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돈, 시간 등)의 제약이 없다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상상하여
유리 가루를 흩뿌린 듯 가느다란 윤기가 흐르는 모래 해변, 여름 햇살과 에메랄드 빛으로 일렁거리는 물결, 하늘빛 색을 칠한 낮고 기다란 벤치, 곱게 갈린 얼음과 팥이 수북하게 담긴 팥빙수 한 그릇, 저물어가는 금빛 노을과 밀려드는 사색의 잔치.
한가로운 오후, 높고 파란 풍경. 무엇을 하지 않아도 탓하는 사람 없고, 시간의 감각을 잃어도 괜찮고, 어떤 의무에 얽매이지 않아도 상관없는, 무의 세계를 탐미해보는 것이다. 자, 벤치에 슬며시 앉아 보자. 오직 당신 한 사람뿐이다. 팥빙수를 감싸 들고 작은 스푼을 손에 쥔다. 그리고 팥빙수를 크게 떠서 한입 머금는다. 눈을 지그시 감아본다.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물결이 빛나는 소리, 금빛 햇살이 구름과 함께 너울거리는 소리, 모래가 바람에 부서지는 소리, 팥과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를 들어본다. 당신은 벤치에 앉아 자연이 포근하게 감싸는 오후의 빈 고독을 본다. 사색에 한걸음 다가가 오랫동안 억누른 감정에게 회복을 선물한다.
영화 《안경》의 한 장면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았다. 목적지가 없는 삶, 강요가 없는 삶, 형식과 습관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삶, 빛이 난다. 바다와 해변, 벤치, 팥빙수, 맥주만으로도 삶은 풍성해진다. 저무는 석양에 앉아 끝도 없는 사색의 시간에 물든다. 번잡한 도시는 멀다. 오직 무의 감각만이 삶을 채울 뿐이다.
우리는 강요의 옷을 입고 산다. 화나도 감정을 표현하면 어른답지 않다고,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남들보다 120%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나아가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까지 도전해야 한다고, 인간으로서의 본연을 찾기보다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달성하기 힘든 온갖 목표들을 온몸에 덕지덕지 바르며 산다. 성공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낳은 질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해.
'내가 원하는 삶'은 단지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정답은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다. 왜 나는 도시의 의무 속에 포위된 삶을 살고 있을까? 손가락 하나만 튕기면 되는 간단한 문제일지도 모르는데...... 도전으로 간주되는 걸까? '내가 원하는 삶'이란 말이다. 그래, 단 한순간에 삶에 변혁을 일으킬만한 용기는 나에게 없다. 선택이라고 하지만 회피해야 하는 선택에 전락하고 만다. 선택할 수 없기에 나는 동경하고 머릿속에 세상을 그린다. 무의식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틀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쉰다. 완전무결한 삶을 얻은 캐릭터로 살아보는 것이다.
무엇이 자유인지 알고 있다.
길을 똑바로 걸어라
깊은 바다에는 다가가지 말아라
따위의 그런 당신 말은 팽개치고 왔다.
달빛은 어느 길에나 쏟아진다
어둠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보석과 같다.
우연히도 인간이라 불리우며 이 곳에 있는 나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무엇과 싸워 왔는가?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짐을 내려놓을 때
좀 더 힘을
부드러워질 수 있는 힘을
무엇이 자유인지 알고 있다.
무엇이 자유인지 알고 있다.
영화 《안경》중에서......
나는 두려움에 포위되어 있다. 두려움을 한 번 벗어던지고 퇴사를 선언했으나,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뒤를 쫓는다. 결전의 날은 다가오고 나는 '퇴사 이후의 삶'을 기대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다시 두려움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나는 회사에서 점차 환영으로 변해하고 있다. 어둠의 포식자들은 내 영혼을 갈취하려 주위에서 들썩거린다. '넌 아마 안 될 거야', '이 판을 떠나서 어디에 가려고', '돈의 맛을 포기할 수 있겠어?', '위험한 도전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아' 내 삶을 소거하려는 난폭한 재주꾼들의 혀가 날름거린다.
나는 《안경》의 장면을 찾고 환영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형체를 벤치에 앉힌다. 형체를 다듬고 깎는다. 인생을 오래 살아본 노인처럼, 팥빙수 한 그릇을 존재에게 권하며 말한다. 자유란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잊지 않는다면 자유는 당신의 삶과 궤적을 같이 할 거라고.
김정선 작가님 특강 신청받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futurewave/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