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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05. 2020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낯설기만 한

어떤 기억의 재조합

인천 지하철이 처음 개통되던 날, 아빠와 나, 그리고 내 동생은 인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인천을 찾은 이유는 바다로 본다는 것. 바다에서 헤엄이란 걸 처음 경험해보게 됨을 의미했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세 사람을 충분히 설레게 만들었다. 첫 번째 지하철, 첫 번째 바다, 첫 번째 아빠와의 여행. 게다가 어쩌면 인생 첫 번째의 김밥까지. 모든 게 완벽한 처음을 구성한 셈이었다.


처음이라서 그랬을까? 인천으로 향하는 지하철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려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바다를 둘러볼 작정이었는지, 대한민국의 바다는 인천하나뿐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이러다 바다가 닳아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신기한 생각까지.


아빠는 오른손으로 나를, 왼손으로 동생을 꽉 붙잡았다. 어른들이 너무 많아서 우린 흔들리는 지하철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서 있었지만, 바깥세상을 구경할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영영 인천 어딘가에 버려질 것만 같았기에 우린 더욱 강하게 서로를 부둥켜 안기만 했다.


인천에 가까울수록 지하철은 지하가 아닌 지상에서만 다녔다. 지하철인데 왜 하늘이 나타나는지, 사람들은 뭉게뭉게 구름처럼 몰려드는지,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엔 내 키도 동생의 키도 한참 모자라기만 했더랬다. 작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일들은 늘 일어나는 법이니까. 궁금하긴 했지만, 그냥 그대로 사실을 받아들이고 말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지하철 내부는 김밥을 왕창 먹게 될 오후의 내 배처럼 점점 크게 부풀어 갔다.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나가면 또다시 어른들과 아이들이 안으로 안으로 밀려들어 덩치를 키웠다. 자꾸만 구석으로 외딴곳으로 유배되듯이 끌려가다, 이러다 우린 창밖으로 튕겨나가는 것이 아닌지 공포스럽기만 했다.


얼마나 달렸는지 땀으로 이미 헤엄을 치고도 남을 무렵, 다음 정거장에 내려야 한다는 아빠의 속삭임이 찾아왔다. 지하철이 지하가 아닌 곳에 정지했고, 김밥 옆구리 터지듯 사람들은 앞다투어 탈출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나와 내 동생은 아빠의 두 손에 밀려, 아니 어른들의 비명에 밀려 공중에 부양하듯 탈옥에 성공했다. 날아가듯 가볍게 플랫폼 바닥 착지에 성공한 우리들은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가슴이 시원한 것은 사람들에게서 자유를 얻은 것만은 아니었으니, 문이 닫힘과 동시에 미처 탈출하지 못한 아빠의 당황한 표정 때문이었으리라.



"움직이면 안 돼. 거기 가만히 있어." 들리지 않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우리는 TV에서나 보던 이산가족 신세가 되는구나. 어쩌면 보육원에서 살게 될지도 몰라, 온갖 잡스러운 생각, 세상이 끝나겠구나,라는 생각만 했다. 앉지도 못하고 서 있지도 못하는 우리는 플랫폼에 나란히 서서, 지나다니는 어른들을 표정을 잃고 바라봤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어디라도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눈앞엔 거대한 바다가 한없이 푸르게 펼쳐졌으나. 이곳에 왜 버려졌는지 그 어떠한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태, 우린 완벽한 공황상태를 겪게 되었다고 할까. 기막힌 것은 온갖 상상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기적이 일어나기라도 한 걸까. 아빠는 날개라도 어딘가에 숨겨 다니는 사람이었을까. 아빠는 짠하고 나타나 우리 손을 다시 꽉 거머쥐었던 것이다. 극적인 상봉이었지만, 극적인 기쁨도 슬픔도 연출되지 않았다. 그냥 잠시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기 전에 사건이 막을 내리고 말았으니까. 단순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됐을 뿐, 어떤 설명도 그 일에 대입할 필요는 물론 없었다.


그날의 기억은 깨진 유리조각처럼 지금도 듬성듬성 가슴에 박혀있다. 어떤 조각들은 여전히 남아서 내가 버려질뻔했던 그날을 기념하길 원한다. 떨어져 나간 몇 개의 조각들은 어쩌면 덜 아픈 부분이었을까, 더 아픈 부분이었을까, 짐작해보려 하지만 알 수 없다. 가슴을 몇 겹 들추어 보면 어쩌면 더 깊이 박힌, 그러니까 소각됐을 거라고 착각한 기억들을 슬쩍 소환해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길 원하지 않는다. 아마도 애써 잊으려 노력했던 악몽이, 사라진 그날의 일들이 꿈에서 되살아날까 두렵기에.


나이를 한 아름 먹고서, 말하자면 내 나이가 그때의 아빠보다 더 많이 먹었음을 인지하고 나서도, 나는 내가 조금 어른스러워졌다고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다. 그깟 낯설고 딱딱한 지하철 콘크리트 바닥이면 어떠하랴, 울지 않고도 오래도록 기다려도 아빠만 다시 볼 수 있다면, 바다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텐데. 이제 그런 말은 내뱉자마자 바로 사라지고 마는,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말이라는 걸 잘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오래된 시절에도, 조금 더 나이를 먹은 과거 어느 날에도, 지금 이 순간조차 여전히 이별에 서툴고 낯설 뿐이다. 이별은 처음이어도 설레지 않고 영원히 반복된다 한들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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