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경험
함께 글을 쓰면 무엇이 좋은지 정리한다. 함께 쓰는 것은 서로가 지치지 않도록 응원하고, 서로의 잠재성을 폭발시키도록 이끌며, 낯선 여행을 함께 떠나도록 이끈다. 총 10가지 이유를 열거하겠다. 지금부터 하나씩 파헤쳐 보기로 하자.
첫 번째, 지치지 않도록 서로 응원한다. 글쓰기는 어렵다. 평생 쓰는 삶과 멀찍이 떨어져 살았는데 쉬울 리 없다. 자신과의 약속을 혼자서 잘 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우리는 게으른 편이라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는가? 누군가가 옆에서 코치처럼 밀착 지도를 해주고 응원까지 해준다면 신이 나서 쓰지 않겠는가? 꼬박꼬박 내 글을 분석하여 장점과 단점까지 피드백해준다면 어찌 능력이 향상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글벗들과 함께 쓴다면 그들과 더불어 성장하는 기쁨까지 누리지 않겠는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도 위기를 극복한다면, 매주 쌓이는 나의 분신(글)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목표까지 완주할 수 있다. 꾸준함은 덤이다.
두 번째, 서로의 잠재성을 폭발시키도록 이끈다. 글을 쓰다 보면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준다. 이러한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하는데, 글쓰기는 내면을 세상에 드러내도록 가르침을 허락한다. 자신만의 틀에 갇혀서 고정된 사고방식에 지배를 당하고 싶다면, 열심히 혼자 써도 된다. 하지만, 공적인 공간에 글을 공개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타인의 시선이 내 글을 객관화 시킨다. 내가 몰랐던 장점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씨앗을 발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 번째, 낯선 여행을 함께 떠난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서로의 얼굴이 다르듯 글에서도 다름을 발견한다. 독서를 하면서 타인의 삶을 관전하는 것과 유사한 호기심을 자극받는다. 타인의 글은 글감을 위하여 신선한 자극제가 된다. 타인의 삶을 여행하는 것으로 현장의 철학을 배운다. 다르지만 같은 꿈을 꾼다. 자신의 이야기가 책이 되고 강연까지 이어지는 여행을 함께 떠나는 것이다.
네 번째,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는다. '글쓰기'가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 마법 같은 이야기로 들리지만, 미신, 종교, 근거 없는 믿음, 가짜 의료 행위는 아니다.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은유 작가는 글쓰기의 치유 능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치유를 위한다면 과거의 치욕스러운 경험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그것이 상처를 건드리는 아픈 경험을 일으킨다고 말이다. 상처를 마주하는 것은 낯섦에서 오는 감정이다. 자기만의 언어로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은 생소함과 불편함을 준다고 말하는데, 글쓰기가 상처를 극복하는 내적인 힘을 심어주어 상처를 치유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된다"라고 말한다.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는 말이지만, 써본 사람은 치유 능력에 공감할 것이다. 상처를 외부에 공개하는 순간, 상처와 직면하게 되고 치유하는 길도 열리는 것이다. 글벗들에게 부끄럽지만 아픔을 공유함으로써 마음이 편안해진다. 글벗들이 안기는 공감과 위로에 평안함을 찾는다.
다섯 번째, 함께 배운다. 공부는 끝이 없다. 세상은 넓고 배워야 할 것은 지천에 널려있다. 무엇을 배워야 할지 지식들이 얽히고설킨 세상이다. 글벗들이 경험한 세계와 내가 구축한 세계를 반죽하고 조합하여 더 나은 무엇을 만든다. 타인의 경험이 나에게 맞춤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 자기계발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노력은 그만해도 된다는 말, 책임감 없는 위로들이다.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려는 게 글을 배우는 목적이 아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배움이 학문적인 목적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쓰고 합평을 교환하면서 우리는 글벗들의 인생을 간접 학습하고 내 것으로 소화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배움으로 스스로를 이끈다.
