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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12. 2019

나는 혼밥 애호가가 되고 싶다

뼛속까지 샤이한 남자에게 혼밥이란 무엇이었을까?

뼛속까지 샤이한 남자인 나에게 혼밥이란 불가침의 성역이었다. 혼밥이 도전 불가능한 영역일진대 혼술,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행(혼자 여행 하기)은 도전해볼 레벨에서 한참 모자랐다. 그런데 문제는 ‘나 홀로 밥 행사’를 치러야 할 날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거다. 고독을 즐기지 않아도 되는데 사무실에 혼자 남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평범한 금요일 오후쯤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외근을 나갔기 때문이었을까? 빈 사무실이 꽤 고즈넉했다.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는데 하루는 반절을 성큼 지나가고 있었다. 배를 만져보니 허기를 달래긴 해야겠는데 남들이 삼삼오오 줄 맞춰가는 식당에 진입하긴 살짝 꺼려지기도 했다.


요즘 편의점 도시락 퀄리티가 뛰어나다고 먹방러들의 칭찬이 자자하던데, 이번 기회에 시식 행사를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어떤 메뉴를 고를지 인터넷의 후기를 검토하고 아내의 의견도 구했다. 아내는 이번 기회에 혼밥 무대에 도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혼밥, 나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직장 생활 이후 혼자 밥 먹은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 혼밥이라니, 차라리 왕가의 자손 답게 굶어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게다가 남들의 눈치를 보는 게 주특기인 나에게 혼밥이라니 쓴웃음만 나왔다.


아내는 무엇이든지 나의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으로 나를 보지 못한다는 거다. 자신에게 간단한 일이 나에게 어깨를 짓누른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까? 뭐 사랑하더라도 서로 이해 못 할 벽은 존재하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아내의 의견에 비교적 차분하게 귀를 기울이는 남자니까. 이번 기회에 혼밥남으로 거듭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하 식당을 머릿속에서 스캔했다. 돈가스, 갈비탕, 분식, 몇 가지 맛도 없고 특징도 없는 메뉴가 지나갔다. 이럴 때 고민 없이 선택 가능한 음식이 분식이라던데 말이지. "오늘은 뭘 먹을까나?"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글쎄 어차피 고만고만한 잔챙이들이 아닌가. 


혼밥러들의 천국인 "김밥 XX"가 적당하다고 판단이 내려질 즘, 십수 년 전 겪은 불길한 경험이 등짝을 타고 후두엽으로 치고 올라갔다. 마감을 앞둔 프로젝트 일정을 지키기 위해 배달 음식 마니아가 됐던 시절이었다. 사무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신세였던 우리는, 그날도 다른 오후와 다름없이 "XX 헤븐"에서 김밥도 아닌 김치찌개, 떡국 등을 주문했다. 5분 만에 사무실에 도착한 배달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경례를 하고 회의실에 음식들을 즐비하게 깔았다. 그때였다 쟁반 위를 구르던 검은색 괴생명체를 발견한 것은. 아주머니는 용의주도하게 맨손으로 그것을 낚아채 주먹으로 감싸 쥐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과거에 겪은 끔찍한 생각을 하니 분식집은 선택에서 제외해야 했다. 하지만 다른 식당은 혼밥러 1 레벨인 나에게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 발길은 분식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 문턱에서 방황을 하다 보니 아내가 보낸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남들은 오빠가 어떤 메뉴를 선택하는지, 쩝쩝거리면서 먹는지 뭐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써, 오빠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거야.  이번 기회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 봐.” 



나는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진 채 살았다. 20년 묵은 다혈질은 아내 덕분에 유순하게 길들여졌고, 직장에서는 상사, 동료들과 모나지 않게 살도록 바뀌었다. 말하자면 아내는 나를 '감정 제어의 달인'으로 길들인 셈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았다는 걸, 혼밥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깨달은 것이었다. 인간은 타인과 싫든 좋든 관계를 맺고 산다. 사회적 관계없이 인간이 살 수 없듯 우리는 누군가와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성장도 한다. 사장이 오늘 나에게 “거지 같은 놈아”라고 폭언을 퍼부었다고 사장실을 뒤집어 놓을 수 없듯, 고객이 갑질을 부렸다고 회사 때려치우고 현장에서 바로 집으로 퇴근할 수 없듯, 버티는 것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보다는 타인의 기분을 맞추는 삶에 길들여지며. 혼밥 식당은 잠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소박한 기회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움으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다. 밥 함께 먹기는 적이 아닌 내 편과 함께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공감을 주고받는, 산 사람이 살아가는 생생한 삶의 공간이 밥 먹는 자리인 셈이다. 내 혼밥 레벨은 여전히 1이다. 게다가 부끄럼도 많이 타고 식성도 꽤 까다로운 편이다. 그래서 혼자 먹는 것보다는 편한 사람이 있으면 낯섦도 잘 견디는 편이다. 물론 아내와 함께라면 어떤 부끄러운 자리도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얼굴 마주하면 흐뭇한 사람과 함께 밥 먹는 시간이 그립다. 특히 아내는 더 그렇다.


나는 직장에서 아내는 또 아내의 영역에서 삶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바깥에서 좋은 음식을 먹을 때도 아내 생각은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다. 직장에서 또 가정에서 각자의 영역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둘 뿐인 우리에게 식사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삶을 나누고 위로를 양육하는 시간이 된다. 굳이 혼자 도전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하겠지만, 될 수 있다면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밥 먹는 것으로 채우고 싶다. 라면을 먹어도, 소고기 등심을 먹어도, 킹크랩 2킬로그램을 먹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먹을 수 있다면.


결국 나는 분식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래 혼밥이라면 저렴한 음식도 상관없겠다. 나 혼자인데 공간이 대수랴, 공기가 문제랴. 배고픔만 덜면 되는데. 라면과 김밥 한 줄을 시켜놓고 나는 스마트폰도 없이 점심시간을 메웠다. 테이블은 비교적 작았다. 나와 같은 신분의 사람들이 몇몇 고독을 즐겼다. 밥을 먹는 것인지 스마트폰을 구경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사람도 보였다. 오늘 저녁은 혼밥이 아닌 근사한 음식을 아내와 즐겨야겠다 생각했다. 불판에 삼겹살 한 줄 올려놓고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도 좋겠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각자 살던 하루의 고독을 이야기하기에 노을 지는 저녁 시간이 적당하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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