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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22. 2018

길들여짐에 대하여 - 어린 왕자

릴레이 쓰기(자작 소설)

 아직은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없는  소년에 지나지 않아그래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거야.

어린 왕자 중에서...
 



내가 너를 길들여야 한다고난 길들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난 오랫동안 혼자 자랐거든엄마도 아빠도 없이 밤 하늘을 친구 삼아 홀로 커야 했어. 나에게 '길들여짐' 과 같은 생소한 단어를 가르쳐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지난 줄곧 혼자 터득하며 살아야 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 알고 싶은데지금은 네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어쩌면 내가 친구가 하나도 없기 때문일지도 몰라네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미안해네가 나중에 설명해줬으면 좋겠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소행성, B612를 떠올렸다남겨둔 바오바브나무, 활화산장미꽃을 생각했다모두가 혼자였다심지어 어린 왕자 자신도 혼자였다장미꽃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바보였어그래난 너를 사랑해
 
어린 왕자는 도도하고 쌀쌀맞은 장미꽃이 왜 자신을 사랑했다고 고백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굳이 묻고 싶지도 않았다그는 단지 장미꽃이 자신을 붙잡으려고 한 말이라 가볍게 여길 뿐이었다. 여러 소행성들을 여행하면서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그는 장미꽃의 존재를 까마득히 먼 곳에 제쳐두고 있었다.
 
그래 너는 아직 길들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고 싶지 않구나” 여우가 말했다.
글쎄내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지관심이 없어서 살펴보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어길들임 이라는 녀석이 내 옆에 있지 않았던 건 확실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너는 지구가 처음이라고 했지?”
나는 오전에 지구에 도착했어몇 개의 별을 거쳐오긴 했는데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어손바닥만 한 세상에서 무엇을 차지하겠다는 건지 그들의 집착이 우스꽝스럽더라고그리고 지구라는 별에 뚝 떨어졌지사막에서 조종사를 만나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게 멋진 그림 한 장도 받았어뱀이라고 기다랗게 생긴 녀석도 만났는데뱀은 처음 보는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더라고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녀석은 꽤 친절했던 것 같아… 그들과 헤어지고 이곳저곳을 떠돌다 다시 너를 만난 거야이 별엔 많은 것들이 존재해서 그럴까내가 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피곤하고 힘든 기분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 네가 이 별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야참 네 별에서는 시간이 어때난 하루가 늘 무료하고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서 마침 이곳을 떠나 어디론가 가보고 싶었거든.” 여우가 말했다.

… 그곳은 시간 개념이 없어바오바브나무 위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면 어느새 태양이 떠오르고 숨을 크게 쉬면 다시 지는 거야그럼 나는 무의식적으로 일을 해장미꽃에게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곤 하지가끔 장미꽃이 던지는 쌀쌀한 말을 잠자코 듣긴 했어뭐 그런 말 듣는 게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가끔 배고픈 여행자들을 만나어떤 이들은 사냥총으로 나를 위협하기도 해물론 닭을 나눠주는 친절한 사람도 있긴 했지만 말이야. 그런 일은 드물게 일어나는 편이지. 대부분 사막을 무사히 통과하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거든난 이곳에서 너무 오랫동안 혼자 지낸 나머지 그들에게 경계심을 푸는 편이야그러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겨야 했지만… 뭐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아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근데 너는 나에게 해를 입힐 셈이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어린 왕자는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위해를 가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심지어 어린 왕자의 고향 작은 별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눈 장미꽃이 그에게 심술궂게 행동하고 허영심을 부렸어도 말이다.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도 될까?” 여우가 말했다.”
그래 이제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예전에 친구가 하나 있었어친구가 어떤 뜻인지 너는 모를 거야친구라는 단어의 뜻은 서로에게 익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해그래너와 익숙해지고 싶지만너는 아직 멀리 있구나아무튼 나에겐 친구라 불릴만한 존재가 한 명 있었어우리는 서로에게 물과 같은 존재였어모래와는 너무 달랐지모래는 너도 보다시피 흔하디흔하잖아. 손바닥으로 모래를 한 주먹 꼭 쥐어 봐어때이것 들은 네 주먹에서 쉽게 흘러내리지흔한 것들은 그만큼 얻기도 쉽고 사라지기도 쉬운 거야이렇게 바람에 쉽게 쓸려 날아가는 것처럼.” 여우가 말했다.
 
우린 어느 날 결심했어이 사막의 끝을 찾으러 떠나자고 다짐을 했지뭐 이유는 없었어네 작은 별만큼 이곳도 무료한 건 마찬가지였거든.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리 감동을 주지는 못했어우리에겐 익숙함에서 벗어날 해방구가 필요했던 것뿐이야우린 단지 살고 싶다는 이유로 이 적막한 고향을 떠나야 했지수십억 개의 모래를 밟고 언덕을 숱하게 넘어도 우리가 지나쳐 온 것이 너무 보잘것없는 거야내 친구도 나도 지쳐갔어아침에는 떠오르는 태양 덕분에 희망을 얻었지만밤이면 음습하는 절망에 떨어야 했지.” 여우가 계속 말했다.
 
내 친구는 절망을 견디지 못했어내가 잠든 어느 밤편지 한 장을 남기고 신기루처럼 사라진 거야우리가 더 깊이 길들여지다가는 서로를 놓지 못할 것 같다고우리에게 찾아올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끔찍하다고 그는 떠난다는 말을 남겼어친구는 우리에게 언젠가 찾아올 절망적인 미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을 했지그게 그 친구의 마지막 인사였어.” 여우가 말했다.
 
난 이해할 수가 없어네가 말하는 길들여진다는 건 서로가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거잖아단조로운 하루를 반복하더라도 그 시간조차 함께 하는 것이 친구의 의미가 아냐길들여진다는 말은 언젠가 맞이할 죽음조차 함께 한다는 거 아냐?” 어린 왕자가 말했다
 
우리는 언젠가 헤어져야 하지지금 너와 대화란 것을 주고받고 있지만, 이 시간도 영원한 건 아니잖아원한다고 하여 기억고에 처음 상태로 고이 보관할 수는 없는 거니까그게 이 지구란 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주어진 한계일지도 몰라.” 여우가 말했다.
 
난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감싸주고 싶었어그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내 시선으로 친구를 해석하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했어그게 내가 생각하는 길들여짐의 해석이라고 할까어쨌든 우린 완벽한 길들여짐을 경험하지 못했어미완성으로 끝나고 만 셈이었지” 여우가 계속 말했다.
 
그래 길들여진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알지는 못하겠지만네 친구의 선택도네가 친구와 이별하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 운명도 알 것 같아아주 어렴풋하겠지만 말이야. 나는 계속 여행을 떠나야 해. 네가 나에게 길들여지지는 못하겠구나. 어디선가 네 친구를 만나게 될지도 몰라아마 나는 네 친구를 한 번에 알아볼 것만 같아이유는 모르지만 그렇게 될 것 같아만약 만나게 된다면 너는 누군가에게 길들여졌던 과거가 그립니?라고 꼭 물어볼게그 말을 듣고 내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너를 만나면 네 친구의 이야기를 다시 전해줄게어쩌면 그때는 내가 길들여짐의 뜻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잖아.”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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