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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18. 2019

감정 일기 모음

30일 감정일기 20일차 경과

30일 감정 일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오늘이 20일차에 접어들고 있어요. 몇 가지 글을 소개해봅니다.


1일차

버스 정류장, 벤치에 혼자 앉아 있다.

밤은 깊어 가고 외로움은 길기만 하다.


퇴사를 하고도 나는 여전히 어디론가 출근을 반복한다.

다만 형식적인 것에서 벗어난 건 확실하다.

마음은 그럼에도 어딘가에 붙들리고 싶다.

안정과 불안정 사이에서 헤매는 것이 덜 적응된 까닭이다.


나는 여전히 바쁘다.

바빠야 사는 기분이 든다.

일이 없다는 건 곧 죽음일지도 모른다.

크게 한숨을 쉬고 내일도 만날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반지가 손가락에 들어가지 않는다. 억지로 끼워 넣으려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간밤에 살이 급격하게 찌기라도 한 걸까? 안간힘을 쓰다 포기하고 만다.


3일차

창문을 열고 바람이라도 폐부에 깊이 불어 넣어야 한다. 문을 열자 세찬 바람과 굵은 빗줄기가 피부를 때린다. 아, 매섭다. 그래서였구나, 반지가 들어가지 않은 이유를 해석한다. 내 탓이 아니었어. 집안 구석구석 맺힌 물기를 모조리 흡수한 까닭이었어.


오늘은 출근하는 날이다. 귀찮다. 장대비가 몰아치는 어두운 아침이 아닌가. 몸을 다시 침대에 던져버리고 싶다. 몸도 무겁고 마음도 그렇다. 물속에서 유영하는 착각에 빠진다. 허우적허우적 나는 느리게 반응한다. 내 생체 시계는 흐르질 않는다. 깨어나길 거부한다.


4일차

아침부터 큰 비가 창밖에서 아주 소란스럽게 퍼붓더군요. 11시 약속을 미루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귀찮음만 한가득이었어요. 하지만 그럴 순 없죠. 약속이잖아요. 하루에 우리는 많은 시간을 타인에게 의탁하며 살죠. 당신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타인과 교환하시나요? 우리는 약속을 화폐처럼 교환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인생이란 건 스스로 선택하고 또 행동하고 마지막에 책임지는 원리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린 타인에게 계속 영향을 받고 살아요. 분명 혼자 떠들어 보겠다고 나선 무대인데, 객석엔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어요. 그럼에도 누군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살아요. 그게 약속이었는진 모르겠어요. 강한 빗줄기를 보며 갑자기 무의미한 생각을 했어요.


갑자기 맨몸으로 밖으로 뛰쳐나가서 걷고 싶었어요. 어디든 실컷 비를 맞을 수 있다면 상관없었죠. 빗방울이 피부를 세차게 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 순간에 그랬으면 좋겠다고 마음이 결정을 해버렸으니까요. 그렇게 하면 정신을 잠시라도 차릴 수 있지 않을까, 이 가짜일지도 모르는 인생에서 벗어나 참된 인생으로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거죠. 물론 저는 그 바람대로 실행할 수 없었어요. 그럴 용기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지도 금세 사라졌거든요. 생각이란 건 이유도 없이 찾아와서 내 머릿속을 온통 들 쑤셔 놓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개인 날씨처럼 사라져 버리죠.


창밖의 시간도 내가 지금 느리게 행동하는 시간도 모두 지나가겠죠. 먼 훗날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순간 찾아온 본능에 충실해야겠죠. 삶이란 각자가 판단하는 것만큼 보람스럽지도 않고 실망스럽지도 않아요. 얼마나 욕망을 모른척하고 사느냐의 문제 같아요. 먹이를 덥석덥석 물어대는 아기새의 순수함처럼 우리는 마음의 저장고에 무언가를 계속 쌓아두고 살지만요.


시간은 흐르죠. 바쁜 걸음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을 때,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했다는 걸 감지해요. 우리가 바쁜 걸까요 시간이 바쁜 걸까요. 존재 하나는 뒤따르는 게 분명한데, 순서는 알 수 없죠. 당신은 앞에 있어요? 아니면 뒤에 있어요?


