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생각
일을 마친 후, 퇴근을 할까, 일을 조금 더 할까 잠시 망설이는 중이었다. 예고 없이 피로감이 몰려든 것도 비슷한 시간쯤이었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나는 약 기운이 떨어진 사람처럼 퍼지고 싶었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사무실, 파티션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잠시 누비다, 두꺼워진 몸을 의자에 천천히 기댔다. 편안하지 않았다. 꽤 불편하고 석연찮았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이 무력감의 원인은 무엇인가. 왜 갑자기 나를 덮쳐가며 그러니까 마치 남은 삶을 앗아가려는 것처럼 못되게 구는가. 감정이란…
피곤했지만 잠은 이상하게 오지 않았다. 고개를 뒤로 기댔으나 불편함만 더 가중될 뿐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리하지 못한,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한심하게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래, 몇 년 동안 나는 쉼 없이 달려왔다.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집중하면 할수록, 빠져들면 들수록 해답은 보이는 것처럼 굴다가도 더 멀어지기도 했다. 시간이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당신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차피 공평하게 24시간이 아닌가. 불평을 할 필요도 낙관을 할 필요도 없다. 낭비했다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만 할 것이 아니라, 나머지 시간에 대한 전략을 세우면 그만일 테니까. 그 생각이 나만의 완벽한 24 시간을 만들 테니까.
오직 나에게만 통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유일한 것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모자랐다. 늘 효율이 문제였다. 90%가 아닌 100%의 성능을 낼 수는 없단 말인가. 시간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단 말인가. 그런 어리석은 생각이 치밀 때마다, 다시 행동했다. 생각은 대개 몽상에서 망상으로 번지는 일이 대부분이 아닌가. 그런 위험한 상태를 극복하려면 일단 행동하는 게 급선무였다. 행동은 치밀하지 못한 구석, 즉 경솔한 편이 많기 때문에 허술한 것들을 같이 양산하는 편이었다. 허술한 것들은 기다렸다. 보완을, 대책을, 반성을.
이렇게 누워서 '모든 일이 잘 굴러갈 거야',라고 희망만 품을 수도 비관적인 생각만 한가득 품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쉬는 것도 좋겠다.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 나는 이미 먼 곳까지 와버리지 않았는가. 에어컨의 온도를 3도 올리려다, 창문을 열었다. 빈 사무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람만으로도 나 하나쯤이라면 충분히 반갑게 맞이해 주지 않으려나. 나에게 필요한 건 바깥세상에서만 사는 바람, 그러니까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살아있는 것들의 목소리들이리라.
목덜미에서 뻐근함이 몰려왔다. 눈을 감고 더 깊은 곳으로 진입하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검고 깊은 세계, 오직 불투명한 것들만 가득한 세계에서 슬픔도 기쁨도 아닌 감정들이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