 퇴사하겠다고 외치는 다카시를 두고 부장은 무례한 말로 공격한다. “평생 실패만 하다 패배자로 인생 종 치겠지!” “뭐? 결국 다 팽개치고 도망가는 거잖아! 어디서 건방지게! 물러 터진 자식이! 너 같은 놈이 다음 직장을 그리 쉽게 찾을 것 같아? 착각도 정도껏 해!”


다카시는 당당하게 말한다. 회사를 너무 쉽게 결정했다고 그런 것도 자신의 실수라 인정하며, 취직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회사에 입사했다고 말한다. 더 큰 소리를 치는 부장에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언제라도 인생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었고 그런 결정을 도와준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회사를 결국 떠난다. 북적거리며 소란스러운 도시를 떠나 내면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 발짝 나아간다. “아, 나도 떠나고 싶다. 그런데 돈은 어디서 벌지? 역시 이번 생은 좀 곤란하려나.” 당신도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퇴사 후에 찾아오는 세계는 공포와 두려움만 가득 차 있다고. 어쩌면 우리는 두려운 나머지 현재의 불안이 미래에 찾아올 안정으로 바뀔 거라고. 그래서 그만두거나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한다고, 근거 없이 믿기만 하거나, 번지수도 없는 긍정만 찾는 건 아닌지. 


물론, 당신도 나도 여전히 다카시의 선택을 따라 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나도 내 인생을 너무 쉽게 결정한 건가?” 다만 외로움이라도 찾아보겠다고 꿈이라도 즐겁게 꿀 수는 있겠지. 꿈꾸는 건 공짜니까. 꿈속의 세상에서는 청록색의 바다, 해변을 마주 보는 해먹에 누워 맘껏 다카시라도 되어 보는 거지. 언젠가 상상이 현실이 될 거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매거진의 이전글 난 한 놈만 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