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이나 하며 기회를 엿봅시다.
딴짓은 직장과 무관하다. 일과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일은 보통 돈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 돈이 없으면 맥도널드에서 빅맥도 못 사 먹고, 스타벅스에서 그란데 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 투 샷도 불가능하다. 이 모든 게 가벼운 주머니 사정과 결부되어있다. 우리가 종일 책상에 앉아 퇴사하는 꿈을 꾸면서도 아침이면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다시 회사에 나가는 이유가 아닌가?
직장에 만족하고 일이 마냥 즐거운 사람은 딴짓에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이 과연 세상에 있을까? 아, 애석하게도 주변에 있긴 했다. 이건 예외사항이다. 나는 오래도록 불만 종자로 살았다. 가난한 가정 환경이건 과중한 스트레스를 안기는 직장이건 스스로 내린 선택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나를 딴짓의 세상으로 내몰았다. 딴짓은 직장 생활이 시작됨과 동시에 종교가 된 셈이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약 1년이 경과된 시점이었다. 전산실에서 배운 업무와 앞으로 해야 할 업무가 내가 꿈꾸는 프로그래밍과 거리가 멀다는 걸 깨달았지만, 직장을 옮길 수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거대한 조직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을 어찌 사원 따위가 개선할 수 있겠는가. 동료 사원들과 불만 리스트 공유하는 놀이를 하거나, 능력 없는 과장 험담하는 시간이 딴짓이라면 딴짓이었다고 정의하겠다.
생산적인 딴짓, 즉 돈 벌면서도 공부도 가능한 게 없을까 궁리를 하다, 아이디어 하나가 번쩍 머리를 때렸다. 당시 나는 전산실 서버를 관리했는데, 대형 서버 장비라는 것이 워낙 안정적이어서 별다른 사건 사고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무료하게 하루를 보낼 만큼 시간이 많았는데, 늘어지느니 차라리 딴짓이나 하며 기회를 엿보자고 결심한 것이었다.
생각에 몰두한 끝에, 먼저 ‘Sidejob’이라는 신박한 아이디를 개발 커뮤니티에 등록했다. 가난한 직딩이 먹고살기 위해 일거리를 구한다고, 구구절절한 인생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 그때부터 구라 치는 재능이 있었나 보다 - 올렸다. 다만 직장에 재직 중이니 상주 근무도 불가능하며 평일에는 회의할 수 없으니 주말에나 미팅이 가능하다는 건방진 논리를 구사하며 말이다. 연락처를 올릴 수 없으니 ‘sidejob@8282-19ham.com’ 과 같은 비밀 주소를 만들어 연락을 달라 했다. 나는 ‘007작전’을 수행하는 비밀 첩보원이 된 듯했다. 이거 정말 긴박스러운 작전이었다. 긴긴밤을 기다린 끝에 김포에 위치한 한 회사와 연락이 닿았다.
그 회사는 ‘회계 프로그램’을 개발해달라고 했다. 문제점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개발자에게 요구 사항을 대충 말해주면 원하는 프로그램이 뚝딱 나올 거라 믿은 모양이었다. 개발자를 마치 도깨비방망이를 쥔 인간이 아닌 존재 취급을 했다. 물론 그 떠받듦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서도.
나는 ‘사딸라,’ 아니 삼백만 원을 요구했다. 설계도나 기획서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용감하게도 그 금액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신입 시절이던 나에게 삼백만 원은 한 달 월급을 제치는 금액이었다. 그 어떠한 난관도 돈이 주어지며 모두 돌파가 가능할 거라 믿은 것이다. 아마도 나는 당시 메타인지가 꽤 낮았던 것 같다. 보잘것없는 개발 능력은 생각하지 못하고 딴짓이 주는 달콤한 맛에 그만 취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당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후가 되면 회사를 빠져나와 김포로 날아갔다. 우스웠던 것은 회사에 나와서 외근 나간다고 말하면 아무도 나를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충분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는 얘기다. 워낙 서버실에 처박혀 자는(이라고 쓰고 ‘있는’이라고 읽는다) 경우가 많으니, 자리에 없어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었다.
회사와 김포 그리고 집, 세 군데를 종횡무진 누비며 딴짓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주말이면 개발한 프로그램의 버그를 잡기 위하여 밤새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아내는 돈이 생긴다고 환영했다. 그 회사의 사장님은 참 친절한 분이었다. 새벽 다섯시에 사장님과 버그를 놓고 씨름하다 일이 끝나면 늘 내 손에 흰 봉투를 하나 쥐여줬는데, 그 속엔 총알 택시비 5만 원과, 밤새우느라 수고했다고 생명 수당이라며 쥐여준 돈 십만 원이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건강과 돈을 바꾼 셈이었다. 김포에서 상계동까지 총알택시를 탈 때마다, 사장님이 말씀하신 ‘이건 생명수당이야’라는 말에 숨겨진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사님 저 창밖으로 튀어나갈 거 같아요’ ‘이봐 젊은이 벨트 풀어질지도 모르니 조심해. 며칠 전 학생 하나가 한강으로 점프를 하더군 하하하’ 나는 기사님의 농담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벨트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잠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식은땀을 한바탕 흘리고 나면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고 아내는 ‘어? 오빠 쌍코피나!”라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비명 소리에 더 놀라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지만.
두어 달이 지나자 내 손에는 사이트 잡 수당 삼백만 원과 생명수당 10일 치 정도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목숨을 건진 것이 천만다행히 아닌가,라고 긍정적인 회신을 스스로에게 보냈다. 그리고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짠 후 구직 사이트에 작전 정보를 올렸다.
'딴짓할 사람 여기 한 명 있음. 나에게 빵을(아니 일을) 달라. 돈만 주면 무엇이든지 다함,이라고. 딴짓의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철없는 시절이었다.
딴짓을 사랑하는 사람 셋이 우연히 만났어요. 우리는 직장인, 창업자, 프리랜서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죠. 다른 삶을 서로 살았지만, 세 사람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딴짓 모의' 궁금하지 않으세요? 딴짓의 정석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한 번 보여드리도록 할게요. 글은 오늘 3/4(월)부터 발행을 시작해요. 매거진 구독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