지하철에 앉아서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많은 도로와 건물을 지나고 나서도, 시간이 흘렀음을 기이하게 여길 때가 있어요. 걸어가면 몇 시간은 소요되어야 정상인 길인데, 단 30분 만에 저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어느새 계단을 오르네요. 시간이 저를 운반했을까요. 지하철이 나를 운반했을까요. 이 사실은 누가 증명해야 할까요. 떠나간 시간이? 아직 휘발되지 않은 내 기억이?


6일차

모처럼 편하게 잠든 금요일 밤이었어요. 여름이 되어도 여간해서 에어컨을 켜지 않는 편인데 어제는 참을 수가 없었어요. 28도로 맞추기만 해도 깊은 잠에 빠질 것만 같았거든요.


중간에 잘 깨는 편인데, 오전 10시가 넘도록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어요. 작은 기적이 일어난 셈이었죠. 누군가는 게으르다고 여길지도 모르죠. 퇴사했지만 평일은 한가로움과는 거리가 멀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패턴은 여전하죠.


7시간의 수면이 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기준을 거의 지키지 못해요. 새벽 2시는 되어야 일을 마무리할 수 있거든요. 주중에 부채처럼 쌓인 수면을 채우려면 주말에 한꺼번에 잘 수밖에 없어요. 그게 20년 넘게 피곤함을 누르던 제 루틴이었거든요.


피곤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인생은 참 피곤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헛웃음을 짓기도 하죠. 피곤함은 도전할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피하는 방법으로 수면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거죠. 가끔 피곤해서 떠나고 싶거나 왜 미치도록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더라도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어요. 하고 싶은 일을 밤이 새도록 실컷 할 수 있고, 그 일이 저를 지치게 하더라도 주말에는 잠을 몰아서 잘 수 있으니까요. 아, 그런데 내일은 문화센터에 강의를 하러 가야 하네요. 내일은 루틴이 깨질 것 같네요  


13일차

덥다. 단순하게 덮다는 말로는 감당이 안 되는 바람이 피부에 접촉한다. 에어컨을 작동하면 그나마 견딜만하다. 아우성치는 신체의 대화로부터 나는 도피한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뜨거운 공기가 탈출한다.


문을 닫는다. 밀폐된 공간, 차가운 바람이 벽을 서서히 휘감는다. 작은 침대에도, 가지런히 놓인 베개에도, 접힌 안경에도 서늘한 기운이 가라앉는다. 작은 선풍기는 날개를 거두고 증거를 부인하는 듯 좌우로 고개만 젓는다.


나는 녀석을 심문하려다 불을 끄려 일어선다.


어둠이 찾아온다. 내 초라한 삶은 숨을 곳을 찾다 조각조각 비처럼 부서진다. 평화로운 어둠, 확신을 잃은 밝음은 마땅히 은폐되어야 한다. 밝음은 소강상태에 빠진다. 손을 뻗고 스위치를 더듬거린다. 나는 방향을 잃었다. 어둠 속에는 존재감 없는 영혼이 빛을 수집한다.


15일차

시 필사 6기를 시작했다. 이번 기수부터 한 달 동안 같이 20편의 시를 읽고 필사한다. 첫 번째 필사할 시는 기형도의 '빈집'이다. 기형도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그가 가진 괴로움에 공명한다. 특히 나는 그의 어두움을 사랑한다. 인간의 마음엔 반드시 그늘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기형도는 그 세계를 가식 없이 들춰낸다. 그래서일까? 읽을 때마다 아프면서도 그의 시를 계속 찾는다. 내 아픔과 그의 것은 유사한 면이 있다고 믿으며.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 집' 중에서


기형도는 시에서 무언가를 잃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생의 의미일 수도 있다. 그는 열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고독을 선택한다. 그의 삶은 오직 혼자뿐인 빈집에서 마감한다. 가엾다고 스스로에게 위로하는 기형도는 빈집에 갇혔다. 누가 기형도의 영혼을 빈집에서 꺼내줄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영혼이 참 가엾다.


