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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30. 2019

매일 아침, 108배를 하기로 했다

퇴사 후, 내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

퇴사 이후, 아침마다 108배를 수행 중이다. 십 년 전 강요 때문에 시작한 경험을 다시 이어가는 셈이다. 23년의 직장 생활을 종결하는 최후의 시점에서 나는 왜 과거의 역사를 다시 반복하고 있을까? 대답은 수행하다 보면 얻어지지 않을까? 계획 없는 퇴사를 했듯, 이후의 삶도 살다 보면 답을 얻을 것이리라. 


약 10년 전쯤이었다. 대표가 난데없는 폭탄을 터트린 것은... 지지부진한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위해 돌연 강원도로 ‘합숙 훈련’을 떠나자는 발언을 토해낸 것이다. 처음부터 대표의 긴급 제안에 반감을 가진 건 물론 아니었다. 사무실이 아닌 강원도의 파란 바닷바람도 쐴 겸, 반복하던 집 => 지하철 => 집의 굴레에서 잠시 일탈이라도 해볼 겸 이런저런 기대감도 크긴 했다. ‘그래 속초항에서 대게도 먹고 해변에서 바다 구경도 하며 코딩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이 착각이라는 걸 금세 깨닫고 말았지만...... 다음 날 바로 짐을 꾸려 떠나야 했다. 아내에게는 ‘잠시 출장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뭐 길어야 며칠이나 걸리겠나 싶었다. 하지만, 출장이 아닌 강원도에서의 합숙 일정은 일주일을 넘어 양평의 펜션, 서울 근교의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지옥훈련으로 끝장을 보고 말았지만.


‘넌 둘 뿐이니까 합숙 훈련도 문제없겠다.


대표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집을 떠나자 고행이 바로 펼쳐졌다. ‘산속에서 대체 뭘 하지? 혹시 산삼이라도 캐러 들어가나?’ 남자 둘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주말마다 떠나는 나를 보고 아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들이댔다. 아니 사장과 둘이서 먼 양평까지 가냐고 차라리 숲 속에 펜션이나 하나 차리라고 말이다. 대표와 나는 양평의 이름 없는 산꼭대기,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펜션에 한동안 머물렀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아침마다 안개에 휩싸이는 신비로운 숲 속 펜션. 펜션은 존재 자체로 고독을 뽐냈다. 대표는 거실에 둘이 나란히 앉아 집중하도록 기다란 책상을 구비했다. 그 위에는 서울에서 공수한 온갖 개발 장비가 투입됐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모니터 앞에서 코딩 강행군이 펼쳐졌다. 아, 한 달 동안 십 년 치 코딩을 죽도록 했다. 밥 먹는 시간까지 절약하려고 대표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밥상 배달을 강요했다. 거의 배달의 민족 수준이었다. 코딩에 미친 대표에게 소속된 나는 코딩 기계일 뿐이었다. 알고리즘에 도통하여 하루에 몇 천 줄씩 코드를 뽑아내야 하는,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충복.


눈꽃으로 뒤덮인 산속에서 탈출하자 지옥은 아파트에서도 이어졌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대표의 기행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게다가 대표의 새로운 요구 사항까지 하달됐다. 그것은 아침마다 108배를 해야 한다는 파이널 통보였다. 108배? 나더러 참회의 수행이라도 펼쳐야 한다는 건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난데없는 108배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었다. 



108배란 무엇인가? 번뇌에 휩싸인 불쌍한 중생이 오버랩됐다. 일에 미쳐 집에도 못 가는, 일과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남자가 보였다. 대표가 원하는 제품을 제때에 만들지 못하는 나란 인간의 열등함. 그 모자람을 꾸짖기라도 하는 것처럼 펼쳐진 행사가 108배의 목적인 셈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숭고한 의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단지 신성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대표의 주문을 수행하는 성실한 신도에 불과했다. 


108배는 그냥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아침의 의식이 아니었다. 나름의 철학적인 정신과 정교한 자세, 호흡법까지 지켜야 했다. 운동처럼 땀만 흘리다가는 마음의 수양을 쌓을 수 없다고 대표는 아침마다 성토했다. 문제는 허리를 굽혔다 폈다가도 대체 몇 회를 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발가락을 굽히는 방법과 무릎을 붙인 채 일어나는 법, 손바닥 파지 하는 법까지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순간 기억상실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왕이면 제대로 해보자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애플 스토어에서 앱 하나를 찾았다. 디자인이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횟수와 간격을 설정하면 청아한 목탁 소리와 함께 108배를 즐길(?) 수 있는 참으로 우아한 앱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을까?' 3천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나는 다음 날 아침 대표에게 의기양양한 얼굴로 찾아갔다. ‘대표님! 제가 신박한 앱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거 보십시오’ 대표는 침착했다. 허둥거리지 말고 바닥에 매트리스나 깔라고. 


눈앞에 앱을 작동시켰다. 절을 한 번 할 때마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건커녕 온갖 잡생각이 더 가득 찼다. 힘들어서 어지러운 것이 아니라 생각이 무거워 주저앉게 생겼더랬다.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대표는 ‘너는 참 생각이 많은 녀석이구나’라고 내 생각을 읽고 일침을 쏘았다. 죄라도 지은 것처럼 따가웠지만, 그렇다고 생각을 떼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내 머릿속이 쓰레기통 자체일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참 버리고 싶어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게 생각이었다.


1배를 더할 때마다 대표를 향한 원망, 불신, 미움이 차곡차곡 쌓였다. 꺼질 듯 말 듯 사라지지 않는 온갖 불만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지금 왜 108배를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가?’ ‘나는 왜 대표의 말을 따르기만 하는가’ 신기한 것은 운동일뿐이라고 무시했던 108배가 세상을 향한 울분, 괴로움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뒤뚱거리고 갸우뚱대던 몸동작이 안정을 찾아가고 앱의 도움 없이도 숫자를 마음속으로 정확히 외울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정교한 자세는 덤으로. 그래 108배는 살을 빼려는 것도, 대표에게 충성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강요의 옷을 스스로 벗어젖히려는, 찌든 일상에서 탈출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자정 활동이었다.


정신적으로 지쳐가던 시절이었다. 몇 년 동안 이어진 대표와의 정신적 싸움에서 온몸이 병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표가 제안한 108배로 내 삶은 정상을 되찾고 말았다. 단순 반복적인 행위가 복잡한 생각을 하나로 정리하게 이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인생은 복잡하다고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이 우리를 생각의 늪으로 추락시키고 말살시킨다는 것을, 단순하게 바라보면 그 어떠한 스트레스도 다 견딜 수 있는 힘이 우리 신체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 대표는 나에게 <생각 버리기>라는 책을 선물했다. 그가 선물한 책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생각이 정말로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일까?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생각이 많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불안해하고, 망설이는 것은 아닐까?” 


아, 그는 신선이었을까? 천수경과 금강경을 줄줄 외운다던 그는 내 얽히고설킨 마음을 어찌 꿰뚫어 보았을까. 내 번민을 어찌 알았을까? 관심법이라도 구사한 걸까. 물론 108배는 대표와의 결별로 끝이 났다. 과거를 회상하며 108배는 ‘고독을 충전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독은 상실이 아닌 인간이 근원적으로 누리는 멋이라는 것, 굳이 108배를 하지 않아도 나는 어지러운 생각과 분리될 경지에 이르렀고 그 덕분에 삶의 균형을 맞추는 원리도 깨달았다. 또한 혼자서 누리는 고독의 즐거움마저 이해했다. 남은 내 삶을 즐기기 위하여. 나는 오늘 아침도 108배를 한다. 이건 중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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