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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an 05. 2019

나의 스타트업 실패기

젊었기 때문에 실패를 감당할 수 있었고, 상처의 회복도 빨랐다.

필자는 만 32살에 스타트 업을 창업하여 운 좋게 살아남을 뻔했다가 최종 실패, 즉 망-테크트리를 탄 전적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창업 전선에 뛰어든 것은 주체 못 할 젊음의 혈기, 수백억 매출을 거두어들이고야 말겠다는 퍼뜩 대는 아이디어 때문이었을까? 솔직히 까발린다면 필자는 그저 현실에 불만이 가득한 투덜이 팬클럽의 일개 회원일 뿐이었다.


필자는 아이디어 하나만을 믿고 창업을 했다. 모아둔 현금 천만 원과 기술력을 밑천으로 무작정 비즈니스의 사바나에 뛰어든 셈이었다. 필자가 겪은 실패 이야기가 창업을 원하는 새내기들의 진로에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사패자(사업 실패자)의 경험을 어디다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업으로 건진 것도 있으니, 오욕의 역사라 할지라도 활자로나마 남겨두고 싶은 심정이다. 이야기는 스타트업 5년 생존 후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기까지, 그 과정을 전개한다. 필자가 선택한 패턴만 따라 하지 않으면 당신은 성공에 조금 가깝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으로 이야기를 꺼내본다.





실패 #1 : 묻지 마 스타트 업 


2천 년대 초반까지는 닷컴 열풍과 더불어 묻지 마 투자가 횡행했다. - 얼마 전 비트 코인 열풍이 그랬던 것처럼 - 누구든지 아이디어만 있으면 엔젤에게 간택을 받거나 정부로부터 투자유치를 이끌어내기가 쉬워 보였다. 문제는 필자가 창업에 뛰어든 2004년이 되니 묻지 마 투자 열기가 차갑게 식어버렸다는 거다. 기획력이 아무리 근사해도, 기술력이 뛰어나도, 인적자원이 우수해도, PPT 디자인이 휘황찬란하여도, 안 될 놈은 안된다는 거였다.


직장에 얽매여 월요일이면 금요일까지 출퇴근 기계처럼 찍어내기만 하는 삶은 지구 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모두 거짓이었어.’라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 삶은 모두 거부하겠어’라고 결심하는 순간, 창업은 당연한 결과였다. 관광지로 유명해진 - 2004년에는 비교적 평온했음 - 서촌에 둥지를 틀었다. 동업자인 친구가 단독주택 한 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빈 2층에 급한 대로 PC와 노트북, 책상 등의 사무실 집기를 들였다. 빌 게이츠 같은 사업가들도 처음엔 자신의 집을 개조하거나 주차장에서 볼품없이 시작하지 않았는가. 


실패 #2 : 소비에트식 협상 


서촌에서 본격적인 업무, 아니 협상부터 시작해야 했다. 벼랑 끝 전술이 필자의 발목을 잡았다. 필자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 딜을 가지고 한 회사와 줄다리기 협상을 벌였다. 필자는 그 회사의 속사정을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 내부에 정보원이 있었다 - 이것이 우리가 함정에 빠지게 된 이유라고 할까?


그 건은 경쟁자가 없는 필승의 싸움이라고 판단했다. 필자는 무혈입성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필자는 물러서는 것보다 좀 세게 나가보기로 작정했다. 단 돈 몇 백만 원이라도 더 받아내야 직원 아기의 기저귀 사는 값이라도 보태지 않겠냐는 창조적 발상 덕분이었다. 우린 소비에트식 막가파 협상에 돌입하기로 최종 작전을 짰다. 사실상 협상은 없었다. 만나면 테이블부터 일부러 뒤엎었다. 우리는 의뭉스러운 조건을 걸어놓고 ‘좋아’ 한 가지 대답만을 듣길 원했다. 자신이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아귀 신세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말이다. 



버틴 것이 훗날 비극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우린 얼간이에 불과했다. 갑에서 제시한 금액은 계약금과 1년 동안의 장기 계약 조건이었다. 금액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준비된 자금과 합치면, 동업자 3명이 1년 동안 따뜻한 밥과 김치 정도는 충분히 먹고 살 금액이었다. - 물론 가끔 커피도 한 잔씩 마시고. 월풀 욕조에 몸도 담그고 - 다음 아이템은 게임하면서 구상하면 그만이었다. 그 프로젝트를 감당할 사람은 필자뿐이라며, 갑이 제안하는 금액에 ‘4달러!’를 무조건 더 붙였다. 하지만, 험악하게 생긴 갑 대표님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우리가 가진 패는 개패가 되고 말았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줄 건 주고, 받을 건 적당하게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터득하게 되었지만, 깨달음을 얻기에는 너무 늦은 셈이었다. 그날 이후, 따뜻했던 서촌의 겨울밤은 차갑게 식어갔다.


