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Sep 10. 2020

우리 모두에겐 재생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걷는 이 길은 참 낯설다. 자주 다녔고 수없이 많은 발걸음들을 찍어놓은 곳이지만 어쨌든 내 길이 여전히 아닌 것 같다. 그런 감정에 휩싸이면 문득 원인을 찾으려 애쓴다. 무엇이든 자꾸만 분석하려는 그러니까 파헤치고 들쑤셔 놓으려는 내 직업적 불편함이 제 역할을 다하려 한다.


길가엔 저절로 자라나는 풀들이 즐비하다. 몇 달 동안 관리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 누군가 무성의하게 이곳을 내버려 두고 만 것이다. 아마도 이유가 있겠지. 세상에서 나타나는 모든 일들엔 원인이 있지 않겠나. 그러니 결과를 놓고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따질 필요는 없다. 풀 몇 포기쯤이 내 다리와 엉켜도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으리라. 그러니 원래 하던 패턴대로 나는 이 길을 스치듯 지나가면 된다. 곤란한 질문은 잠시 잊어두기로 하자. 물어도 대답은 어차피 공허할 테니까.


질서정연함과는 구별되는 엄격한 불규칙함들, 그곳엔 정서적 불안정함이 내재되어 있다. 나는 이곳을 돌파하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인공적인 세력들을 덮으려는 자연의 모진 순결함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반복, 단조로움, 정합성, 그 가운데서 피어나는 어떤 변증들, 태어나고 소멸하고 낡은 것들을 새것으로 교체하려는 규칙적인 자정 작용들. 아, 나는 갈 곳이 점점 사라진다. 


바쁜 시간, 바쁜 하루, 바쁜 사람, 너무나도 바쁜 곳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이유를 묻는다. 왜, 어떤 이유가, 대체 왜 버티지 못하는 건데? 나는 폭발할 것만 같다. 그래서 나를 질책한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데? 코로나-19가 남긴 상처 탓이야?. 아니야 지금 이 길은 스스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죽음으로 내몰기라도 한 거야. 가끔은 이렇게 방치하는 게 사람에게든 이 지구에게든 둘 다 해롭진 않을지도 몰라. 관리와 무성의함, 그래 이 지구에게는 지금 약간의 방치가 꽤 요긴할 거야. 우리에겐 재생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난 어떤 존재일까. 나는 길가의 무성한 풀 몇 포기보다 나은 존재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래, 어차피 답이 없는 열등한 질문이 아닌가. 찾으면 찾을수록 흐릿해져만 가는 질문, 나는 들풀보다 더 우월하다며 이미 정의를 내려놓고 그것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찾으려는 게 아닌가.


그래, 오늘이야말로 나는 머리를 깎아야겠다. 잡초보다 더 볼품없는, 너저분한 머리카락 따위를 나는 깔끔하게 잘라내야겠다.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보이지도 않는, 그러니까 존재했거나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 머릿결의 세계를 생각했다. 거칠고 다소 탁한 결, 잡초보다 어쩌면 더 힘을 잃은 거친 무늬를 떠올린다.


차창 너머엔 흰 머리카락이 잡초처럼 우거져 있다. 나는 손가락으로 머릿결을 쓰다듬고 선명하게 새겨진 흰 물결의 질감을 감각했다. 그래, 너는 자라날 테고 관리가 필요할 테고 곧 허무하게 사라지겠지. 나는 점심 무렵에 찾을 미용실의 풍경을 떠올리다 눈을 감고 깔끔하게 정돈된 그러니까 청결해지고 반듯해진 모습을 상상한다. 그래서 조금은 순해진, 세상에 맨살을 드러낸 피부의 부끄러움을 그려보고 가을 하늘과 비슷한 파란색의 시원함을 스케치한다.


이전 05화 가을은 쓸쓸하게 내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