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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21. 2019

퇴사 이후의 삶

글 쓰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토록 갈구하던 퇴사는 이전의 삶에서 이후의 삶으로 넘겨졌다. '퇴사'라는 단어는 만능열쇠도 아니며, 9회 말 투아웃에 등장하는 구원투수도 아니다. 이미 승부는 끝이 났다. 이제는 어느 곳이든 원한다면 갈 수 있는 선택지가 눈앞에 놓여 있다. 시간의 제약에서 완전히 풀려난 셈이다. 반대로 오 갈데없는 '무적'이라는 이상한 신분을 얻기도 했다. 나는 자유계약 신분, 즉 프리에이전트가 되었다.


퇴사 1일 차, 직장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도취한 탓이었을까? 새벽 3시까지 걱정과 고민을 오고 가며 잠에 집중하지 못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인생은 어쩌다 보니 살아지는 것일까. 글을 쓰며,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피동사 쓰는 걸 극도로 혐오하는 나는 인생은 살아가는 것보다 수동형으로 사는 살아지는 게 정답이 아닌가, 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자유가 주어졌으나, 강요와 압박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버렸으나 역시 생존의 의미는 바뀌지 않는다. 살아야 한다, 아니 살아지도록 믿음을 바꾸어야 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에틱테토스가 말한 것처럼 "어떤 것들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어떤 것들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생존이건 죽음이건 앞으로 펼쳐야 할 비즈니스의 성공이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단 하나 '나를 향한 믿음'뿐이다.


브런치를 통하여 가끔 제안을 받는다. 어떤 제안은 솔깃하지만 달콤쌉싸름하다. 모임을 만들어 성공적인 결과 - 유저를 모으고 플랫폼을 성장시키고 - 를 거두면 돈을 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돈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자유를 다시 억압하려 든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인들의 힘을 동원해야 한다는 응원으로 감싼 강요의 말에 난 감응하기 싫다. 과감하게 눈물을 머금고 삭제 버튼을 누른다.


글을 쓰는 행위가, 이후의 삶이 될지 이전의 삶이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이 무거운 운명의 결전을 앞에 두고 나는 고민한다. 글을 돈으로 보지 않길 원한다. 상업적으로 물들어버린 나머지 초심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희미한 사람보다는 분명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글자에게 약속이라도 남겨보는 것이다.


퇴사 이후에도 삶은 이어진다. 다만 자유계약 신분을 얻은 나는 창공을 가르며 활강 중이다. 낙하했다가 바람을 타고 다시 도약할 수도 있으리라. 믿는다. 오직 나만을 믿고 따른다. 날아가다 보면 안정적인 착지가 가능할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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