실패 #3 : 놀기만 좋아했던 우리 


첫 프로젝트 수주를 실패하긴 했지만, 기죽지 않기로 했다. 아픈 기억은 빨리 잊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믿었다. 일할 때는 집중해서 일했지만, 이유 없이 일하기 싫을 때는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당시에 유행했던 게임은 "Call of duty"라는 FPS 게임이었다. 우린 고등학교 동창 놈을 하나 더 불러서 2:2 팀 대전을 했고, 서로를 정신없이 죽이고 죽다 보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곤 했다. 돈은 벌지 못해도, 하고 싶은 걸 실컷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었으리라.


실패 #4 : 사업은 실험일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사업이 이상적이지도 또 연구할만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기까지 적잖은 시간과 자본이 투입됐다. 필자는 잠시 우쭐한 기분에 빠졌던 것 같다. 한 번에 도전했던 경진대회에서의 얻은 수상 경력이 필자를 건방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했다는 점이다. 


사업에 도전하겠다는 선택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철저한 분석과 계획 없이 뛰어들어서 몸으로 부딪혀보려고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는 거다. 하긴, 그때는 젊었으니까, 어떤 무모한 도전이든 기회가 계속 돌아올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때는 돈 따위에 굴복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모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세하지만, 운이라는 요소가 필자이게 미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을 뿐이다.










실패 #5 : 고양이에게 일을 맡기자.


‘야, 일단 모여 봐. 우리가 총 3명이니까. 너는 기획하고 너는 영업하면 되겠다, 나는 똑똑하니까 개발할게’ 비즈니스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시장의 요구 사항을 분석했다. 웅대한 계획을 세웠다. 뭔가 될 것 같아 보였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일정대로 지키면 순탄하게 흘러갈 듯 보였다. 아주 간단했다. 자신의 역할만 하면 되는 법이 아닌가. 그러나 우린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린 서로 고독의 맛에 취해 있었다. 직장이든 자영업의 세계에서든 각자가 살던 전쟁터에서 벗어나 있던 게 아닌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으면 일하던 사람이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거다. 


햇볕이 따스한 오후였다. 우리는 시장에서 호떡을 몇 개 사 오곤 각자 입에 하나씩 물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창밖으로 햇살이 쏟아졌고 나른한 고양이 한 마리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피우고 있었다. 어떤 동업자 친구가 책상을 두들기며 말했다. ‘저 게으른 녀석이야말로 일을 좀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날 오후, 우리는 창밖의 들고양이 녀석을 교화시키겠다고 진지한 토론을 나눴다. 



실패 #6 : 3년도 못 버틸 자본



사업을 시작하면 일단 5년 생존율이 중요하다. 하지만 5년은커녕 하루 버티는 게 더 문제였다. 단기간 생존할 수 있는 시드머니를 확보하기 위하여 "정보통신산업협회"에서 주최하는 창업 경진 대회에 즉흥적으로 참여 신청을 해버렸다. 1차 사업계획서 평가를 통과하고, 2차 대면평가 통과, 3차 시작품 데모 시연 등 장장 6개월 동안 심사가 진행된 끝에, 우수상을 수여받게 되었다. 


기술을 담보로 - 몸을 담보로 할 수는 없으니까 - 하는 대출을 기술 신보에 요청한 적이 있다. 심사관은 가정집에서 무슨 사업을 벌이냐고 수상한 눈매로 우리를 흘겼다. ‘돈 받고 싶으시면요. 담보 가져오세요. 1억까지 해드려요’ 정말 이렇게 말했다. 기술은 인정하지만, 결국 담보가 없으니 단 천만 원도 지급 보증을 해줄 수 없다는 얘기였다. ‘담보? 그래 하나 있긴 하지. 아내의 명의로 구입한 아파트를 은행에 맡기면 되겠군. 아주 간단해’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 이래서 사업하면 패가망신한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법인 설립 후, 몇 건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위해 다시 한번 기보에 자금 지원 신청을 하게 됐다. 아무런 담보조차 없는데 2억 가까운 금액을 기술 보증만으로 대출을 받았다. 법인 설립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기술력도 그대로인데, 법인이라는 무게가 대출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역설적인 결론을 얻었다.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자금 지원을 받고, 새로운 과제를 따내고, 돈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돈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패 #7 : 신뢰가 사라진 동업


2005년에는 법인으로 전환을 했다. 그때 실수를 저질렀다. 실수는 동업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다음 실수는 동업 관계를 명확하게 서류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 또한 필자가 기획하고 만들었던 비즈니스 모델과 저작물에 대한 소유권을 명확하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판단은 오판이었고, 낙관적인 전망에 들뜬나머지 내 소유권을 쉽게 양보했다. 



