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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20. 2019

딴짓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마음부터 열자

"행복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서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 쾌락의 빈도가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신규 프로젝트 브레인스토밍 시간, 팀장은 서비스 론칭 전부터 부정적인 폭죽을 신나게 터뜨렸다. 그것이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는 거라 생각하는지 두툼한 윗입술로 아래 입술을 덮고 소시오패스처럼 입꼬리를 연신 실룩거렸다. 공중에는 온갖 나쁜 말들, 부정적인 먼지가 둥둥 떠다녔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갈 곳이 없는 나는 ‘모히또에서 몰디브나 한 잔’ 하는 공상을 하거나 퇴근 후,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 딴짓이나 부리며 시간이 흘러가길 기도했다. 그때, 팀장이 지르는 소리가 단꿈에 훼방을 놓고 말았다.


“이미 비슷한 서비스가 시장에 널렸는데 성공할 수 있겠어?”
: 페이스북은 싸이월드가 있는데 어떻게 성공했을까?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서비스가 있단 말인가. 그런 게 있으면 내가 회사를 만들고 말지.


 “빨리빨리 만들어야지 야근도 안 하고 주말에 데이트하면서 언제 제품 출시해?”
: 팀장님이 중매라도 서 주시게? 아님 대신 결혼이라도 해주시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냐?”
: 그럼 사장님한테 부탁해서 지분이라도 좀 나눠달라고 직언이라도 하던가.


리더가 가진 나쁜 인격 중에 하나가 매사에 부정적인 말부터 남발하는 거다. ‘우린 안 될 거야’, ‘우리가 시작해도 남들에게 곧 추월당하고 말 거야’, ‘제품 퀄리티에 대한 확신이 없어’ 이런 말부터 시작하여 습관적으로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심각한 것은 평상시 리더 스스로 부정적인 언행부터 앞세운다는 사실을 인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는 버릇처럼 반대 의견부터 내놓기 시작한다. 그게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라 착각하는 거다. 부정적인 피드백부터 일렬로 줄을 세워놓고 가마에 앉아 직원들이 해결책을 하나하나 찾아내길 기다린다. 영화 <300>크세르크세 황제처럼 공포와 권위주의로 직원을 다루는 것이다.



공포가 지배하는 환경에 처한 사람의 심리 상태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들은 늘 좌불안석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은 또 어떤 꾸중을 듣게 될지, 내놓는 아이디어마다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통에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회의 때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대며 오늘은 제발 무사히 넘어가길 바란다. 차라리 외근이라도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긴급 미팅 약속이라도 요청하고 싶다. 아니면 퇴근 후, 드럼이라도 치며 딴짓할 궁리나 하면서.


부정적 피드백에 전염된 사람은 창조적인 사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현실화하는 것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시작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괜히 업무 시간에 딴짓하도록 배려하는 게 아니다. 게임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낮잠을 자는 행위가 굳은 머리를 회전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러니 뭘 하든 긍정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봐주는 게 옳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아, 회의고 뭐고 바깥에 나가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시원하게 한잔하고 싶다.


하지만 경직된 환경에 처한 직원은 몇 날 며칠을 고민하여 아이디어를 내놓아봤자, 비관적인 결과를 추궁당하거나 책임부터 묻게 될 터이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고 믿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래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아이디어라고 내놓아봤자 칭찬은커녕 욕만 들어먹을 거 아닌가. 이래도 욕, 저래도 욕먹는 거라면 잠자코 있다거나 딴짓이나 하는 게 건전하게 직장을 다니는 일이다. 손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덜어도 되니. 애써 동기 부여하거나 포장을 잘 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회사에서 잘 나가는 중간의 기술>에서 ‘아라이 겐이치’는 관리자의 무능력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합리적이지 못한 관리자는 자신의 경험이나 신념을 근거로 만든 ‘자기만의 평가 기준’을 적용하 환경을 나쁘게 만든다,라고 말이다. 그들은 사소한 부하직원의 실수를 책망하고, 실적만을 강조하고, 창의력을 강조하면서 팀원을 억압하고, 차별을 방치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피해자는 과연 누구일까? 예상한 대로 바로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과거에 ‘너는 루저야’ 이런 말을 들으면 열등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뭘 만들어도 ‘내 손에서 태어난 제품은 다 망할 거야’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분한 생각이 들지 않나? ‘부정적인 감정을 원인자에게 돌려줘야 되겠어’.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비관적인 의견부터 내는 거야?가만히 있으면 쌀가마니 취급을 당할 것이 분명할 터, 나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부정적인 사람의 편견을 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수만 명이 동시에 네트워크를 접속하여 데이터를 동시다발적으로 전송하는 프로젝트가 주어졌다. 서버는 수만 명이 전송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했다. 초당 수만 건의 데이터가 범람하듯이 쏟아졌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디지털 글자들이 모니터에서 흘러내렸다. 데이터는 쉴 새 없이 넘치다가도 메모리 에러나 데이터베이스 에러를 뿜어대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나는 집요하게 에러 시트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강구했다. 옆에서는 팀장이 한 번씩 지나다니면서 ‘제대로 작동하겠어?’라며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거나 안 될 짓거리를 한다고 부정적인 말 따위를 내뱉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웠을까. 무수한 실험과 테스트를 반복한 끝에 나는 결국 초당 수만 건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서버 프로그램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만세! 사실 그 프로젝트는 엄밀하게 따진다면 딴짓 - 비공식적인, PoC(Proof Of Concept) - 에 속했다. 몸담은 주 프로젝트는 따로 있었고 고객을 설득하기 위한, 업무와는 상관없는 번외 프로젝트인 셈이었다. 말하자면, 개인적인 시간을 희생하여 벌인 투자인 것이었다.


이 경험에서 내가 만약 팀장의 부정적인 피드백에 굴복했거나 쉽게 낙담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임계치를 뛰어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그의 부정적인 이론을 증명하는 실패의 전리품으로 남고 말았겠지. 나는 아마도 성장하지 못하고 평범한 개발자로 여전히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사례는 다소 독특한 편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그물망을 스스로 찢고 나올 확률은  드물 테니.  


대부분은 나쁜 감정에 전염되며 그 감정은 다시 타인에게 확산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친다.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인 감정이 긍정적인 감정보다 전염성이 크다고 한다. 물론 사피엔스가 지닌 생존의 역사가 부정적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 덕분일지도 모른다. 부정적 감정에 전염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관찰해야 한다.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부정적 감정이 침입하더라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감정의 트리거를 장착하는 건 어떨까. 그것이 분노의 표출이든, 부정적 감정의 역발상이든 말이다. 의욕을 잃지 않으려면 긍정적 에너지의 분출이 절실하다. 삶을 긍정하는 자세가 딴짓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당신이 당장 뛰어들고 싶은 딴짓, 그 욕망의 세계는 부정적인 감정을 버리는, 당신을 신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제, 딴짓과 정면 승부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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