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pr 15. 2019

군중 속에 숨은 고독을 찾아서

왠지 이번 생애서는 맛볼 수 없을 것 같다

1부. 외롭게 살아보기로 작정하다

  - 2화 : 군중 속에 숨은 고독을 찾아서


“아, 졸라 시끄럽네. 아저씨 마우스 슥삭거리는 소리 좀 낮춰주실래요?”
“헉, 나한테 그러는 건가? 나 숨만 쉬고 있는데.”


대각선 너머 대학생 몇 명의 무리가 한참 스터디 중인 모양이었다. 내 목적이 공부는 아니었으니, 조용하게 도나 닦아볼 심정으로, 아니 글이라도 써볼 요량으로 카페에 방문한 것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도 그 공간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다. 커피 홀짝거리는 소리도 볼륨을 낮춰야 했다. 가방 속에서 노트북을 조심조심 꺼내고 책 한 권을 마저 뽑는데, 그 소리가 살얼음을 밟는 소리 같았다. 이러다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만 앞섰다. “여기가 혹시 독서실은 아니겠지?” 괜히 왔나 싶었다. 다행히 비난의 화살은 내 쪽이 아니었다. 입구 쪽에 앉은 남자가 여자에게 뭘 가르치느라 내는 말소리 때문인 것 같았다. 


카페의 용도는 이용하는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매일 먹고 자고 싸는 공간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처하면 떨어진 영감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물론 아내와 둘 뿐인 집이 지나치리만큼 고요하여 글쓰기에는 제격이긴 하지만, 가끔은 사는 공간을 바꿔볼 필요도 있다고 하지 않은가? 혹시라도 생각이 한쪽에 고인나머지 상투적인 글만을 양산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할 수 있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카페에서 ‘카공족’ 코스프레를 펼쳐서라도 신선하고 탱탱한 글맛을 보고 싶었다랄까?


집은 휴식처라는 의식이 대부분이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녹초가 되거나 파김치로 변하는 일이 잦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유튜브에 접속하여 먹방이나 들여다보면서 군침이나 흘리다 기회를 놓치는 저녁이 다반사다. “그런 시간도 쉼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다져도 방향을 잃는 것이 집이라는 공간의 묘한 속성인 셈이다. “집은 역시 쉬는 곳이야”, 라는 따분한 의식이 집중을 방해하니, 차라리 카페로 간다면 글을 쓰는 공간이라고 의식을 잠시 속여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 탓에 그곳을 혼자 체험해보고 싶었다.



물론, 30분 정도는 평화가 유지되는 듯했다. 고독의 진면목을 맛보는 기분도 들었다. 오늘은 마감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적어도 카공족의 집단 난동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은 흡사 패거리라 불러도 되겠다. “윗동네 파”, “아랫동네 파”로 나누어져, 카페가 마치 그들의 집인 양, 주인 행세를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들을 간단하게 조직(파)이라 정의하기로 했다. “윗동네 파”는 “아랫동네 파”에게 선제공격을 당하여 심히 언짢았으나 최초로 소음을 발생시킨 주범은 그들이었으니 잠자코 고개만 수그리고 있었다. 다만,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걸 보니 약점이라도 하나 잡힐라치면 판을 뒤집고야 말겠다는 태세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결국 아랫동네 파가 떨어뜨린 볼펜 하나가 2차 전투의 불씨를 키우고 말았다. 


“아, 시끄럽다고요. 볼펜 좀 딸그락거리지 말라고요. 쓱쓱 쓰는 소리도 내지 말라고요.” 


공부하는데 볼펜을 쓰지 않으면 눈으로만 보라는 얘긴가? “그러면 졸릴 텐데.” 오감을 자극해야 머리에 영어 단어가 잘 들어갈 텐데,라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됐다. 카페에 있는 점잖은, 이를테면 나와 같은 무명작가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을 태세로, 손가락질을 해댔다. 물론 손가락으로 끝날 일은 아닌 걸로 보였지만. 


테이블을 엎고, 마시다 만 커피를 서로 끼얹고 누구 입이 더 큰지 대결은 한층 열을 더해갔다. 글쓰기고 뭐고 싸움 구경은 참 신나더라. 세상에나 그렇게나 찰진 욕은 오래간만이었다. 자기의 안위나 걱정할 것이지, 남의 엄마 걱정까지 그리 해대는지 말이다. 


아, 그들은 서로가 카페의 터줏대감이라고 떠버리듯 자랑했다. “그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별 수 있겠나.” 짐 싸는 것도 욕먹을까, 살금살금 카페를 빠져나와야 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침부터 때아닌 짓거리를 부렸나 싶어 언짢기도, 바리바리 짐 싸서 밖에 나간다고 아내만 집에 홀로 두고 나온 내가 진상이 된 것 같았다. 



카페에서 고독을 체험하겠다고 한 생각 자체가 글러먹은 것이었을까. 그런 사람의 밀도가 높은 공간, 각양각색의 사람이 만드는 백색소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혼자만의 완벽한 고독을 찾겠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욕심일까? 멋진 생각이긴 했지만, 현실은 어디나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군중 속의 세상’이라고, 아무데서나 고독을 찾을 일은 아니라는 결론만 얻었을 뿐.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작가 노명우는 ‘역할 밀도’에 대하여 설명한다.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온갖 의무와 책임에 피로감을 느낀 나머지,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늘 꿈을 꾼다고,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신음하는 현대인에게는 자신만의 자유를 누릴 공간, 즉 ‘자기 밀도’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고독의 의미를 강조했다.


카페에서 쫓겨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지러웠다. 사람이라는 물결에서 벗어난 나만의 밀도 있는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자발적 고립을 떠올렸다. 가능하다면 대안이라도 찾아보고 싶었다. TV에 나온 다큐멘터리처럼 나도 제주도로 정착지라도 잠시 바꿔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직장은 어떡한단 말인가? 밥 굶지 않을 자신을 있는가? 생각은 과거로 돌아갔다 현재 시점으로 전환을 반복했다. 주말이라 그럴까? 사람들은 끝도 없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독이라는 맛, 왠지 이번 생애서는 맛볼 수 없을 것 같다. 사람 구경이라도 실컷 해보는 거다. 군중 사이에 숨은 고독을 찾아서.


https://www.facebook.com/wordmaster0/


매거진의 이전글 그깟 회사 때려치면 안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