비즈니스의 성공은 유망한 아이템, 시대의 트렌드, 적절한 운, 신뢰할 만한 파트너 등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자본의 문제는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해결해야 할 난제가 아닌가. 자본이 부족하기에 파트너도 찾고, 동업도 하게 되는 것이겠지. 내 주위 사람이 동업을 한다면 말려야 하겠지만, 불가피하게 그래야 한다면 계약 관계, 자금의 투명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실패 #8 : 사업 쉬운 거? 


법인 설립 후. 더부살이긴 했지만 양재 근처에 사무실을 얻었다. 법인 설립과 함께 새로운 투자 금액에 따라서 지분 정리도 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영업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사업은 안정적인 궤도를 밟는듯했다. ‘사업이 이렇게 쉬운 것인가?’ 자만했다.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었지만 자유로운 환경은 잃지 않으려 했다. 회식은 1차만 간단하게 하며 술은 절대 강권하지 않는 문화를 추구했다. 출퇴근 시간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결과만 내면 자율적인 환경을 보장했다. 기술을 책임지는 공동 대표인 필자는 회사의 운명에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업무시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고 일했다. 주말이건, 평일 밤이건, 새벽이건 내 일이었기에 코딩에 집중했다. 밤새 일에 매달려도  결과는 모두 필자에게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집중이 가능했다. 사업이라는 것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온 열정을 다해 만드는 과정이다. 내가 주인이니 눈치 볼 사람도 없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실패 #9 : 정부 과제가 우리를 먹여 살리지는 않는다.


필자가 사업을 시작하고, 초기 6개월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약간의 시드머니도 있었지만, 동업하는 친구의 영업적인 보조도 한몫을 했다. 컨설팅 명목으로 건마다 약 오천만 원 정도를 받았다. 아이디어를 기획하여 정보통신연구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사업에 선정되어 1억 7천만 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그 후에는 산자부에서 1억을 지원받았다. 위의 정부 과제들은 대출 사업이 아니라 자금 지원 사업으로, 갚아도 되지 않는 사업들이었다. 과제 덕분에 벤처 인증도 받고, 기술연구소 설립도 했다. 


스타트업 창업을 하게 되면, 자금에 여유가 없을 것이다. 지인들로부터 투자 유치를 이끌어 낼 수도 있고, 어느 기간 동안 개인이 버틸 만큼의 자본을 확보하여 필자처럼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꿀팁들이 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시책도 많고, 연구 자금도 많다. 대학생이라면 문을 두드릴만한 창업경진대회도 있을 것이고, 여성 창업자에게만 가점이 제공되는 사업도 있다. 



젊음의 패기만으로 무모하게 사업에 도전하는 것보단, 정부에서 제공하는 정책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시각을 한 곳만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멘토들을 찾고, 실패 및 성공한 경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규모보다는 내실 있게 시작해야 하며,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창업에 임해야 할 것이다. 단, 정부 과제가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필자는 3년 동안 지원받은 과제 때문에 흥하기도 했으나, 지원이 종료된 이후를 대비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필자는 밤이면 뭔가를 시작하려고 지금도 궁리한다. 이제는 과거에 벌인 스타트업 짓거리들과는 한 차원 다른 계획을 펼치려고 준비 중이다. 엉뚱한 길로 접어든 바람에 다소 어긋나게 성장한 자신을 바로잡기 위하여 잠시 교정기를 갖는 것처럼, 필자 역시 성장을 위한 정체기를 겪고 있다고 믿는다.


창업 실패가 자랑은 아니다. 하지만, 실패라는 경험도 성공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이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이며, 여전히 진행 중인 창업에 대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젊었기 때문에 실패라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었고, 상처의 회복도 비교적 빨랐던 것이 아닐까? 아니다, 필자는 실패를 쉽게 잊는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예민하면서도 낙관적인 성향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실패에 굴복하지는 않고 다른 도전을 계속 펼치는 거라고 추측한다. 스타트업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꿈과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며, 필자가 감당하려 했던 실패들에서 당신은 조금 멀리 떨어지기를 바라본다.




내일(01/06) 오전 11시에는 Peter Kim 작가님께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성장의 비결을 나눕니다. 「함께 쓰는 성장의 비결」 매거진에는 7분이 자신만의 개성으로 글을 쓰고 계시죠. 채팅방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인사이트를 통해서 작가들도 성장하고 있다죠. Peter Kim 작가님의 이야기도 기대 부탁드릴게요.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7명의 작가들이 펼쳐내는 성장 스토리, <함께 쓰는 성장의 비결>은 매일 오전 8시에, (주말에는 오전 11시에) 발행됩니다.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매거진 구독을 눌러주세요. 한 뼘 더 성장할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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