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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27. 2019

지금 당장 딴짓하라

생각보다 실행이 먼저

덮어 놓고 뛰어드는데 비범한 재주를 가진 인간이 나다. 일단 시작하면 주변에 널린 마감의 압박, 리더의 책임, 스트레스, 의무, 심지어는 번아웃과 같은 요소들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실행력, 그래 딴짓의 기반은 ‘한 번 해볼까?’라는 도전의식이 아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누구나 만들 줄 안다. 아이디어를 제품화시키고 말겠다는, 당장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는 추진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퇴사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다고 다짐하지만, 사직서를 대표 면상에 날릴 용감한 인간은 적지 않은가? 물론 카톡 메시지 하나 남겨놓고 스스로 비겁하게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궁리한다면, 그것을 말릴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즉흥적인 결단은 비극을 낳는다. 미래에도 과거의 악몽을 되풀이할 확률이 높다.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퇴사할 날짜부터 넘기는 당신에겐 불투명한 미래만 기다릴 뿐이다. 


무엇이든 당장 실행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의 유연성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 내 바지자락을 붙들고 ‘네가 시도하려는 건 실패할 수밖에 없어’라고 딴지를 걸어도 나는 기꺼이 시퍼런 바다에 뛰어들곤 했다. 얼음장 같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자맥질을 했다. 살기 위해서 발이 닿는 곳을 찾아 헤맸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둥둥 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절대 고독을 앞둔 상황 앞에서도 나는 살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딴짓이란 살기 위한 본능적인 몸짓일지도 모른다. 주변의 온갖 딴지를 극복하는 생존의 몸부림인 셈이다.


고액과외 알바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은 일이 없었다. 매일이 고비였고 분수령이었다. 생각이 먼저 앞서 나가는 꼴을 볼 수 없어 행동이 생각의 뒷덜미를 잡아 채기도 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컴퓨터를 가르치는 과외를 했다. 공부와는 상관없는 활동이었으니 딴짓으로 정의한다. 압구정동 고급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최초 고객이었다. 1:1 과외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데, 그분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말하자면 완벽한 컴맹이었고, 나는 무엇을 가르칠지 모르는 무계획, 아니 무책임한 인간이었다. 우린 완벽한 부조화의 앙상블을 이룬 셈이었다. 엑셀, 한글 사용법이나 파일 복사, 폴더 생성 등을 즉흥적으로 가르쳤다. 그래 윈도우즈 몇 번 설치하기도 했다. 그거라도 시간을 떼려 해서… 나는 딴짓을 추종하는, 충돌을 통해 경험을 쌓는 걸 중시하는 행동파가 아닌가? 커리큘럼도 없이 오직 말 발로 두어 시간을 떠들고 꽤 두둑한 돈을 챙겼다. 그래, 그때부터 사람 가르치는 - 이라 쓰고 사기 치는,이라고 읽는다. - 에 도가 튼 인간으로 태어났다.



여러분의 예상대로 그 고액(?) 알바는 일찌감치 막을 내리고 말았다. 밑천이 일찌감치 동나는 바람에, 딴짓을 유지하고 싶어도 더는 참신한 기획력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몇 달 동안 절간에서 은둔을 거듭하며 ‘PC 도사 되기’와 같은 책을 들고 다니다가 허리 끊어지기 딱 좋은 책 몇 권을 독파하기도 했다. ‘그래 이제 됐어. 하산할 때가 된 거야.’ 고심 끝에 세상 밖으로 탈출하여 빛을 다시 쐬던 날, 가슴은 크게 부풀었다. 다음 대상을 모색했으나 길은 열리지 않았다. 고립되기 전과 세상이 너무 바뀌었던 것이다. 고액 과외는 실패로 돌아갔으나 생각과 실행이 같이 놀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생각만 하다 끝나거나, 생각 없이 실행부터 뛰어들거나 모두 어리석다는 걸 깨달은 거다. 어떤 경험이든 깨달음을 얻었으니 나의 딴짓은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가기 위한 관문을 통과한 거라 믿는다.


문화센터 강의


몇 년 전부터 글을 쓰고 있다. 삶이 전하는 이야기를 치열하게 받아쓰다 보니 영광스럽게도 작가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글은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들려준 것을 옮길 뿐이기에 늘 감사하다. 그럼에도 공짜로 얻어낸 건 아니니까 자부하지만 자만하지는 않는다. 내가 작가라는 타이틀을 유지할만한 끈기와 남들과는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가끔 질문을 한다. 그 질문에 대한 판단은 늘 유보한다. 다만 즐겁게 쓰고 있으니 재능이라는 단어가 부럽지 않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브런치는 독보적인 무대였다. 이곳에서 글을 쓰다 보니, 엄밀히 말한다면 초라한 결과를 놓고 실망하지 않고 쓰다 보니 상도 받았다. 우연은 인연을 낳는 걸까?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특강을 하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몇 번의 강의를 거듭하며 ‘내가 이럴만한 자격이 있나?’ 수없이 자문했다. 나는 때로 말을 잘한다고 발표에 재능이 있다고 그럴듯한 말로 나를 속였다. 그래, 브런치에서 이목도 꽤 끌었고, 금상도 받았으니 그럴만하다고 보잘것없는 경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이다. 롯데백화점 강연을 앞두고 과거에 만든 발표 자료 중 쓸만한 것이 있는지, 점검했다. 참담했다. ‘신이시여, 제가 정녕 이런 형편없는 자료로 발표를 했단 말입니까? 용서해주소서’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글을 읽어볼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은 결과,라는 말이 있다. 처음 작성한 발표 자료를 끔찍하게 부끄러워하는 나는 그렇다면 성장한 걸까? 앞으로 나는 결실을 거둘 준비가 끝난 걸까?



핵심 포인트는 생각과 실행의 조화다. 생각이 앞서 나가는 것도 실행 혼자 치고 나가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실행이 먼저 앞서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조화라는 단어가 꽤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당신과 나 모두 다른 깊이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절대적인 잣대라는 것을 개인에게 들이댈 수 없다. 생각하고 실행하며, 설사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칠지라도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기술,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기술이 중요한 것이다. 길게 생각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고 실행의 결과가 늘 긍정적인 건 아닐 테니까, 생각이 끝나면 ‘지금 당장 실행하라’ 이 문장에 우리는 주목해야 옳지 않을까? 시작하지 않으면 반도 못 갈 테니까.




딴짓을 사랑하는 사람 셋이 우연히 만났어요. 우리는 직장인, 창업자, 프리랜서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죠. 다른 삶을 서로 살았지만, 세 사람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딴짓 모의' 궁금하지 않으세요? 딴짓의 정석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한 번 보여드리도록 할게요. 딴짓이 궁금한 분들 매거진 구독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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