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금)에 퇴사의 종지부를 찍었으니 나는 '무적'이 되었다. '무적(無敵)1'이 아닌 '무적(無籍)2'이다. 둘 다 같은 소리로 읽는데 뜻은 사뭇 다르다. '적수가 없다는 뜻'과 '소속된 곳이 없다는 뜻'이 서로 공존하는 셈이다.
나를 불러주는 곳은 딱히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찾을 생각도 없다. 왠지 찾아야 한다는 문장이 꽤 따분하게 들린다. "아직 정신 못 차렸다. 뜨거운 맛을 더 봐야 할 듯" 그래도 원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다만 움직이는 데 돈이 제법(조금) 든다는 것이 문제긴 하다. 지갑은 점점 가벼워질 테고, 아니 요즘은 카드만 가지고 다니니까 지갑의 무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안심이 되는 느낌이다. 우리 모두가 가진 지갑의 무게는 꽤 비슷할 테니까. 하지만, 통장의 잔고는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릴 태세다. 그런데 걱정하고 싶지 않다. 걱정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을 테니까. "이런 무책임한 백수 같으니라고."
일요일 밤거리를 거닐었다. 운동인지 산책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걷고 싶었다. 현재 시간, 자정을 한참 지나 새벽 1시를 달리고 있다. 나는 걷고 시간은 달린다. 이 녀석 잡고 싶어도 자꾸만 멀어진다. 닿을 수 없는 꿈처럼 시간은 먼 곳으로 도망친다. "누가 시간 좀 붙들어줘." 지나가는 사람, 아니 고양이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잠들어야 할 시간이다. 나 혼자 왜 이 시간,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고독이라도 혼자 씹고 싶었을까? 평화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3일 전 직장인의 신분을 스스로 벗었다. "너 미쳤어? 그 좋은 복을 왜 걷어차?"그러게 말이다. 꽤 오랫동안, 솔직히 말하면 약 한 달 정도? 직업까지 완벽하게 버릴 것인지 고민했다. '직업'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라는 문장이 돋보인다. 그래, 직장이 없어도 직업이 건재하면 우리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생계라는 어감이 다소 추상적이다. 그래서 '생계'라는 단어를 다시 찾아봤다. '살림을 살아 나갈 방도'라고 네이버 사전이 전한다. 이 문장 역시 추상적이다. 약이 오른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처럼 내 생계는 당신처럼 "고만고만"으로 비슷하기도 하고, 동시에 "나름나름"으로 다르기도 하다. 기준은 없다. 여전히 추상적이다. 그래서 내가 구체적인 글을 쓰라고 글벗들에게 줄기차게 주문을 하나?
출처 : 유튜브 구도 쉘리
"시간이 없다고요.
내가 지금 새로운 직업을 찾을 시간이 없다고요.
아시겠어요?"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모 유튜버의 말을 나도 따라 했다. 트렌드 감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런 말도 가끔 흉내라도 내야 한다. 아, 정말 시간이 없다. 백수가 더 바쁘다는 말, 그래서 과로사한다는 말, 실감한다. 왜 이렇게 피곤하단 말인가. 하루가 25시간이 되어도 모자랄 것 같다.
직장이라는 무대에 나는 흰 수건을 던져버렸다. 23년간 벌인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라 무대를 바꾼 것이라고 항변도 해본다. 아무도 듣는 이 없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고함을 지르는 기분 상상해 봤나? 나는 승부에서 진 패배자가 아니다. 다만 내가 밟아야 할 과정 몇 가지를 건너뛴 것이 전부다.
직업을 논하자. 나는 프로그래머다. 동시에 글 쓰는 작가의 신분이기도 하다. 덧붙여 글 쓰는 모임을 이끄는 대표, 아직 비즈니스 하는 단계에 미치지 못하니까 대표라는 말은 무르기로 하자. 운영자로 할까? 아니 그냥 닉네임 공심이 더 마음에 든다. 마음을 비우라는 의미로 들린다. '空心' 썩 마음에 든다.
대학 졸업 후, 나는 (배 나온) 프로그래머로 착실하게 살았다. 하지만, 경력이라는 단어는 그저 쌓이는 프로그래밍 세계의 스택(Stack)은 아니더라. 그렇게 호락호락한 생각으로 생존이 가능한 세계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때로 스스로를 하찮게 여겼다. 내가 받는 급여 봉투의 무게만큼 밥값을 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 이유는 대안을 찾도록 끊임없는 주문을 원했다. 어쨌든 23년을 버텼다.
다행히 뚱땡이 프로그래머는 아니다.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글 쓰는 작가였다. 시험이 필요했다. 퇴근 후, 불을 끄고 책상 앞에 앉았다. 마음에게 대답을 구했다. 어떤 역사적인 운명의 결과를 당신이 기대했다면 그런 건 솔직히 없다. 불을 끄고 어떤 의식을 벌인 다고 말한 것도 역사를 날조하려는 쇼에 불과하다. 아무 이유도 없이 글쓰기는 시작됐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고, 거짓말처럼 이틀 후에 통과 메시지를 받았다. 결과를 얻기 위해 설계를 치밀하게 세우고 지난한 시간이 소요되는 프로그래밍에 비해 글쓰기는 시작부터 쉬웠다. 고작 서평 한 편 띄워놓고 작가라는 신분을 얻었으니, 이 얼마나 보람되고 흥분된 순간이란 말인가. 시작이 쉬운 만큼 과정은 점점 고난도의 수학 문제로 변하고 있다. 우습게 본 내 잘못이다.
직업을 다시 논하자. 나는 작가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미완성의 작가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한다. 의심이 드는가? 그럼 내 수업에 한 번 참여해보면 안다.(웃음) 브런치에서 유일한 유명세를 떨친 공모전 수상 경력, 문화 센터 강의 경력, 책 출간 경력, 모든 역사의 시작은 퇴근길, 브런치 작가 도전으로부터 비롯됐다.
23년 vs 3년
비교할 적수조차 못된다. 하지만 나는 '무적'이 아닌가. 수치 값으로 증명될 수 없는 열정이 있지 않은가? 언제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겸손한 자세도 충만하지 않은가. 게다가 모험과 탐구 정신,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웃으며 털고 일어나는 막무가내 정신도 투철하지 않은가. 작가라는 직업, 앞으로 20년쯤 계속하다 보면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처럼 자신 있게 '내 직업이다!'라고 외쳐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끄럽게 명함을 내밀며 "저 작가예요..."라고 뒤에 점 몇 개 붙이는 소심함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직장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럼에도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버릴 수 없다. 생계라는 추상적 단어의 무게감을 지탱해야 하기에 나는 '무적'이라는 정신으로 집 바깥으로 나선다. 누군가 나를 여전히 찾는다. 나는 무쓸모 한 사람이 아닌, 이 바닥에서 통용되는 사람인 셈이다. 그래, 생계는 당분간 문제없을지도 모른다. 백수이지만 자유 계약 신분이기에 나는 23년의 경력이 찍힌 필드에서 가끔 누군가 찾아주는 사람일 테니. 불러주면 어디든 찾아갈 테니. 밥은 먹고살 것 같다. 이 또한 추상적이긴 하지만.
부끄럽지만 작가라는 신분, 글 쓰는 직업이라는 단어는 미래에도 추상적인 뜻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프로그래머라는 무게 추에 지탱하는 한, 나는 작가라는 신분으로 즐겁게 상승할 테니 걱정은 없다. 내 몸에 맞는 직업을 찾아 길에서 배회할 시간도 충분할 테니. 나는 어디든 여행을 떠난다. 작가라는 직업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