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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29. 2020

모방이 저의 재능입니다.

당신의 재능이 궁금합니다.

글쓰기에도 재능이 필요할까요? 재능의 유용성에 대해 의심을 펼치는 분들은 거의 없겠죠. 하지만 재능의 벽 때문에 글쓰기를 아예 시도조차 안 하거나, 자신에게 잠재된 재능을 처음부터 억눌러버리는 분들도 없진 않겠죠? 사실 재능의 가치는 스스로 어떤 분야에 뛰어들어 경험이 누적되지 않고서는 파악이 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결과를 떠나 어떤 분야에 미치도록 시간을 투자해야만 자신에게 내재된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다는 거죠.


얼마 전 지인이 제게 그런 말을 했어요. 제가 가진 재능 중 하나가 모방이라고 말입니다. 자, 모방이라는 단어는 이미 제가 여러 편의 글에서 언급했으니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시학>에서 강조했다는 정도만 말씀드리고 계속 써 볼게요. 


어쨌든 저의 글쓰기 재능 중 하나가 ‘모방’이라는 겁니다. 모방은 무엇인가요? 결국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군요. 사전적으로는 ‘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음’이라고 하죠? 저는 인간 복사기라는 별명을 저에게 붙여주고 싶네요. 다만 전제가 한 가지 붙어요. 그대로 본뜨면 표절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켜서 원본보다 더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 말이에요. 원본과 비교해봐도 원본과 분위기는 비슷한데, 원본과 전혀 다른 것이다, 라는 뉘앙스를 전달해야 하거든요. 거기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신경숙 작가 꼴이 나고 마는 거죠.


그러니까 저의 재능이 모방에 있다는 것은 타인의 문체를 따라 하면서도 그 사람의 것과 제 것이 적확하게 구분된다는 거예요. 그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영향권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모방에 재능이 있다면 어느 누구의 문체도 따라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이병률이든, 김영하든, 그 누구든 말이죠. 심지어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문체까지도요. 그런데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일까요? 재능으로 취급받을 정도로 아무나 근접할 수 없는 영역일까요? 정말 그럴까요? 어쨌든 교묘하게 따라 할 능력이 탑재되긴 해야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체를 따라 할 재능이 답보된다고 해도, 그 재능이 재능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거죠. 그게 바로 글을 좀 써본 글쟁이들의 고민이거든요. 쓰겠다는 어떤 확고한 결정도, 누군가의 문체를 흉내 낼 재능도, 작품에 내재된 가치까지 연결된 건 아니니까요. 그런 건 노력으로 해결될 일인지 모르겠어요. <아티스트 웨이>에서 언급한 것처럼 매일 ‘모닝 페이지’를 12주 열심히 하면 이야기를 만들 재능이 살아날까요? 그러니까 죽었을 거라고,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던 내 분신을 되살려낼 수 있냐고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단순한 믿음, 또는 부정하려는 마음을 단지 버리는 행위만으로 해결되냐는 얘기죠. 다시 모방으로 돌아가고, 저는 모방이 정말 재능인지 논하고 싶어요. 모방은 내가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했거든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제 실행력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찾지 못해요. 그러니 책을 찾아 읽거나 모임을 찾아가서 누군가를 만나는 거죠. 누군가와 같이, 오래도록 연습만 하면 실력이 좋아질 거라 믿으면서요. 그래서 우리는 필사 같은 정적인 활동에 매달리기도 하잖아요. 작가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그의 영혼에 깊이 물들어보겠다고 생각하며 문장을 하나하나 옮겨보는 거죠.


물론 그런 작업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은 안 해요. 분명 도움이 되겠죠. 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낫겠죠. 하지만 여러분도 나처럼 글을 꾸준하게 쓰고, 어떻게 하면 더 잘쓸 것인지 고민한다면 자연스럽게 내가 겪고 있는, 구태의연한 과정들을 교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누군가 억지로 불어넣어줄 수 있는 지식의 영역이 아니에요. 스스로 필요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아, 그런 것까지 재능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어요.



아무튼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꾸준하게 몇 년 동안 쓰고 있으며, 더 잘 쓰기 위해 방법들을 스스로 찾게 됐죠. 그 과정에 좌절, 낙담, 실망, 실패를 수없이 겪었고요. 그런데, 변화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 글이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은 기도하거나 막연하게 희망에 기댄다고 생기는 게 절대 아니에요. 능동적으로 찾아야 해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찾아야 하는 것이에요. 하지만 우린 시간이 없죠. 먹고살기도 바쁘니까. 글 쓰는 건 부르주아나 하는 짓이라고 취급을 당하기도 하니까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는 작가들의 문체를 따라 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의 독특한 문장, 감성, 비유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됐죠. 저는 그들의 동사에 오래도록 머물렀어요. 저는 동사에 갈증을 느꼈나 봐요. 내 안에 있는 것들로는 마음의 가물이 해결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집착하고 또 집착하고 그들의 언어를 따라 하고 변형해보고 다시 내 글에 응용해가며 저는 깨달았답니다. 이런 연습을 몇 년 동안 반복한다면 없던 재능까지 생기겠구나,라고 말이죠. 그러니 누군가가 어떤 면에서 강점을 지녔다면,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낸다면, 그 사람의 노력을 단순한 재능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은 그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매일매일을 처절하게 노력하며 보냈을 테니까요. 여러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가치를 간단하게 평가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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