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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22. 2020

마음에서 일어나는 지반 침해

단상

비가 오면 내 마음엔 지반 침해가 일어난다. 흔들흔들거리다 아슬아슬 45도 경사로 서 있기도, 그러다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이란 늘 달래줘야 할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듯 변함없이 애착을 원할 테니까.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비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공기와 뒤섞여야 할 운명을 맞을 뿐이었다. 깊고 넓은 하늘을 바라보며 눈이 멀 것 같은 착각에 빠져도, 나는 오로지 외면할 생각만 가졌다. 


그러니까, 여전히 희망을 찾으려 환부에 연고를 더듬거려가며 회생을 바랐지만, 소원 끝에 찾아오는 선물 같은 건 없었다. 여전히 눈가는 간지럽고 길거리엔 개똥만 즐비했으니까.


오늘 밤엔 긴 밤을 짧게 토해내듯 울음이 한바탕 쏟아져 내릴 거라고, 그래서 이 하찮기만 한 나의 슬픔에도 구원의 빛줄기가 내려올 거라고 기우제라도 무심하게 지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나에겐 제물이 필요한 거라고, 태초의 신이 나지막하게 신탁을 내렸던 것처럼 나는 그의 예언대로 살아갈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도 어제도 나는 계속해서 슬프다고, 아니 그걸 감추기 위해 삶을 엄숙하게 대하겠노라, 억지로 본능들을 누르고 산다고 애처롭게 다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한낱,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언어도단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아니 엄정하게 말한다면 질서를 무너뜨리는 내가 어찌 신의 계시를 믿거나 해석한다고 덤빌 수 있겠는가.


오늘도 여전히 내 방에선 단 한 방울의 빗방울도, 습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너져 내리는, 말하자면 근거를 댈 수 없는 내 방의 모든 부재함 들도 스스로 말라가고 있었다고 할까. 속절없이 그리고 허망하게 시선을 잃은 채, 글자들의 연합전선을 대하는 내 마음들은 불안의 구석도, 이해의 목마름도 규명할 수 없었지만. 


비는 결국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언제쯤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에 기대고 마는 나는 계속 어리석기만 하다. 마음도 가끔은 허물어지고 싶겠지. 그리하면 조금 더 튼튼해질 용기를 빈자리에 세워볼 수도 있을 테니. 그런 빈 마음과 근거 없는 희망들로 삶을 세워지는 것일 테니, 비 오는 날을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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