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으로 혼자 떠나다
- 3화 : 고독한 남자의 방황기
고독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카페의 방황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부산스러운 사람으로 넘쳐나는 도시를 떠나 산기슭에서 ‘방황이라는 산삼 뿌리’를 찾아 헤매는 심마니라도 되고 싶었다. 부디 그 열매가 망각을 선물하여 일상의 단조로운 패턴에서 신선함을 찾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에 차면서.
그다음 기착지는 집과는 반대 방향인 춘천이 적당해 보였다. 글쎄, 왜 춘천으로 가야 하는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습관적으로 지도 앱을 켰고 경춘선이라는 글자로 손가락이 우연히 미끄러졌을 뿐, 다른 핑곗거리는 없었다. ‘세상 좋아졌구나’. 십 수년 전, 신병교육대 입소를 위해 춘천행 열차를 탄 기억이 불현듯 밀려왔다. 그때는 강제로 끌려갔지만 오늘은 자유로운 신분인 상태다. 더군다나 지하철로 서울과 춘천을 연결하다니, 믿을 수 없는 혁신이 아닌가. 표를 사기 위해 청량리 역을 두리번거릴 필요도, 표가 남아있는지 역무원에게 굽실거릴 필요도 없다. 신용카드를 꺼내 개찰구에 태그 하면 춘천까지 한 방에 가는 거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춘천까지 가보는 거다. 이유는 지하철이 개통되어 쉽게 갈 수 있으니까, 편리한 세상과 벗이라도 되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니까.
일단 내무부 장관에게 보고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나중에 흩어진 뼛조각이라도 끼워 맞출 테니까. 사실 통보가 더 정확한 단어이겠지만, 플랜맨처럼 따박따박 규칙을 지키며 사는 나에게 일탈이란 잠시라도 허락될 수는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 강렬한 단어를 감히 사용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소박한 심성답게 나는 카카오톡 화면에서 글자 하나 입력하다, 말다를 주저했다. 후폭풍이 두려웠다. 훗날에 닥칠 위기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주저하다 한 마디를 겨우 보냈다.
“나 춘천에 좀 다녀올게”
“춘천? 출장이라도 가는 거야? 아침에 얘기 없었잖아.”
“아니,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춘천에 가보고 싶어서”
“뭐야. 사추기라도 찾아온 거야? 장난이지? 그런 거로 장난치는 거 싫어.”
“장난 아냐. 요즘 일도 잘 안되고, 글도 잘 안 써지고, 신선한 강바람이라도 맞고 오고 싶어서 그래. 하루면 돼. 아니 내일 까지면 돼. 나 고독 좀 즐기고 올게”
“……”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대답이 없는 건 긍정도 부정도 아니라는 것, 말려봤자 대책 없이 결정해놓고 실천부터 하는 내 성향을 잘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잘 알았다. 다만, 무사히 돌아온다면, 찾아올 비판의 시간을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즉흥 여행이어서 그랬을까. 스마트폰은 배터리가 반절도 남아있지 않았고, 보조배터리도 없었으며 현금도 가진 것이 거의 없었다. 가방을 뒤져보니 전자책 한 권, 작은 우산 하나, 노트, 볼펜 하나가 발굴될 뿐이었다. 하나 같이 여행에 전혀 쓸모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래 오늘은 아날로그에 기대어 보는 거야. 시스템에서 벗어나 보는 거지. 열차 시간표를 보니 한 시간에 두어 번 운행하는 것 같았다. 디지털의 힘으로 춘천을 조사해보려다, 그래 오늘 여행의 목적은 방황이니 직감에게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대략 한 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되어 춘천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통과하여 밖에 나가니 막막했다. 관광 정보라는 타이틀이 적힌 가이드 한 장을 뽑았다. 남이섬, 레일 바이크, 닭갈비, 소양호, 김유정 문학촌 등의 사진이 보였다. 이곳에 관광하러 온 것은 아니니 사유를 위해서라면 소양호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관광 가이드를 펼쳐보니 춘천시 전체가 조망됐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손으로 축척과 실제 길이를 계산하는 재미를 맛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네트워크의 노예가 되고 만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네트워크로 연결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서 고독을 맛보고 싶어도 우리는 네트워크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13,000원 정도 소요된다고 가르쳐주셨다. 팁도 얼마간 내야 할 거라고, 강원도 사투리로 푸근하게 속삭이며.
약 20분을 달려 소양강 부근 선착장에 도착했다. 26년 전의 강물이 먼 바다를 돌고 돌아 눈 앞에 펼쳐지는 장관은 개뿔, 시퍼런 강물만 보였다. 신병교육대 입소 전 심란스러운 사내의 위태로움이 찾아와 더 짜증이 났다. 그때였다. 나이가 꽤 들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할저씨가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덕분에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가 생겼다고 침을 튀기며 쇳소리를 긁는 소리를 냈다. 강물에는 메아리도 없는데 돌아오지도 않을 고성을 지르며.
피로한 시야를 넓힐 기회라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착각이었다. 자리를 떠나는 편이 좋겠다 싶었다. 일단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 때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닭갈비 골목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래, 일단 유명하다는 닭갈비 집에서 배라도 채우면 의욕이 좀 찾아오지 않겠나 싶었다. 다만, 혼자서 도전할 수 있는 레벨이 조금 모자란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일단 얼굴에 닭갈비 철판이라도 깔아보자고 다짐했다. 이곳까지 왔는데 못할 게 있겠나 싶었다.
혼밥, 아니 혼닭갈비는 비교적 처량했다. 시끌벅적 떠들어 대는 인간 군상들 사이에서 혼자 고기 씹는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무슨 맛인지, 고기를 몇 인분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간첩 쳐다보듯 레이저를 쏘아 대는 여사장의 눈초리만 매서울 뿐이었다. 입으로 먹다, 코로 먹다 체할 것 같아서 황급히 자리를 떠야 했다. 카드를 내밀고 결제하는데 내 양복 차림이 수상쩍었는지 한 손으로 사진이라도 찍을 할 태세였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거리에 시선을 흐릿하게 고정했다.
가게를 탈출하여 낯선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곳이 춘천에서 제일 유명한 명동이라고 했다. 이곳도 서울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서울을 떠나겠다고 다짐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도시의 밤을 누비는 산책자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혼란스러웠다. 무엇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을 떠나 이 먼 곳까지 찾아온 건지, 20년도 훨씬 넘은 춘천의 고즈넉함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내가 원하는 풍류는 단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내 없이 혼자 길거리에 내몰린 나는 처량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함에 소름이 끼쳤다. 나의 존재라는 건 아내와 함께 할 수 있기에 빛나는 것이 아닌가,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배터리는 이제 10%가 채 남지 않았다. 급하게 카카오톡을 켜고 지금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메시지를 슬쩍 밀어 넣었다. 그리고 유명한 춘천 닭갈비 한 마리 포장해갈 테니 저녁에 소주나 한 잔 하자고 양념도 곁들였다. 아까 그 닭갈비 가게 아줌마는 주문하는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히죽거리는 내 표정에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누명을 벗은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택시는 어느새 춘천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택시 안에는 아내에게 빠진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