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적이고 미루기만 하는 삶을 살고 싶다.
무계획적이고 게으르고 미루길 좋아하는 인간이 바로 나다. 특히 회사에서 일 하기는 죽기보다 싫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일을 십 수년째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지루한 루틴에 적응이 안 되는 중병에 걸려있기도 하다. 연초가 되면 다이어리에 웅대한 계획을 빼곡히 적는다. 자기 계발 서적 탐독을 100권 마치겠다거나, 운동해서 10킬로 정도는 빼고야 말겠다고 이런저런 일정 짜기 놀이에 빠진다. 그것이 곧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라고 희망이라도 품는 거다. 그런 식으로 헛된 망상에 젖어 헬스클럽에 바친 돈을 합치면 중국제 최신형 러닝머신을 사고, 남은 돈으로 아이폰도 하나 살 지경이다. 계획은 그럴싸한데 실천과 거리가 먼 문제점은 뭘까? 누가 알려주면 안 되려나.
일하기 싫으면서도 타인이 정한 규칙을 추종했다. 나라는 인간 예측하기도 쉽고 순응도 잘하는 비교적 쉬운 남자라고 할까? 시스템에 저항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말이 전부인 셈이었으니, 시스템 입장에서 나는 저항군 축에도 못 낀다고 보는 게 맞다.
반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삶, 그런 걸 루틴이라고 부르더라. 루틴에 한번 빠지면 몸이 상하는 걸 알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나를 남 보듯 보게 된다. 내가 남인지 남이 나인지 뒤통수에 한 방 가격이라도 당하지 않으면 그 환각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반복이 일상을 평화로운 것처럼 포장하고 그걸 신의 은총인 듯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느 날은 골치 아픈 몸뚱이를 깨워 일으키고 안경을 쓴 채 아무렇지도 않게 세수를 하는 멍청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다른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자주 벌어진다. 버스 안에서는 역한 담배 냄새를 풍기는 1602호 아저씨의 정수리를 마주해야 하며, 지하철에서는 자리 새치기하려는 아줌마와 어깨 싸움을 펼쳐야 한다. 게다가 성추행 범으로 몰리지 않기 위하여 벌서듯 두 손을 하늘로 향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상사의 다채로운 욕들에 무너진 자존심을 창가에 널어놓고 말리는 루틴을 반복한다. 그리하여 20일이 되면 월급날이 도래했다는 안도감에 사장님에게 허리라도 120도 꺾는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어쨌든 급여가 끊긴다는 것은 꽤 위협적인 거니까. 한 달 벌어 사는 인생에게 통장의 마이너스 잔고를 확인하는 것이란 삶이 나락으로 빠진다는 거니까. 직장인의 루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어느 주말 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한 편을 아내와 함께 감상했다. 평점 8.67점이란 높은 지지를 받은 영화였다. 그 영화는 2013년에 개봉했으나 우리 부부에게만 전설로 남은 <플랜맨>이라는 작품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정석은 꽤 성실하고 바둑의 정석처럼 정해진 패턴대로 살아가는 인간이다.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는 (한 때 내 로망이었는데, 참 부럽다.) 주인공의 루틴을 한번 들여다보자. 아침 6시 기상, 침구 청소하기, 샤워, 드라이기로 욕실 물기 제거, 출근 복장으로 갈아입기, 출근, 같은 시간에 횡단보도 건너기, 칼같이 회사에 도착, 정해진 서가에 책 꽂기, 다시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여 잠자리에 드는 주인공, 정석에겐 무질서가 용납되지 않았다. 플랜맨인 정석은 알람 없이는 못 사는 남자다. 모든 일정이 알람과 함께 돌아간다. 규칙대로 살아야 안심을 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아내가 말했다. 정석과 나의 싱크로율이 90% 이상이라고. 둘이 만나서 정모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나 역시 집과 직장, 직장과 집, 두 가지 공간을 사이에 두고 정석과 유사한 삶을 산다. 한 치의 빈틈이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철두철미한 자세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꿈을 찾겠다고 30분씩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새로 익히기도 한다. 서두르면 변화가 꿈틀거리지 않겠냐는 유혹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말이다. 물론 아침에 부지런하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앉아 간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노인이 된 것 같아서 겁도 나지만.
30분씩 아침을 당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게으르고 편한 것을 찾으려 하는 본능을 다스리려는 의도도 있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나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 거다. 직장인인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갖가지 딴짓에 임하고 있다. 글쓰기 모임을 만들거나, 책을 쓰거나, 캘리그래피를 끄적거린다거나(요건 중단), 시를 끄적거리거나 등등 회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기회라면 그 가능성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에 놓인 것이다. 그러한 직장인과 상관없는 꿈은 숱한 어려움과 난관 속에서 발견해야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플랜맨인 나에게 자투리 시간은 규칙에서 잠시 벗어나는 무대가 된다.
플랜맨의 정석처럼 사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규칙을 지키면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누군가 내리는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솔직히 편한 게 사실이니까. 한 20년 그런 식으로 살아보니 20년 하고도 하루가 더 추가되던 날,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앞으로 이 짓을 또 20년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이라도 루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움직임이 폭발했다고 할까? 물론 20년 동안 규칙을 준수하는 삶을 살아온 것만은 아니었다. 딩크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규칙에서 탈출하려는 작은 몸짓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타인이 만든 시스템에 길들여진 상태를 느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주도하는 선택이라도 만들 계기도 생기는 거니까. 무엇이든 뛰어들어보는 거다.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사람은 신기한 동물이다. 이번 생은 틀린 것 같다고 비관적인 생각을 하지만 실제 마음만 먹으면 변화의 물결이 시작된다. 정해진 패턴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얽매이면서도 30분 일찍 일어나는 작은 실천이 변화를 일으킬 거라는 기대감도 있다. 변화가 비록 혼돈을 일으킬지라도 그 세계에 뛰어들고 싶은 것이 삶을 탐구하는 자의 자세가 아닐까?
삶이란 원래 예측불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짧은 미래 나마 예측하려고 애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멀리 있는 꿈이 달아날까 두렵기도 하다. 나에게는 그 꿈이 글로부터 시작하는데,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오늘도 플랜맨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데, 그렇게 멈추지 않고 가다 보면 기나긴 루틴의 여정도 방점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방점이 변곡점이 될지 마침표가 될지 각자에게 달려 있겠지.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지만 꿈이란 작은 변화에서 시작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나 역시도 그러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