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은 참 달다.
출근이 사라진 삶은 야행성의 본능을 깨운다. 내 닉네임, '심야 서재'와 어울리는 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나는 밤이 그리운 사람처럼 자정을 몇 시간 넘기도록 고독과 대화를 나눈다. 그래, 형광등까지 없앤다면 어둠과 완벽한 하나가 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모니터에 글자를 입력할 수 없으니, 고요한 시간을 독차지하는 걸로 만족한다.
심야가 찾아오면 내 두뇌가 더 스마트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출근 부담이 사라지니 아예 대놓고 아메리카노 몇 잔을 홀짝거리며 성능의 한계를 끝까지 몰아붙인다. 나는 야행성 인간의 된다. 코딩이든 원고 작성이든 그것도 아니라면 신규 글쓰기 모임의 론칭 계획이든 생각한 것을 노션(Notion)에 기록한다. 눈은 침침해도 두뇌는 각성이 된 상태에서 새벽 2~3시를 넘겨야 직성이 풀리고야 만다. 심장이 뻐근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눈꺼풀이 열고 닫음을 삼천오백십이 번 이상 반복한 후에야 겨우 침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찜찜한 구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직장'이라는 부담이 내 인생에서 잠시라도 사라진 덕분일까? 두뇌는 마치 젊음을 되찾은 사람처럼 대량의 일감을 신속하게 처리한다. 그래 나는 회춘한 셈이다. 퇴사라는 뽕을 한 대 맞고, 누군가 시키면 억지로 숙제를 시작하던 삶의 수동적인 자세를 능동적인 관점으로 바꿨다. 원리는 자신감의 회복이었다. "나는 내 생각보다 강하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누군가에게 의탁하려는 허울을 벗고, 무엇이든 생각에서 끝내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무모하더라도 일을 저지르면, 수습할 방법을 스스로 찾든 도움을 주는 은인이 짠하고 나타나든,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할 수 있다.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점과 시행착오는 개선만 하면 된다.
나는 그런 각오로 밤을 맞는다. 원고를 기획하고 3,000자의 글자를 노트에 쓰고, 시를 필사하고, 글쓰기 모임에서 내준 과제를 읽고, 글벗에게 코멘트를 남기고, 몇 권의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고, 단톡방에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카페를 관리하고, 이 모든 걸 다하면 몸이 부정적인 신호를 보낸다. 새벽 무렵에 겨우 잠들어, 오전까지 늦잠을 실컷 자고 난 이후, 다시 프로그램을 짜고,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 보면 다시 밤이 찾아온다. 이것이 요즘 나의 루틴이다. 낮 시간 동안 사람을 만나고 생존을 위해 일감을 받아온다. 낮 시간은 프리랜서로 밤 시간은 작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내가 야행성이라는 건 퇴사 후 확실히 깨달았다. 27세에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23년이 경과된 후 야행성이라는 동물적인 적성을 찾았다. 당신도 나처럼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안성맞춤인 적성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성을 찾겠다고 각종 심리검사를 질리도록 받고, 온갖 자기 계발서를 밤늦도록 탐독하고, 인문학 강연을 찾다 도리어 스트레스만 듬뿍 받고, 유튜브 채널을 보며 잘못을 반성하고,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여 '나'를 찾겠다고 혈안이 되지만 자존감만 갉아먹기도 한다.
퇴사 후, 제일 마음에 드는 점은 '늦잠'이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침대에 자빠져 있어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무서운 아내느님까지. 게다가 알람의 핍박에서도 해방을 얻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아침 6시가 되면 눈에서 섬광이 번쩍한다. 이런 된장, 원하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몸이 깨움을 청하는 것이다. 퇴사한 지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탓일까? 올빼미족에 적응하기도 참 힘들다.
퇴사 즉시 실행할 라이프 스타일은 지겨울 때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잠에서 깨어나도 아내에게 밥 배달을 부탁할 작정이었으니, 나는 게으름의 끝판왕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늦잠을 편안하게 즐기려면 올빼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심심하다고 하여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넋 놓고 눈팅하거나 프로야구 하이라이트에 시간을 뺏겨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직장에서 월급 루팡일 때나 벌이는 짓거리다. 생산적인 일이 우선인 셈인데, 오직 내 힘으로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목표가 새롭게 하달된 것이다.
생각이 꽤 늘었다. 퇴사 후, 준비한 단기 생존 모델은 계획대로 정착할 듯하다. 프리랜서로 성공적인 데뷔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앞으로 7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약효가 유지되는 생존 영양제 한 방을 맞았다. 치료제가 될지 부작용을 나타낼지, 예측이 불가능한 처방전을 받아 들고 나도 모르게 체념인지 희망인지 알 수 없는 야릇한 숨을 쉰다. 그래, 야행성이란 적성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면 일감(프로그래밍)을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글쓰기로 삶을 리드하겠다는 거창한 기획력과 실행력은 어디로 흐를지 가늠하기 힘들다. 미래를 예측하는 게 부질없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내 힘으로 제어하기 힘든 영역이 많다는 사실이 나를 무모한 도전의식을 고취시키기도 사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난, 역시 인간인가 보다.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사피엔스, 가끔 야행성이라는 아드레날린과 늦잠이라는 안식처가 필요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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