자작시


닫는다, 문을

빈집은 나에게,

떠나라고 소리 없는 말을


문을 닫고 나는 

어둠에게 

쓸쓸한 밤이야

잠들기 적당한 밤이야



사랑했어,라는 말은 

내일 새벽까지 거두고

난 잠을 오래 잘 생각이야


18일차

아침부터 빗방울 흩어지는 소리가 집 구석구석 퍼졌다. 소강상태에 빠져드려는 더위가 선풍기 회전음에 말렸지만, 나는 눈을 감았다. 반가운 바람에게 이따금 손을 흔들고 싶었으나 그들에게 인사할 처지는 만들지 못했다.


눈을 감고 5분만 흘러가는 모든 걸 멈추고 싶었다. 빗방울이 창가를 따라 흘러내리는 소리도, 바람이 안방에서 한 바퀴 돌고 밖으로 나가는 소리도, 풀벌레가 나지막하게 불빛 따라 스치는 소리도.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잠의 본능과 삶의 노곤함, 두 가지를 생각하고 다시 잠의 유혹에 굴복했다.


아침은 고요했고 길었다. 시간은 내 주위에서 고요히 흘렀다. 나는 눈을 겨우 뜨고 창밖의 온기를 잠깐 바라보았다.


아침 끝엔 낯선 그늘이 혼자 누워 있었다.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존재는 꿈에서 깨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음영 하나를 찾았다. 그것의 색깔은 옅은 회색을 뗬다.


눈을 감으면 내일이 언뜻 보였다. 오늘은 소거되었고 내일에게 흡수될 예정이다. 나는 바삐 뛰어야 한다. 시간을 살피고 어두움을 쫓아내는 일은 여전하다.


사소한 경험 속에서도 깨달음은 온다. 아침이 늦어도 분주하지 않고, 바람에 빗방울이 묻어도 눅눅하지 않고, 문을 열어도 회색 하늘이 반가운 것은 내 삶이 밝은 빛을 띤 것이리라. 어떤 일이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작은 실망 속에서도 긍정적인 습관은 길러지리라.


20일차

이번 달 읽어야 할 책인 <1984>를 읽어야 했다. 전자책 단말기를 들고 소파에 기다랗게 누웠다. 두툼한 쿠션을 배에 깔고 읽던 페이지를 찾았다. 누워서 50페이지 이상쯤 읽었으려나, 좀이 쑤셔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읽어야 할 분량을 겨우 넘겼을 때, 마침 졸음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이른 가을이 창문을 슬며시 밀었다. 선풍기 강약 조절 버튼을 한 단계 내리려다 아예 꺼버렸다. 꺼버린 김에 잠시 생각도 꺼두고 싶었다. 눈을 감고 잠에 빠져 볼까? 생각을 아예 지워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열어둔 창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내려앉더니 안방으로 거실로 다시 주방으로 짧은 여행을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에게 도달한 작은 바람이 머리를 쓸어내리더니 온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창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아, 가을이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올해도 더위가 이렇게 끝나려는구나, 더위를 밀어내려던 여름 부근의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역시 누워서 책을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걸까? 가을을 채비하기엔 아직 이른 걸까? 눈을 감아버렸을 때, 나는 기억을 잠시 바람에 실려 보내고 말았다. 다시 눈을 뜨게 한 건 반가운 바람 때문이었으므로, 나는 가을을 담은 바람에게 감사의 편지라도 한 편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 한자리를 비워두고 그곳에 찰나를 담았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다시 글을 쓸 때, 네가 나에게 찾아온 그 순간을 꼭 기억하겠다,라고 생각만 하고 말았지만.


그래, 우리는 언젠가 모두 이별을 하게 돼. 네가 나에게 잠시 머물다 떠났다는 사실은 내가 꼭 글로 기록해둘게. 물론, 글로 쓰지 않아도 후회 따위는 남아있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되어야 할 거야. 그 방법이 너와 내가 동시대에 존재했다는 증명이 될 테니까. 미련이 없다는 건 충분히 함께 했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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