여섯 번째, 공감 능력이 향상된다. 합평 수업에 참석하려면 타인의 글을 심도 있게 읽어야 한다. 약 2시간의 긴 온라인 수업 시간, 꿀 먹은 벙어리로 남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타인이 작성한 글은 그에게서 떨어져 객관성을 지니지만, 읽는 사람은 주관적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공감의 핵심이다. 공감의 포인트는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하여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라는 세 가지 수사학을 주장했다. 그중에서 파토스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정서적인 호소, 감성, 공감 능력을 지칭한다. 타인을 설득하고 싶다면 공감이 기반이 되는 셈이다.
일곱 번째, 같은 꿈을 꾸게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별종들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탐험자, 구도의 삶을 살아가길 자청한다. 몇 남지 않은, 유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글을 쓴다면 어떤 효과가 일어나게 될까? 생각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로 글을 쓴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할 수 없지만, 미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거라, 운이 떨어질 확률이 더 높아질 거라 기대한다.
여덟 번째, 전문가가 된다. 글쓰기는 자신이 보유한 지식을 정리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는 보고서, 메일, 사업 계획서, 매뉴얼 등의 글을 쓸 때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체계적인 글쓰기를 훈련 받지 못했다. 나는 얼마 전 《결론부터 써라》라는 책을 읽고 그동안 쓴 글을 모두 수정해야겠다는 유혹에 빠졌다. 서두에 결론부터 쓰고 주장을 논증하는 방식으로 글을 서술하라는 그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쓰되, 다이아몬드 형태로 결론이 맨 앞과 맨 뒤에 나오도록 써야 한다. 서론에서는 결론과 그 이유를 간략하게 쓴다. 본론에서는 원칙에 근거해 구조화하여, 서론에서 쓴 이유들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쓴다. 결론에서는 본론의 이유들을 하나하나 요약하고 마지막에 서론에서 언급한 결론 문장을 다시 한 번 제시한다." 저자는 다이아몬드 글쓰기를 주장했다. 글을 함께 쓰면서 피드백을 전달하기 위하여 공부가 필요했다. 자기 글을 쓰는 단계를 넘어 전문가가 되기 위한 더 높은 단계가 요구됐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강사로서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아홉 번째,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사귄다. 성별, 지역, 세대를 넘어 직업과 상관없이 글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친구의 인연을 맺게 한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인간관계까지 네트워크가 확장되고 있다. 학생에서 직장인까지 다양한 사람과 교류를 맺는다. 직장과 같은 사회에서 맺는 관계와 질이 다르다. 글쓰기는 삶을 논하는 토론장으로 확장이 된다. 우리는 서로 사는 곳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며 심지어 가치관도 다르다. 우리는 글쓰기로 친구가 된다.
열 번째, 정보를 주고받는다. 글을 쓴 시작은 다르지만 서로의 지향점은 비슷하다.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이 같다. 등단, 출판, 사업 등의 지점이 비슷하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먼저 도착한 사람은 손을 내민다. 자신이 가진 정보를 공유하고 타인이 성장하도록 돕는다. 정보는 나눔으로써 덩치를 키운다.
이상 내가 생각하는 함께 글을 쓰는 얻을 수 있는 10가지 장점을 열거했다. 생각한다면 10가지 외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래에 다시 10가지 이유를 정리한다. 당신도 함께 쓰는 경험을 나누고 싶다면 "공대생의 심야서재" 글쓰기 모임에 초대한다. 신청은 아래 홈페이지에서.
● 첫 번째, 지치지 않도록 서로 응원한다.
● 두 번째, 서로의 잠재성을 폭발시키도록 이끈다.
● 세 번째, 낯선 여행을 함께 떠난다.
● 네 번째,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는다.
● 다섯 번째, 함께 배운다.
● 여섯 번째, 공감 능력이 향상된다.
● 일곱 번째, 같은 꿈을 꾸게 한다.
● 여덟 번째, 전문가가 된다.
● 아홉 번째,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사귄다.
● 열 번째, 정보를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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