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는 재미
『함께 쓰는 성장의 비결』 매거진의 '공대생의 심야서재'입니다.
오늘은 "내가 가진 걸 타인과 조합하여 더 나은 걸 만든다."라는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입 시절, 필자는 기본적인 정렬 알고리즘조차 제대로 짤 줄 모르는 엉터리 개발자였어요. 선배가 과제를 내줄 때마다, 해결책을 찾으려고 개발자 커뮤니티 ‘초보와 고수’ 게시판을 기웃거렸죠. 질문을 올리면 고수가 짠하고 나타나 계시를 내려줄 거라 기대했어요. 한 마디로 잔머리만 굴린 셈이었죠. 문제는 하루 종일 기다려도 대답이 없어 게시판에 접속하면 저와 비슷한 부류의 초보 개발자들만 목을 내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우리는 언제나 메아리 없는 대답만 구걸했죠. 선배 개발자들은 공부조차 하지 않고 질문부터 날리는 나태주의자들의 게으름을 책망하며 악플을 달았고요.
90년대 중, 후반에는 프로그래밍 지식을 공짜로 얻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어요. 그때는 빅데이터로 무장한 구글 신이나 스택 오버플로우가 없었으니까요. 두꺼운 전공 서적이나 잡지, 물 건너온 원서에서 얻는 최신 기술이 그나마 개발자의 무기였죠. 선배 개발자들의 축적된 노하우를 훔치는 길이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한 교두보인 셈이었는데, 그런 쾌속열차 티켓을 얻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오픈 소스였어요. 리눅스의 창시자 ‘리누스 토발즈’는 자신이 개발한 운영체제인 리눅스를 세상에 공개했어요. 여기서 공개가 각별한 것은 자신의 오랜 기술력이 담긴 소스 코드까지 발표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터뷰가 재미있었어요. ‘자랑하고 싶어서요...’ 20세라면 누군가에게 주목을 받고 싶은 나이가 아닌가요. 요즘 말로 그는 ‘관심 종자’였을 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사람 만나는 걸 기피하는, 목이 헐렁한 티셔츠나 입고 지내는 그가 재미로 벌인 일이 타인의 주목까지 받게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요? 자신만의 영역에서 벗어나 타인과 협력하는 기반을 다진 역사적인 사건의 서막을 알린 일이기도 했어요. 이 사건이 의미 있는 것은 공개 후 얻은 타 개발자들의 참여와 피드백이었어요. 소프트웨어는 한 사람의 천재적인 능력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나은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오픈 소스는 타인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죠. 누구든지 검증된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자신의 재능을 집단에 기여하고 더불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시작이 현재 리눅스를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인 윈도우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이끈 셈이었어요.
오픈 소스의 공유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살다 보니, 저에게도 공유할 지식과 경험이 축적됐어요. 1만 시간의 법칙을 나도 모르게 따른 걸까요? 질문보다는 대답에 관심을 기울이고, 배우는 것보다는 가르침이 어울리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죠. 부푼 가슴을 안고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어요. 프로그래밍 노하우와 인간관계 경험, 조직 생활, 리더십, 국책과제 사업 계획서 작성법, 사업 실패담 등 갖가지 담론을 기록했고 불특정 다수에게 정보를 공유했어요.
자신의 지식을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과 공유하는 건 어떤 일일까요? 아무런 대가 없이 내가 가진 지식을 타인과 나누는 것이 오픈 소스의 핵심입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연구한 노하우가 노출될까 두려운가요? 정보는 나눌수록 부피를 키우는 습성을 지녔어요. 한 사람이 지닌 정보는 보잘것없지만 타인에게 확산되며 검증이 되죠. 이 과정을 통하여 거친 부분은 다듬어지고 정보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공유는 목표하는 성과를 내도록 타인과의 신뢰도를 구축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실력을 향상시키도록 돕습니다. 필자는 효과적인 공유를 위하여 사내 위키와 코드 리뷰, 트렐로, 레드 마인과 같은 협업 시스템을 도입했고 개인적인 관심사를 블로그에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블로그는 공유를 지탱하는 축이 되었죠. 팀원은 선배의 경험과 노하우를 보고 배울 수 있었어요. 단기간에 성장하는 비법을 익힌 셈이죠. 오픈 소스의 공유 정신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어요.
예를 들어, 블로그에는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국가 연구과제 자금 신청 방법과 사업 계획서 작성 방법, 프로그래밍 팁, 독후감을 쓰고 공유했어요. 사업 계획서 작성을 위한 주요 트렌드 발굴 방법, 특허 검색, 통계 분석, 시장 동향 등의 자료 수집 방법을 소개하고 예산 작성법까지 공유했죠. 실제로 지원받은 사업 계획서 예시를 공개함으로써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블로그에 공유한 글을 보고 기자와 정부 모처 공무원이 기고를 요청하기도 했으며, 기업 컨설팅에 종사 중인 컨설턴트로부터 정보 공유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공유한 정보는 기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숨통을 트이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지식이란 혼자 갖고 있는 것보다 여러 명이 나눠가질 때 큰 힘으로 성장한다고 믿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보는 네트워크를 통하여 확산되는 성질을 가집니다. 여러분이 생산한 정보가 네트워크에서 생명을 다하지 않으려면 타인에게 전염되는, 즉 공유되는 과정을 여러 단계 거쳐야 합니다. 그것이 최초로 정보를 생성한 사람이 특별해지는 지름길인 셈입니다. 여러분이 고유한 존재로써 빛이 나는 셈이죠.
필자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적게는 몇 시간에서 며칠 동안, 생산할 콘텐츠를 고민하고 매일 밤마다 몇 글자라도 남기려고 노력합니다. 돈 한 푼 얻지 못하는 일에 가족의 배려, 개인적인 여가시간까지 희생하며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요? 필자가 만든 정보가 타인에게 확산되는 공유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정보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얻는 것이 목표가 아닐까요. 그 정보를 최초로 제안한 사람이 ‘바로 나’라고 세상에 공표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요. 공유한다는 건 말이죠.
회사에서 칸막이의 높이에 관하여 관리자와 실무자 간에 설전이 벌어졌어요. 개발자에게는 독립적인 공간이 집중을 위하여 필수인 셈인데, 팀원 간의 소통을 위해서 칸막이를 좀 낮추자는 의견이었죠. 글쎄 칸막이의 높고 낮음이 소통에 중요한지는 모르겠어요. 물리적인 칸막이의 높이나 두께보다 마음 칸막이부터 허무는 게 더 우선이지 않을까요? 마음 칸막이야말로 사람 간의 소통을 막는 벽이 아닐까요?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폐쇄적인 환경에서는 개인의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성장은 우리가 가진 정보가 칸막이를 넘어 타인에게 도달할 때, 그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미숙한 듯해도 여러분이 공유한 지식은 분명 칸막이를 뛰어넘어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거예요. 부끄러워도 한 번 공유를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제 도움만 받지 말고요. 우리가 가진 지식을 타인과 조합하여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거 어때요?
다음은 Peter Kim 작가님의 글이에요. 워렌 버핏과 그의 전용기를 10년간 몰았던 조종사 플린트가 나눈 대화에서 '선택과 집중'의 의미가 무엇인지, 인생에서 중요한 목표 25가지와 그것을 덜어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 나눌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