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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26. 2020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

에스컬레이터를 한 계단 타고 내려가면 만나는 식당이 한 곳 있다. 일주일에 1회 이상은 찾게 되는 곳이니 주인과 안면을 턴 관계일 거라 짐작한다. 나는 인도식 카레를 주문했고 푸짐한 양에 미소를 지었으나, 간혹 고수 냄새를 맡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올라가려는 무렵, 직원이 법인 카드를 서랍 속에 두고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래, 올라가서 가져오면 되지 뭐, 빨리 갔다 와"

"잠깐만요. 손님 한 분은 남아서 기다려주세요"



난데없는 말 한마디에, 주인과 쌓아놓은 안면의 업적들이 고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서 법인 카드를 꺼낸 후, 다시 식당까지 내려오는 시간, 아무리 느린 사람이라도 1분은 안 걸리겠지. 아니, 30초면 충분할 거야." 우린 늦게 시험을 풀고 초조하게 점수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서 있었다. 어떤 굉장한 부담감과 어색함을 안고서.


"아니, 사장님 금방 올 텐데, 꼭 볼모로 사람을 앉혀놔야 하나요?" 누군가 던진 두서너 개의 볼멘 문장들이 공세를 취하듯 내밀어졌다

"지난주에도 어떤 분이 금방 카드 가져온다고 하더니, 안 왔어요" 배신을 당했다고 주인은 마스크 속에서 짜증을 감추며 방어했다.


그래, 우린 지난주 음식을 먹고 도망친 배고픈 일당과 한 패거리가 된 셈이었다. 몇 달, 아니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몇 년을 봐왔을 손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아니 사장의 자식쯤 되어 보이는 그 사람에게 우린 스쳐 지나가는 손님으로 취급당했을 것이 분명할 터. 원망과 짜증만이 허망하게 흐를 뿐.


의심을 당하긴 했으나, 어쨌든 잘못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니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라는 내 생각과 달리, 유난히 많은 세월을 식사로 대접받으셨을 법한, 단 한 분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분의 자존심으로는 이 의심받는 상황이 사장의 연출로 생각되었을지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떼어놓으려 하는 일, 때때로 억지로 일어나는 그런 사건은 여전히 무겁고 내 옷이 아닌 걸 걸친 듯하게 다가온다. 사람은 각자의 논리가 있고 그 논리를 원칙으로 삼아 살아갈 테지만, 나는 그 규칙을 벗어버리고 싶다. 그럴 때마다, 마음에선 균열이 일어난다. 균열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옆에 우두커니 서서 그 상황을 참관하련다. 오래 사는 비결이란 그런 일들에서 떨어지는 걸 테니까.


원인은 분노였다. 어딘가에 억눌리고 외면했던 감정. 내 것이 아닌 감정까지 피곤하게 흡수해야 하는지, 나는 그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다만 애매모호하게,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며, 그러니까 철저하게 제삼자의 입장이 되어서 나는 자꾸만 자꾸만 화에서 멀어지려 했다.


분노를 주체 못 한, 그 지긋하게 생긴 분은 절대 그 식당을 찾지 않겠다고 강력한 선포를 허공에 뿌렸다. 그런데 그 말엔 자신을 포함하여 반경 10미터 이내에 서 있던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의미가 담겼다. 하지만, 나는 왜 그 사람을 따라야 하는지, 내 식성까지 그분에게 지배당해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누군가에 가끔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구는 사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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